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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풍경

연애가 인생에 갖는 의미

내겐 작년이 굉장히 힘든 한 해였다. 어느 정도였냐면 작년 1월에 결혼한 형의 결혼식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가지 못했는데 최근에 집들이를 가서 그 사실을 확인하기 전까지 무의식적으로 그 형이 결혼한 지 2-3년 정도가 된 것으로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즉, 작년 한 해가 내게는 마치 2-3년만큼 길게 느껴졌단 것이다.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그 과정을 혼자 견뎌내야 했다.

작년이 유난히 길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사실 지난 몇 년간 이런저런 일들로 인생의 오르막보다는 내리막이 많은 편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내 모든 것을 완전히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었다. 내 인생의 가장 어두운 그 기간을 함께 해준 사람들이,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위로해주던 사람들이 그 가장 어두운 순간에 내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배려는 그 일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남이 내게 무엇을 해주는 데는 필연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가족이 가장 오랫동안, 가장 가까이서 서로를 지켜보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이해가 상대적으로 더 깊은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누군가에게 해줄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면 부모님은 아주 어렸을 때 내가 보였던 모습들을 기반으로 해서 현시점에 나의 결정, 행동과 반응을 판단하는데 사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기 때문에 부모님의 그런 추론이 맞는 경우는 굉장히 많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내가 사람들과 어떻게 친구, 선생님, 직장동료와 관계를 맺고 공부를, 운동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부모님도, 가족 구성원 누구도 완벽하게 알 수가 없다. 그에 대해서 가족은 '내가 말하는 내용'을 기반으로 해서 이해를 할 뿐이다.

사실 가족 간의 대화가 많이 필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서로 공유되지 않는 삶의 영역을 말로 공유하는 과정이 대화란 것이다. 두 사람 간의 대화가 이뤄지는 것은 단순히 그저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을 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생각을,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어떤 형태로든지 상대에게 전달한다. 그렇게 대화를 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삶과 모습 중에서 상대가 같이 경험하지 못하는 영역을 공유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연인, 친구, 부부, 가족 간에 대화는 매우 중요하다. 그건 삶을 상대에게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말로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들에는 한계가 있다. 7시간 정도 잠을 자고, 누군가와 수다를 2시간 정도 떠는데 그 사람을 일주일 만에 만나는 것이라고 해보자. 그러면 우리는 17시간*7일-2시간(수다 떠는 시간), 즉 우리 인생의 117시간 분량의 경험을 2시간 동안 공유할 뿐이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것이 아니라 몇 달, 때로는 몇 년에 한 번씩 만나지 않나? 가족과 더 친밀하게 대화를 해서 매일 1시간씩 대화를 한다고 치자, 그래 봤자 우리는 17시간*7시간-7시간, 즉 우리 인생의 112시간을 7시간 동안 공유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인간은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이는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자로 사람 은 사람이 사람에게 기대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만약 의지를 하는 사람이 그냥 누워버린다고 생각해 보자. 그렇게 누워버린 사람을 누군가가 완전히 의지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은 'T'와 같은 형태를 가진 관계가 형성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 'T'에서 위를 받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얼마나 받쳐주고 있을 수 있겠나? 그리고 사람 人을 자세히 보면 왼쪽의 사람이 오른쪽의 사람을 의지하고 있기도 하지만 오른쪽 사람이 왼쪽 사람에게 의지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사람은 '서로' 의지하는 존재이지 한쪽이 일방적으로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존재가 아니란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연인을, 배우자를 찾을 상당수 사람들이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물론 중요하다. 사람 관계는 상호 간에 의지하면서 형성되고, 연인과 배우자에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그 관계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내가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단 것이다. 내 인생은 기본적으로 내가 책임지고, 내가 살아내는 것이다. 거기에서 연인은, 배우자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런 내 인생에서 흔들리는 부분에 대해서 받쳐주는 존재이지 내 인생을 전부 다 책임져주는 존재일 수 없다. 그런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자신의 인생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무게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결국 인생은 혼자 살아가는 거야"라는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은 한다. 우리 모두의 삶의 영역에서 내가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고, 누구도 완벽하게 이해해 줄 수 없는 혼자 감당해야 하는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도 혼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없고, 누구도 자신의 인생을 오롯이 혼자 감당할 힘은 갖고 있지 않다. 물론 인생의 어느 한 시점에 자신에게 밀려오는 것들을 그 순간에, 혹은 상당한 기간 동안 혼자 감당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쌓인 피로감과 상처들이 언젠가는 그 사람을 무너뜨리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리가, 건물이 완전히 붕괴되기 이전에 그 구조 곳곳에서 금이 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작은 실금들이 곳곳에 생기면 어느 순간 그 실금들이 그 구조물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결함으로 작용하여 건물이나 다리를 무너뜨리듯이 인생 역시 살아가면서 쌓이는 상처와 피로감이 어느 한순간 그 사람을 잡아먹을 수도 있단 것이다.

연애는, 사랑은 그렇게 내 안에 금이 가는 것들을 보완해주는 작업이며 연인은, 부부는, 가족은 그런 보완을 해주는 존재다. 물론 친구도 그런 역할을 해주지만, 위에서 복잡하게 산수까지 해가며 설명했듯이 친구가 그런 역할을 해주는 데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기에 더 가까이서, 나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그러한 작업을 <상호 간에> 해주는 것이 연애이며, 사랑이다. 그리고 연인이 된다는 것은 그렇게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주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고, 결혼을 하여 부부가 된다는 것은 평생을 그렇게 살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 인생의 대부분 영역을 결국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이상형을, 배우자를 찾을 때 <내가 약하니까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다>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이기적인 것이다. 대놓고 그렇게 말하는 않지만 그건 '네 인생도 네가 책임지고, 내 인생도 네가 책임져'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연애 회의론자라든지 결혼 회의론자라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한참 설명했지만 인생을 완전히 혼자서 살아가면서 <평생>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누구도 그런 능력을 갖고 있진 못하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그럴 수 있는 것으로 느껴져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연애를 함에 있어서도, 배우자의 관계에 있어서도 이 점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연인이나 배우자가 힘든 일이 있거나 인생을 버겁게 느낄 때 그 상대가 '그건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네가 책임져'라며 방치하고 자기 인생만 살아내도 된다는 것이 아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어둡고 힘든 시기에, 그렇게 내 옆을 지켜준 사람들은 내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존재 자체가 내겐 힘이 되었다. 그들은 내게 아무 말도 해주지 못했고, 궁극적으로 내 인생의 무게는 내가 버텨내야 하는 것이었지만, 그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아니, 하지 않으면서 있어주는 그 자체가 내겐 큰 힘이 되었다. 그것이 그들이 내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을 내가 알았기에... 그들도 같이 아파해주고 있단 것을 느낄 수 있었기에...

마찬가지로 연애에 있어서, 그리고 가정을 끌어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저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일 때가 있다. 열 마디, 아니 수백 마디 말보다 때로는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는 것이 더 큰 힘이 될 때가 있다. 연애를 한다는 것은, 연인이, 배우자가 있다는 것은 내 인생을 100% 떠받쳐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힘으로 일어날 때 옆에서 그렇게 부축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게 연애가, 결혼이 인간의 삶에 갖는, 아니 가져야 하는 의미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세상에 내가 <전적으로>, <완전히>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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