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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말씀 묵상-2020년

예레미야서 4장-9장

The LORD said, 'It is because they have forsaken my law, which I set before them; they have not obeyed me or followed my law. Instead, they have followed the stubbornness of their hearts; they have followed the Baals, as their fathers taught them. (예레미야 9장 13-14절) O LORD, do not your eyes look for truth? You struck them, but they felt no pain; you crushed them, but they refused correction. They made their faces harder than stone and refused to repent...And when the people ask, 'Why has the LORD our God done all this to us?' you will tell them, 'As you have forsaken me and served foreign gods in your own land, so now you will serve foreigners in a land not your own.' (예레미야서 5장 3절, 19절

우리 삶은 왜 고통으로 가득 찬 순간들이 있고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릴 벌하는 것처럼 느껴질까? 그건 케바케인데, 어떤 경우에는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이키게 하시려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고 혼내시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사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지 않기 때문에, 우리 욕심으로 결정하고 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고통에 그에 뒤따르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그 고통속에 계속 머무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 온전히 있지 못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벌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돌이키게 하기 위함이고, 하나님께서 벌하시지 않는 경우에도 고통을 느낄 때는 우리가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고 우리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구와 욕망이 있기 때문에 그 지점에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든지, 우리가 고통을 느끼는 것은 하나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하나님 안에 거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을 원망부터 한다. 교회에 다니며 믿음과 신앙을 뽐내는 이들이 말이다. 

Hear this, you foolish and senseless people, who have eyes but do not see, who have ears but do not hear: Should you not fear me?' declares the LORD. 'Should you not tremble in my presence? I made the sand a boundary for the sea, an everlasting barrier it cannot cross. The waves may roll, but they cannot prevail; they may roar, but they cannot cross it. (예레미야 5장 21-22절)

하나님께서 말하는 '두려움'은 무엇일까? 우리 아버지 신앙의 기반은 두려움이다. 하나님께서 날 벌하실까 봐, 내가 잘못하면 인생이 큰일날 것 같아서. 그런데 그 마음 자체도 사실은 하나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갖게 되는 것이다. 만약 가치가 하나님 안에 있다면 '내 인생이 잘못되는 것'이란 전제가 있을 수가 없다. 하나님께선 선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잘못되는 것은 사실 '내 마음대로 안되고, 내가 힘들어지는 것'인데, 앞에서 말씀했지만 내 마음대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일치하거나 부합하지 않다면 그건 그로 인해 힘들어지는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나의 그것보다 우선순위에서 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두려움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은 일종의 최후의 보루다.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하는 자녀가 최소한 하나님 안에 거하게 하기 위해서 두려움을 느끼게 하신다. 그러한 두려움으로 자신의 자녀를 자신 안에 머무르게 하면서 그 자녀가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가고 그 두려움을 넘어서고, 그 두려움에서 빠져나오길 원하신다. 

Do not go out to the fields or walk on the roads, for the enemy has a sword, and there is terror on every side. (예레미야 6장 25절) Oh, that my head were a spring of water and my eyes a fountain of tears! I would weep day and night for the slain of my people. (예레미야 9장 1절)

그러한 하나님의 마음은 이 구절에서 보인다. 그러게 두렵게 하고 벌 주는 하나님이시라면 하나님은 왜 자녀들에게 적이 있다고 나가지 말라고 하고, 자녀들의 아픔과 고통으로 인해 눈물을 넘치도록 흘리시겠나?

아이를 낳아봤지만 인간에 대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부모의 사랑과 같은 것이 가장 자연스러울 것 같다. 그런데 본인 자녀가 잘못되라고 혼내는 부모가 있을까? 실제로 그 방법이 잘못된 것이라고 해도 그건 그 부모가 미숙하기 때문이지 본인의 자녀가 죽으라고 혼내는 부모는 없다. 본인은 본인 기준에서 나름의 사랑의 표현과 자녀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혼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 우리를 혼내시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This is what the LORD Almighty, the God of Israel, says: Reform your ways and your actions, and I will let you live in this place. but I gave them this command: Obey me, and I will be your God and you will be my people. Walk in all the ways I command you, that it may go well with you. (예레미야 7장 3절, 23절 )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한 가지만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을 따를 것. 하나님 안에 거할 것.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시겠다고 한다. 우린 왜 그 한 가지를 지키지 못하고 사는걸까? 우린 오늘도 우리의 욕구와 욕망으로 가득찬 삶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