소개팅을 개인적으로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도 사실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개팅을 통해서 누군가를 만나면 아무래도 당장 눈 앞에 보이는 모습,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말 몇 마디에 휩쓸리기 때문에 그 사람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 소개팅의 가장 큰 맹점이다. 사실 소개팅 이후 몇 번, 아니 몇 달까지도 상대방은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연기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소개팅은 누구에게나 최선의 선택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리고 나도 소개팅을 하는 것은 사실 학부를 졸업한 이후에는 원래 알던 지인과 연애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성을 만날 루트가 없기 때문이다. 또 그나마 지인이 직접 소개시켜준 경우에는 최소한의 조건들은 의심하지 않고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소개팅 앱을 쓰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지만 소개팅 앱으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불확실성이 너무 크기에 사실은 가능하다면 지인을 통한 소개팅이 그래도, 그나마 낫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듯하다.
이렇듯 '현실적으로' 소개팅은, 특히 나이가 들어갈수록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개팅은 힘들다. 소개팅에서 특히 힘든 것은 첫 만남이 아닐까 싶다. 그 어색함. 서로의 프로필을 대략적으로만 듣고 와서 마주한 자리. 때로는 사진을 보고 나오지만 사진을 보지 않고 나올 때도 있을 뿐 아니라 기술의 발달로 사진이 큰 의미가 없어지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그래서 소개팅의 첫 만남은 항상 여러 감정들을 동반하게 되어 있다. 아마 소개팅 상대를 만나고 10분이 지날 때까지 만큼 다양한 감정이 오가는 자리도 드물 것이다.
사실 어색함을 못 참는 O형인 내 입장에서 그래도 소개팅의 첫 만남은 견딜만한 편이다. 특히 학부시절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글, 사진, 영상을 만드는 작업을 했던 덕분에 자연스럽게 내 얘기를 하면서 적절한 시점에 상대방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나와 맞는 부분에서는 공감을 하고, 맞지 않는 부분이 나오면 주제를 돌리는 패턴 등에 낯설지 않기 때문에 그래도 소개팅을 해서 난 처음 만나고 나서 주선자에게 욕을 먹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물론 욕을 먹지 않는 것과 내게 호감을 갖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듯, 내 소개팅 성공률은 그렇게 높지 않다. 10번 하면 1번 괜찮은 사람이 나오는 것이 소개팅이라고 하지 않나? 그런데 그 1번에서 상대가 내게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면 이론적으로는 그 1번을 위해서 또 10번의 소개팅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소개팅의 첫 만남이 '견딜 만' 했다고 해서 그 시간이 즐겁다는 것은 아니다. 소개팅 후에 나는 대부분의 경우 지하철에서 지쳐서 의자에 거의 붙어 있을 정도로 피곤했고, 솔직히 그럴 때 어르신이 내 앞에 서시면 자는 척 눈을 감은적도 있었다. 상대에게 '욕을 먹지 않은 것'은 내가 '일하듯이' 소개팅을 했기 때문이지 상대방이 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 아니기에, 그리고 일하듯이 에너지를 소모했기 때문에 첫 소개팅 후에 나는 매우, 매우 피곤해진다. 이건 소개팅을 경험한 사람이 대부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나마 지치기만 했다면 다행이지 상대가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말실수를 한 경우에는 내 시간과 돈이 아까울 때도 꽤나 많은 것이 사실 아닌가?
