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사랑의 종교고, 우리가 사랑하기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3편 참조). 우리가 사랑해야,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야 비로소 본래의 모습을 회복할 것이고, 사람들이 그렇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습들을 회복할 때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회복될테니까.
첫 글로 돌아가서, 우리가 큰 그림과 목표가 아니라 작은 것들에 집중하고, 과정을 중시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람들의 마음은 목표를 잡고 노력한다고 바뀌지 않는다. 사랑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회복된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식하고 물리적으로 교회에 나오는 것은 [결과]이지, 과정이 아니다. 그러한 결과가 발생하기 전에 우린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들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사랑]을 해줘야 한다. 그들에게 직접 교회 얘기를 하는 것이 불편한 시점에는 그것을 피할 수 있어야 하고, 그를 교회로 끌고 나오겠다는 목적을 갖고 대할 것이 아니라 그를 사랑하기 위해 사랑해야 한다. 그가 교회에 나오는 [결과]는 첫 글에서 설명했듯이 하나님의 전쟁이지 나의 전쟁이 아니다. 우리의 역할은 [과정]에 있지 결과에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은 이사야서 35장에서 그려지고 있는 사자들이 어린양과 뛰놀고 어린이들이 함께 뒹구는 나라다. 우리는 그것이 회복되는 과정을 살고 있다. 그런 나라는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100년 남짓한 시간 안에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우린 그 [과정]에 잠시 이 땅에서 살다 갈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역할은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도구와 환경으로 그 영역에서 하나님의 나라, 서로 사랑하는 나라를 회복시키고 가는 것일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그래서 우리는 멀리 있는 거대한 무엇인가를 위해서 노력하는 것보다 주위에,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고 사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도 사실은 수단이다. 그 일을 통해 이 땅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질서를 회복하고, 그 일을 하는 과정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 그게 우리가 초점을 맞춰야 하는 부분이다.
그 결과물은 우리가 원하고 예상하는 대로 나오지 않을 수 있다. 나오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과정]에 있다. 나는 그렇게 씨앗을 뿌리면 되는거고, 뒤에 와서 그 마음밭을 갈고 거름을 주는 역할은 다른 사람이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게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했어요.'라고 말할 수 있으면 된다. 정말, 정말 최선을 다했는지 본인에게 자문한 뒤에 말이다. 더 잘할 수 있는게, 본인의 능력 범위 내에서 있는지를 돌아본 후에.
우린, 그렇게 살다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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