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 한국교회의 가장 큰 쟁점이자 딜레마가 아닐까? 교회와 보수적인 교인들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
우선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핵심은 마음에 있고, 어떤 의도로 어떤 주장하느냐에 있지 결론과 행위에 있지 않다. 그리고 이는 신명기 12-15장에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키라고 하신 행위들이 어떤 맥락에서 왜 나왔는지를 이해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십일조를 반드시 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께 묻고 싶다. 그렇다면 십일조에 대한 내용 바로 앞에 있는 먹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규례를 우리가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은 어떠한가? 우리는 삼겹살은 먹으면 안되나?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셨으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갖고 나오는 이론들이 보통 그 당시에는 냉장시설이 없으니 먹지말라고 한거다, 사회문화적으로 이유가 있다 등의 설명들이다. 그게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반대로 [그 당시에는 레위지파가 다른 생계를 해결할 방법이 없으니 그들을 위해서 십일조를 낸 것이며, 지금은 그런 문화가 없으니 십일조를 내지 않아도 된다]라는 반박도 가능하다.
십일조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에 나는 원론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그런 주장을 하는 분들께 여쭙고 싶은 것은 '당신은 왜 그렇게 십일조를 안내고 싶어하나?'에 대한 것이다. 결국은 물질이 아까워서다. 자기가 더 갖고 싶어서 십일조에 반대하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전제로 하는 종교이고, 그에 따라 [내려놓음]이 기독교의 핵심이 된다. 이 땅의 것에 집착하지 않고 모든 것은 하나님께 돌아가고 돌리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본인이 더 풍요롭기 위해서, 더 갖고 싶어서 십일조를 내지 않아도 싸우는 건 반기독교적이다.
물론, 당시에 십일조는 이스라엘 민족의 구조로 봤을 때 세금으로써의 성격을 일부 가졌고 현대사회에서 국가에 세금을 내니 십일조까지 내지 않아도 된단 주장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반대로, 현대사회는 당시보다 물질적으로 훨씬 풍요로워졌다. 따라서 그 중에 십분의 일을 또 하나님께 드린다해도 그 물질적 수준이 당시보다 훨씬 풍요로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주장은 [현실 및 사회적]으로는 타당할지 몰라도 [신앙 및 기독교적]으로는 타당하지 않다.
핵심은 마음에 있다. 내가 기꺼이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십일조를 드리면 되는거고, 십분의 일까지는 못되어도 자신이 가진 것에서 최대한 마음이 허용하는데까지 내면된다. 그리고 그게 이스라엘 민족 같이 하나의 공동체로 있을 때는 그렇게 십일조를 공동체에 내야 하지만, 만약 지금 출석하는 교회가 물질적으로 어렵거나 반드시 물질을 필요로 하는게 아니라면 어려운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마음으로 금전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십일조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할 수 없다. 현대사회에서는 [국가 공동체]도 하나님의 공동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맥락에서 [세금]을 탈루하는 교회 다니는 사람은 역으로 하나님께서 십일조에 대해 요청하신 사항을 위반하는 사람들이라 할 것이다. 그건 국가적으로 공동체의 존속을 위해 내도록 정해진 원칙이니까.
사람들은 신명기 12-15장에 나온 부분을 놓고 왈가왈부 싸운다. 그런데 핵심은 그 행위와 규례 하나, 하나에 있지 않다. 자신의 것을 하나님 앞에 기꺼이 내놓는 것.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따라 사는 것이 이 내용의 핵심이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 그러한 규례를 현대사회에 맞게 만들어서 지켜 살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마음을 보고 기뻐하실 것이라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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