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에서는 젊은 사람들에게 유난히 소명과 비전을 갖도록 많이 요구하는 듯하다.
그 자체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한국교회에서 말하는 소명과 비전이 잘못된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한국교회에서 말하는 소명, 비전, 사명은 세상이 말하는 인생목표, 계획과 다른게 없다. 그걸 하나님으로 포장할 뿐. 자신의 욕구가 아니고 마치 하나님께서 그걸 본인에게 심어놓은 것처럼.
그런데 우리가 죽을 때까지 그걸 어떻게 알겠나?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계시를 줘서 [이걸 해라]고 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 안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지만 우리가 엇나가는 방식과 범위와 함께 우리가 가장 이상적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구현해내는 방식과 범위도 알고 계신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능력과 환경을 주셨다고도 생각한다.
그렇다면 개인 고유의 소명, 사명과 비전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그건 [하나님은 어떤 분이고 하나님께 가장 중요한게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일단 손에 쥐고 이해한 이후 [그게 구현된 질서는 어떤 형태를 갖나?]에 대해 고민하면서 [내가 있는 영역과 내게 주어진 것을 통해서 그 질서를 세울 수 있는 나만의 영역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나만의]라는 부분 때문에 고지론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여기에서 [나만의]는 정말 작게는 내 삶, 나의 가정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건내는 말 한 마디, 내리는 의사결정은 모두 [나만이] 할 수 있는 영역 아닌가? 그리고 나의 가정에서 배우자나 자녀, 부모에게 가족 안에서 나의 위치에서만 할 수 있는게 있지 않나? 그런 것들 하나, 하나가 기독교인의 소명, 비전, 사명이어야 한다.
사명, 소명, 비전이 [일]이나 [직업]을 의미해서는 안된다. 사실 일과 직업이라는 것 자체가 인간이 만들어 낸 개념 아닌가? [일]이라는 객관적인 것이 존재하나? 과거에는 직업으로 인정받지 않던게 이제는 직업으로 인정받는게 얼마나 많나? 사실 일과 직업은 사회적 계층이 공식적으로 사라진 현대사회에서 구분을 위해서 만들어진 개념일지도 모른다. 조선시대에 '자네는 직업이 무엇인가?'라고 물었겠나? 신분을 물어봤겠지.
모든 일과 직업은 결국 관계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들어가면 기독교인의 사명, 소명, 비전은 결국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질서를 세워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관계는 일대일일 수도 있고, 사회구조 안에서 형성된 것일 수도 있다.
그걸 알기 위해선 하나님께서 내게 지금까지 주신 것들을 돌아봐야 한다. 내가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고, 어떤 환경에서 자라났으며, 어떤 길이 열렸고 어떤 길이 닫혔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합하여 선을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해서.
그 과정에서 내가 가진 것에 대해 우월감을 느껴서도 안되지만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해 좌절해서도 안된다. 이는 무엇인가의 귀천은 다 세상이 만든 기준에 따라 판단되는 것일뿐, 하나님께 귀하고 천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것과 갖지 못한 것은 [다른 것]일 뿐이지 더 귀하고 덜 귀한 것은 없다.
본인이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은 왜 이걸 내게 주시고 이걸 막으셨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아니, 하게 되는게 맞다.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시고 계획을 갖고 우리를 만드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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