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Apollos was at Corinth, Paul took the road through the interior and arrived at Ephesus. There he found some disciples and asked them, 'Did you receive the Holy Spirit when you believed?' They answered, 'No, we have not even heard that there is a Holy Spirit.' So Paul asked, "Then what baptism did you receive?" "John's baptism," they replied. Paul said, "John's baptism was a baptism of repentance. He told the people to believe in the one coming after him, that is, in Jesus."(사도행전 19장 1-2절)
우리는 [한국인]이라고 하면 한국어도 어느 정도 하고 한국의 문화와 질서를 어느 정도 이상 이해할 것을 기대한다. 귀화 과정에서 그런 시험을 보는 것은 우리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와 관련된 어느 정도의 지식과 능력이 있을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회사일을 하고, 무슨 전공자라고 하기 위해서는 그와 관련된 지식과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지식과 능력은 그냥 있는다고 해서 유지되지 않는다. 파일럿들은 주기적으로 비행능력을 검정하고, 어느 정도 이상 시간을 반드시 비행해야 그 면허가 유지되는데, 이는 가만히 있으면 그 능력이 무뎌지기 때문이다. 파일럿 외에도 그 능력을 중간에 시험하는 자격증들은 굉장히 많다. 이는 반복해서 계속 갈고 닦지 않는 능력은 계속 감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독교인과 하나님, 교회라는 이름을 파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도, 성경도, 예수님의 가르침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한번 하나님을, 예수님을 알았다고, 인생 어느 순간에선가 성경을 읽었고 하나님을 알았다고 해서 본인은 기독교인이고 잘 살고 있다고 생각, 아니 착각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그런데 면장을 땄어도 비행을 하지 않아 그 감각과 능력이 떨어지면 파일럿 자격을 유지할 수 없듯이, 어느 한순간 은혜가 충만하고 말씀을 제대로 알고 잘 살았어도 이제는 더이상 그러지 않는 사람은 기독교인이라 할 수 없다. 이는 계속 하나님을 보지 않으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세상에 물들고 복음과 말씀에서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변화는 우리 삶 속에 갑자기 훅 오지 않고, 우리는 야금야금 세상적으로 변해가다보니 그렇게 멀어진 사람들은 자신이 기독교인이 아닌 것을,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것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한다.
많은 이들은 그렇게, 껍데기만 기독교인인 괴물이 되어가고, 그들이 가장 위험한 것은 그들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과 자신의 삶이 하나님과 관련 없이 본인 힘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을 인지하기라도 하면 새롭게 알 수 있는데, 그걸 알지도 못하는 자들은 되돌이키기도 힘들다.
이 말씀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고도 성령님과 예수님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When the seven days were nearly over, some Jews from the province of Asia saw Paul at the temple. They stirred up the whole crowd and seized him, shouting, 'Men of Israel, help us! This is the man who teaches all men everywhere against our people and our law and this place. And besides, he has brought Greeks into the temple area and defiled this holy place.' (사도행전 21장 27-28절)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그를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받아줬는지에 대해 물음표가 생길 때가 있는데, 그의 삶을 보면서 그들은 그의 말이 아니라 삶을 통해 그가 정말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도행전에 보이는 그의 모습은 모르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라고 할만큼 복음을 전하는데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정말로 사랑하면, 그의 삶이 그렇게 변할 것이다. 우리가 밋밋한 신앙이라고 부르는 수준의 신앙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 하나님과 예수님보다 세상을 훨씬 사랑하고 세상을 훨씬 많이 의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어떻게 그게 티가 나지 않고, 그의 삶이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행위가 먼저냐 믿음이 먼저냐는 질문이 가장 멍청하고 쓸모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믿음이 있으면 그 행위가 선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정말로 믿는데 그 사람의 행위가 어떻게 안 변할 수 있나? 그의 기준이 어떻게 변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신뢰할 때는 그 사람을 대하는게 달라지듯이, 하나님을 정말로 믿는다면 우리의 삶이 변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하나님을 믿고 작은예수로 산다는 것은 우리의 기준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과 자신의 노력에 더 의지하는 사람은 사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은 믿지 않는 것이고, 그것을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가 없다. 이는 기독교의 모든 것은 그것을 전제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해주지 않는다면 우리의 노력도 필요하다면서 노력만 강조하는 사람도 잘못된 것이다. 이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할 수 없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무엇이 일어나게 하시거나 일어나게 하지 않으시는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전제하는게 맞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전제되어야 하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지만 반드시 막으시는 길은 있다고 전제하는게 맞다. 그리고 최선을 다했다면 하나님께서 왜 그 길을 막으셨는지를 놓고 고민하고 기도하는게 맞다. 그런 과정 없이 노력만 강조하는건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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