하지만 모든 소개팅이 그런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정말로, 처음 만났는데도 말이 잘 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주, 매우 가끔씩 소개팅에서 깨닫게 된다. 그리고 때로는 처음 앉았을 때 상대의 외모 때문에 다시 보는 일이 없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가도 대화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보고 싶다고, 더 알아가고 싶다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사람들이 소개팅을 하는 것은, 해야 하는 것은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 한번 때문이다. 김제동 씨 친구의 여자 친구가 항상 너무 예뻐서 그 비결을 물었더니 길거리에서 예뻐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가 번호를 물어봐서 번호를 주는 사람들 중에 만나는 것이라고, 그 친구가 특별히 잘 생긴 게 아니기 때문에 수십, 수백 번에 한번 정도 번호를 받는데 그 한 번을 위해서 계속 물어보는 것이라고 그 친구가 답했다고 하지 않나? 이처럼 소개팅은 그 한 번을 위해서 나가는 것이다. 소개팅 첫자리가 항상 편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덜 어색하고 덜 피곤한 상대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소개팅 첫 만남에서는 어떤 대화를 해야 할까? 사실 내 지인들은 내가 감 놔라 배 놔라 조언을 많이 했었다. 그 조언은 대부분 '종교 얘기는 하지 마라'는 것이고, 종교가 다른 분과 소개팅을 할 경우에 그건 그들이 조언을 하지 않아도 내가 당연히 지켜야 하는 예의였다. 그런데 내 특성상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차리느라 종교적인 얘기가 나올 맥락에서 얘기를 거르고, 표현도 교회 다니지 않는 분들이 편할 표현으로 바꿔서 대화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상대가 아니라 내가 하는 말에 신경을 쓰느라고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음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턴가 나는 종교가 다르신 분과는 소개팅을 하지 않는다. 내가 상대에게 그런 면에서 예의를 지킬 때 종교적인 요소를 누르는 것이 내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단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소개팅 자리에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그렇다면 연애를 할 때는 그 에너지가 더 소모되지 않겠나? 연애 자체가 목적일 때는 물론 그렇게 해서라도 누군가를 만났겠지만, 사실 혼자 있는 것도 충분히 행복한 지금 내가 그렇게 에너지를 많이 쓰면서 누군가를 소개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의 행복도 중요하니까.
하지만 교회를 다니는 분이라고 해서 내가 종교적인 대화를 꺼내는 것을 모두 편해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도 '교회 다니는 스펙'을 갖춘 사람을 원하는 것이지 너무 종교적인 사람은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인들은 '첫자리서부터 그런 얘기는 하지 말라'고 조언을 하고 나도 과거에는 그런 노력을 했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난 더 이상 그런 노력을 하지는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상대가 그런 얘기를 불편해하는 듯하면 다른 대화를 하지만 그 이후에 다시 만나지는 않는다. 몇 번의 연애와 소개팅을 하면서 내겐 종교적인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교회를 다니는 친한 동생이 내게 '나는 교회 안다니는 사람이랑 결혼할 수도 있지만 형은 그게 절대 안되는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말이다. 또 그래서 사실 난 소개팅 첫 만남에서 억지로 노력을 하지도 않고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수준, 주선자에게 욕먹지 않을 수준만 지키면서 내 모습을 최대한 솔직하게 드러낸다. 이제는 연애를 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더 길게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계속 내 목 근처를 간지럽게 할 정도로 내게 중요하고,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상대가 좋게 봐줘야 그 사람과 내가 더 길게, 오래 같이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럴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편하게 알아가다가 나중에 더 알게 되면 되는 게 아니냐고 말이다. 그런데 사실 무엇인가가 한 개인에게 굉장히 크고 중요하다면, 그 사람을 만나는 사람도 그것을 그만큼 중요하게 여길 때 두 사람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처음에는 그걸 숨기고 있다가 나중에 그걸 드러내게 되는 경우에는 상대가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처음부터 엄청나게 깊은 얘기를 하는 것은 미련한 짓일 뿐 아니라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건 초면에 아주, 매우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숨기고 당장 상대의 마음을 사기 위한 말들을 하는 것은 그 관계에 있어서 절대 지속 가능하지 않기에, 처음부터 '정제된 수준으로' 자신의 모습을 최대한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이 소개팅의 첫 만남에서 가장 좋은 모습이 아닐까 싶다.
난 솔직한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이제 연애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가능하면 더 오래 함께 할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이라면, 주선자에게 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예의를 갖추되 그 범위 안에서 솔직한 게 최선일 것이다. 그리고 본인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상대와 맞지 않는데 상대의 다른 것이 매력적이어서 '바뀔 수도 있는 거잖아'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생각은 애초에 내려놓고 본인에게 중요한 것은 맞는 사람을 찾아서 다음 만남을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는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으며, 그렇게 내가 아닌 모습으로 상대를 잡기 위해 에너지를 쏟아붓는 동안 나와 맞는 사람과의 만남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이성을 만나는데 있어 본인에게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그렇게 피곤하게라도 기회가 된다면 많은 '소개팅의 첫 만남'을 경험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계속해서 함께 할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한 과정이고, 노력임을 기억하자. 이번 주에도 소개팅에 나서는 솔로부대 분들을 응원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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