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연애

여자의 외모와 남자의 경제력

남자들에게 여자의 외모. 여자들에게 남자의 경제력. 두 가지는 너무나도 흔하게 비교되는 연애의 조건이다. 남자들이 여자의 외모를 보는 것을 정당화하고 싶다면, 여자들이 남자의 경제력을 보는 것에 대해서 판단하지 말라는 말도 심심찮게 들리고는 한다. 과연 그 두 가지가 같은 차원의 것일까?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두 가지를 같은 선상에 놓고 판단하게 되면 사회적으로 남녀평등에 대하여 주장하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모순이 되게 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남자가 여자의 외모를 (본인의 기준으로, 본인 눈에 이쁜 사람을 찾는 방식으로) 보는 것은 남자 안에 있는 '자연적 본능'에서 나오는 것인데 (남자로서 의식하지 않으려 수도 없이 노력해 본 결과 말하는데 진심이다. 정말이다. 나도 외모를 의식하지 않을 수 있고 싶다. 그렇다면 연애하기도 훨씬 수월할테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남자의 경제력을 찾는 것이 여자의 '자연적 본능'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을 하면 여자는 본래 의존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돈 잘 버는 남자를 찾는 것이라는 말이 된다. 이러한 논리는 사회적으로 여자는 원래 더 의존적인 존재니까 집에서 집안일이나 하고, 남자가 일하는 게 맞다는 데까지 확장될 수 있다. 세상에... 이게 맞는 얘기일까?

이를 인정해버리겠다면 굳이 그에 대한 반박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과연 그럴까?라는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고, 저런 생각들이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하다. 그러면 남자는 돈 벌어오는 기계이고 여자는 애를 낳는 존재란 말인가... 이 무슨 전근대적인 사고인가...

남자가 여자의 외모를 보는 것과 남자의 경제력이라는 기준이 동일선상에 있지 않은 첫 번째 이유는 남자가 여자의 외모를 보는 것이 '상하관계'와 '우열관계'를 전제하고 보는 것이 아니라 본인 눈에 이쁜 사람을 찾는 것인 반면, 경제력에 대한 것은 분명한 상하관계가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자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조건을 의미하는 반면 후자는 객관적인 조건이라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버는 것의 우열은 분명하지 않은가?

그리고 이 두 가지가 또 다른 이유는 여자의 외모는 여자만 가질 수 있지만 돈은 두 사람이 모두 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외모도 물론 가꿀 수 있지만, 그리고 기술의 힘을 빌릴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타고난 것이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큰 반면, 경제력은 노력의 비중이 훨씬 큰 영역이라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나는 자신의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고 열심히 사는 남자를 찾는 여자들에 대해서는 비판을 하고 싶지 않다. 누구든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겠나? 지금 내가 문제를 삼는 것은 '버는 돈의 액수'에만 집중하는 분들이다.) 이걸 그렇게 따지는 것이 쪼잔해 보인다면, 남녀평등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또다시 던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남자가 여자의 외모를 보는 것에 상응하는 남자에 대한 여자의 조건은 뭘까? 그건 아마 '센스'나 '매너' 또는 '취향' 혹은 '코드' 정도가 될 것이다. 남녀관계에서 사실 여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센스 있고 자신의 취향에 맞춰줄 수 있는 남자를 찾는 것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그건 남녀관계에서 형성될 수 있는 특별한 느낌이고 어느 정도는 타고나야 하는 것이기도 하니 말이다. (사실 엄연히 따지고 보며 남자가 여자의 외모를 본다는 것도 결국은 어느 정도는 본인의 취향을 찾는 행위이기도 하다. 외모에 대하여 취향이라는 말을 붙이면 여자를 물건 다루듯 하는 것 같아서 불편해서 그렇게 표현하지 않을 뿐.)

남자가 돈을 주로 벌어오고 가장 노릇을 하던 시대에는 집'안'일의 역할 분담은 주로 여자가 담당했다. 이는 아마도 육체노동을 해야만 식량을 구할 수 있던 시대에서 내려오던 전통(?) 일 것이다. 남자가 육체적으로 힘은 더 센 것이 일반적이니까. 그런데 이제는 집'안'일은 기계들이 해줄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생겼고 (그러면서 집안일에 쏟아야 하는 시간들은 엄청나게 줄었고), 화폐가 생기고 산업화가 이뤄지면서 육체적인 노동이 기계로 상당 부분 대체되면서, 육체적인 힘이 세지 않아도 돈을 벌어올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해지면서 (최소한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보통 사람들은 남자 혼자서 벌어서 가정을 먹여 살리는 것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정상적인 변화는 남녀가 모두 같이 돈을 벌고, 남녀가 집안일을 공정하게 분담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연애나 결혼을 하는 데 있어서 남자의 경제력을 기준으로 사람을 줄 세우는 것도, 결혼 후에 집안일은 다 아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모두 어느 정도의 폭력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남자들은 제발 좀 집안일을 공정하게 분담해서 했으면 좋겠다!!)

물론 내 주위에는 '나도 충분히 한 집안 먹여 살릴 수 있으니 남자의 경제력은 중요하지 않아'라던지, '얼마든지 하고 싶은걸 해. 돈은 그동안 내가 벌면 돼'라고 말하는 여자들이 꽤나 많다. 하지만 아직도 남자의 경제력의 정도가 남자에 대한 예선 통과 기준인 경우는 여전히 적지 않은 듯하다. 경제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둘을 합쳐서가 아니라 '상대에 대해서만'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되었을 때 그것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단 것이다.

남자의 경제력을 가장 중요시하는 그녀들에게 남녀평등은 무슨 의미일까? 마찬가지로 남자도 여자의 경제력을 본다고 하면 그에 대한 그녀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왜 여자가 남자의 경제력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정당화되는데, 남자가 여자의 경제력을 보는 것은 지질한 것으로 평가될까?

그저 서로가 잘하는 것을 하면 되는 게 아닐까? 그게 사랑이고, 가족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