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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말씀 묵상-2020년

욥기 29장-33장 말씀 묵상

엘리후가 자신이 더 어려서 조용히 있다며, 더 어리다고 더 모르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말하기 시작한다. 글쎄. 그의 말대로 더 어리기 때문에 더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욥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내용은 맞지만 그가 보이는 모습 또한 그렇게 성숙하지는 않다. 그는 욥을 비판할 태세를 한다. 그는 욥이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욥은 자신이 하나님보다 낫다고 한 적이 없는데 그는 욥이 그리 말했다고 하며 주장을 시작한다. 공감능력. 자신이 알 수 없는 것을 인정하는 마음. 그게 엘리후에게는 결여되어 있다.

반면에 나는 욥의 울부짖음에 공감이 된다. 인생에는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착한 사람들이나 잘못한게 크게 없는 사람들에게 힘든 일이, 말도 안되는 힘든 일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욥은 자신의 삶을 아무리 돌아봐도 자신은 그렇게 특별나게 하나님을 떠난 적이 없는데 왜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셨는지가 이해되지 않아 고통스럽고 힘든 것이다. 

왜 그런 것일까? 어떤 원리에 의해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지는 나도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 땅의 유한한 삶과 소유보다 높은 가치가 있단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인의 삶은 그것에서, 이 땅의 것들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이런 말을 하면 오해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서 조심스럽지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런 고통스러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그대로 두신다고 난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그걸 야기하신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하나님께선 이 땅을 창조하시고 그 안에서 존재들이 자유롭게 선택하고 결정할 선택권을 주셨는데, 그렇다 보니 가슴 아픈 일들이 일어난단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가슴 아프고 억울한 일들에 하나, 하나 다 개입하시면 이 땅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유가 진정한 자유겠나? 나의 억울한 일과 다른 사람의 힘든 일에 다 개입하시면 그 개입함이 야기하는 나비효과는 어찌할 것이란 말인가? 

하나님은 그 자유를, 인간이 스스로 깨닫고 하나님 앞으로 나올 자유와 선택권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꼭 필요한 경우에만 개입하신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건 하나님께서 우리가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인해 힘들고 고통스러울 것을 알지만, 그걸 잘 극복해 내면 삶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 더 잘 깨달을 것을 아시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지 않나?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만한 시험만 허락하신다고. 하나님께서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극복할 힘이 있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사실 우리 자신을 잘 모르지 않나? 함부로 그 경계에 선을 긋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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