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ersecuted the followers of this Way to their death, arresting both men and women and throwing them into prison, as also the high priest and all the Council can testify. I even obtained letters from them to their brothers in Damascus, and went there to bring these people as prisoners to Jerusalem to be punished. (사도행전 22장 4-5절)
바울의 고백을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뭉클하고, 한 편으로는 하나님께서 일하는 시는 방법에 감탄하게 된다. 바울이 아니었다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 이 고백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에게 분노했지만, 그의 이러한 고백도 그들의 마음을 열 수 없었지만 그 안에 한 명, 아니 그 이상의 사람들은 그의 고백에 뭉클했을 것이고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바울이 아니면,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 예수님을 따랐던 이들이면 할 수 없는 고백이다. 하나님은 바울을 복음이 그런 방식으로 전해지는 도구로 사용하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참으로 놀랍고, 또 놀랍다.
The crowd listened to Paul until he said this. Then they raised their voices and shouted, "Rid the earth of him! He's not fit to live!" (사도행전 22장 22절)
난 개인적으로 지하철에서 지옥 얘기를 하거나 거리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 얘기하는 것을 싫어한다. 한 때는 증오했고, 한 때는 그것도 그들의 신앙고백이고 용기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다시 싫어하는 방향으로 굳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건 반성경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수님은 수도 없이 세상은 너희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너희는 한두번 얘기하고 그들이 듣지 않으면 발을 털고 그 집을 떠나라고 했다. 사람들의 마음은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바뀌지 않는다. 그건 우리의 전쟁이 아니고,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마음을 굳건하게 닫은 사람들도 사랑하셔서 그들에게 자유를 허락하셨고, 하나님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들이 마음문을 열 때까지 옆에서 지켜보고 계신다. 스스로 하나님 앞으로 나올 때까지.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그들 주위에 사람을 보내고, 상황을 만들어서 그들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계기를 주신다. 하나님은 그렇게 기다리신다.
그렇게 다가가고,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사랑으로 인한 것이어야 한다. 그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 사람도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님의 삶을 깨달아 알고 따라가길 원하는 간절함으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우리 사회에서 공중도덕으로 받아들여지는 예의까지 깨가면서 소리를 지르는 것은 사랑과 안타까움이 아니다. 그건 본인은 옳고 당신들은 틀렸다는 생각에, 어느 정도의 우월감을 갖고 외치는 소리일 가능성이 높다.
지하철과 거리에서 사람들이 자신이 외치는 소리에 영향을 받지 않고 바뀔 수 없다는 것을 알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 주위 사람들에게 집중하고 그들에게부터 다가갈 것이다. 그렇게 해도 우린 평생 한두사람에게 제대로 복음을 전하지 못할 수도 있다.
Then Paul, knowing that some of them were Sadducees and the others Pharisees, called out in the Sanhedrin, 'My brothers, I am a Pharisee, the son of a Pharisee. I stand on trial because of my hope in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When he said this, a dispute broke out between the Pharisees and the Sadducees, and the assembly was divided. (The Sadducees say that there is no resurrection, and that there are neither angels nor spirits, but the Pharisees acknowledge them all.) (사도행전 23장 6-8절)
사두개인과 바리세인들은 하나님에 충성하지 않았다. 왜? 라는 질문을 하지 않고 자신들의 논리, 자신들의 해석과 율법에 구속되어 있었고 그것을 놓고 싸운다. 그들은 하나님을 더 알아가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생각이 옳다고만 생각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은 예수님께서 오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그 프레임을 깨셔야만 하셨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오늘날 한국교회는?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최소한 덜하지는 않은 느낌이다. 안타깝게도. 교회를 틀에, 이러이러한 것을 지키라는 프레임에 빠져서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복음의 본질은 잃어가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삶으로 내가 믿는 복음을 살아내고, 내 지인들에게 내 삶을 통해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 때로는 너무 힘들다.
이 말씀 이후에 바울이 풀려나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서는 아직 할 일이 남은 이들을 어떻게 움직이시는 지를 발견한다. 내가 이 땅에서 할 일이 남았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이 땅에 남겨놓으실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도 없고, 우리가 극단적 선택을 해서도 안된다. 그러기는 쉽지 않지만, 그러기 위해 매일, 매일 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만 한다. 그래야, 그럴 수 있다. 한 때는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이젠 너무 살고 싶어서 죽음이 두려운 내 모습을 알기에 이런 글을 쓰는 내 자신이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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