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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 혹은 개독/일반적인 신앙에 대하여

한국교회와 술

술과 담배는 하지 말라고 교육받다.

모태신앙. 즉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님께서 교회에 다니셨던 나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술과 담배를 하지 말라고 교육받고 자랐다. 아이러니가 있다면 아버지께서는 술과 담배를 모두 하셨고, 지금도 하신다는데 있다. 그 아이러니를 그때는 깨닫지 못했지만.

그런데 성인이 된 이후, 담배야 자의적으로 발을 들이지 않으면 그만이었지만 술은 얘기가 조금 달랐다.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에서부터 술을 마시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난 술을 마시지 말라는 일방적인 지침에 설득이 되지 않았다. 성경 말씀 몇 구절을 인용해서 설득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렇다면 성경에서 먹지 말라는 고기들은 왜 먹어도 되고 두 가지가 왜 다르게 취급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누구도 그에 대해서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냥 받아들이라고만 했지.

술을 마시다.

그래서 술에 대한 나의 경계는 금방 무너졌다. 이해가 되지도 않았고, 내가 마셔야 어울릴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니까. 물론 항상 정신력으로 버텨냈는데, 군대에 가서 한번 필름이 끊겨 보고 난 후 술을 끊었다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다시 어느 정도는 마시기 시작했다.

술에 대한 나의 생각이 완전히 바뀌는데는 회사 체육대회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경영지원부문 체육대회였는데 막내인 내가 행정업무를 담당했고, 홍보실이 우승을 하자 선배들이 막내가 고생했다며 술을 엄청 줘서 밖에 나가서 팔굽혀펴기를 해서 술을 깨고 들어와서 마시고, 토하고 와서 마시고를 반복했는데 한 선배가 너무나도 따뜻한 말투로 '야 임마 정말 수고했어'라고 하며 폭탄을 한 잔 주는데 그 순간이 슬로우 화면처럼 돌아가며 '내가 이 잔을 거절하면 그게 기독교인으로써의 의가 세워지는걸까?'라는 물음표가 붙었다.

그때 깨달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랑을, 친밀함을 표현하는 다른 방법을 몰라서 술로 친밀함, 고마움 등을 표시하기도 한다는 것을. 그렇다면 그걸 그때 거절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을 거절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과연 그들의 마음을 본인의 종교적인 의로 거절하는 것이 성경이, 예수님이 가르치신 '사랑'일까? 왜 술은 무조건 마시지 말라고 하면서 율법적으로 먹는 것이 금지되었던 고기들을 먹게 된 베드로의 이야기는 누구도 말하지 않는 것일까? 그래서 그렇게 난 그 잔을 받고 또 곧바로 나가서 팔굽혀펴기를 하고 들어왔다.

한국교회와 술

사실 한국교회에서 술 마시지 말 것을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율법' 즉 교회의 법처럼 강조하는 것은 폭력적이다. 그러면 독일, 미국에서 술을 마시는 개신교 목사님들은 지옥에 간단 말인가? 거긴 문화가 다르잖아!라고 한다면 그건 이미 술 마시는 것 그 자체는 문제 없음을 인정하는 것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기독교는 지역에 따라 다른 신을 믿는 것이란 말인가?

한국교회에서 술을 엄격하게 금지하게 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한국에 발을 처음 내딛은 개신교 교파가 미국에서도 보수적인 장로교였다는데 있고 (미국에서 장로교는 한국만큼 크지 않다), 두 번째는 선교사들이 왔을 당시 조선사회 서민들은 술을 하도 많이 마셔서 일상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로 폐인생활을 하는 이들이 많았다는데 있다. 그래서 그들은 조선 사람들의 생활을 바로잡기 위해서 술 마시는 것을 전면적으로 금했던 것이다. 따라서 술을 마시지 말라는데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누군가의 신앙을 판단하는 잣대로 삼는 것은 잘못된 것이란 얘기다.

술을 많이 마시라고 할 필요도 없지만 그것만으로 누군가가 나쁜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많이 마시는 것이 을게 없는건 분명한데 그건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하는 얘기 아닌가? 그러니 술 마시는 행위 그 자체를 종교적으로 해석하는건 잘못된 율법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기에 그런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항상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

율법과 율법주의

술의 얘기로 길게 얘기를 풀었지만 사실 이는 기독교에서 율법과 율법주의에 대한 얘기다. '율법(律法)'은 한자로 '법률(法律)'의 한자를 순서만 바꿔놓은 것이고 영어로는 둘 모두 'law'로 번역이 된다. 그래서 결국 율법이라 함은 '기독교인이라면 지켜야만 하는 법'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실 '율법'이라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특정한 법이 제정되는 이유가 있듯이 율법 자체는 정해지는데 다 사회적, 인문학적, 종교적인 이유가 있다.

하지만 법을 어긴다 하더라도 예외조항들이 있듯이, 이는 율법에도 마찬가지다. 특정한 원칙이나 규칙으로 정해진 것을 어겼다고 해서 그 사람이 무조건 지옥에 가거나 그것만으로 천벌을 받을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작은 물건을 훔쳤다고 사형에 처해지는 것이 아니고, 그 물건을 훔친 맥락이 이해나 용납이 될 수 있으면 그 사람이 처벌되지 않기도 하지 않는가?) 또 율법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그 이면에 그 율법이 생긴 이유는 무시하기 시작하는 것이 '율법주의'이고 그러한 율법주의는 배척되어야 할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율법 그 자체가 무의미하거나 폐기되어야 할 것은 아니다.

교회에서 하지 말라는 것에는 이유들이 분명히 있고 일리가 없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한국 교회에서는 '왜' 그걸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인지는 누구도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는데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도 그 질문을 묻지 않고, 따라서 왜 하지 말라고 하는 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법을 해석하는 변호사가 법을 읽고 해석할 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태가 아닐런지...

한국 교회가 위기인 것은,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은 한국 교회들이 여러가지 문제들에 있어서 "왜"라는 질문에 답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들 무조건 순종하라고만 하고 머리로 이해시켜주려는 노력은 하지 않기 때문에. 이제는 무조건 따르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왜 그런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성경구절만 무조건 들이밀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설득될 수 있는 설명들이 말이다.

신앙은, 믿음은 마음으로 시작되지만 머리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견고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