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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의 일상생활

프리랜서에겐 퇴근이 없다

오랜만에 일찍 집에 왔다. 어머니는 대번에 놀라시며 '어이구, 오늘은 웬일로 네 얼굴을 보냐?'라고 하시더라. 지난주에 부모님과 크게 부딪힌 이후 부모님과 같은 공간에 있으면 계속 부딪히게 되길래 내가 사용하는 공유 사무실에 항상 10시에서 11시 사이까지 있다 왔으니 그러실 만도 하다. 그런데 그렇게 오래 있다 보니 공간에 질리기도 하고, 마침 비도 오고 그래서 조금 일찍 퇴근하여 집에 8시 50분에 도착했다. 비가 올 땐 내 방에서 일하는 게 일의 능률도 오르고 기분이 좋아져서.

그렇다. 공식적으로 '퇴근'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프리랜서에게 퇴근은 없다. 완전히 자리를 잡고, 자신이 섭외되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프리랜서들은 모르겠으나 어지간한 프리랜서들은 눈을 감고 잠들 때야 비로소 퇴근하고, 눈을 뜨면서 출근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나는 분명 내가 사용하는 공유 오피스에서 '퇴근'을 했는데 집에 들어와 잠시 방바닥에 등을 붙이고 역시나 연승에 이어서 연패의 늪에 빠질 것 같은 LG의 경기를 보다가 짜증이 나서 다시 일을 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오늘의 두 번째 출근이다. 오전에는 사무실로, 저녁에는 내 방 책상으로.

이젠 사실 퇴근 없는 삶이 더 익숙하다. 회사를 다니다 대학원에 간 이후에는 '퇴근'이란 개념을 경험한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대학원생들 역시 프리랜서와 마찬가지로 봐야 하는 자료가 넘치고, 써야 하는 페이퍼는 끊이지 않기 때문에 퇴근이라는 것을 경험할 수가 없으니까. 심지어는 얼마 전에 지인들과 만나서 퇴근 후에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데 아무리 기억하려고 노력해도 내가 회사에 다닐 때 퇴근 후 뭘 했는지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더라. 하긴, 내가 제대로 퇴근이라는 것을 해본 지도 10년이 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래도 난 일단 내가 사용하는 '공식적으로 일하는 공간'을 벗어날 때 '퇴근'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래야 그 공간에서 잠을 자는 공간인 내 방으로 오는 길에라도 퇴근하는 느낌을 내고, 창 밖을 멍하니 보며 소개팅, 연애, 과거, 영화, 드라마, 스포츠 등과 같이 비생산적이고 아무 의미 없는 생각을 하면서 머리를 식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멍하니 있고 싶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중 잠시라도 '미래'에 대한 생각이 파고들면 얼마나 짜증이 나는지... 그 단어가 떠오르는 순간, 내 머리는 다시 출근해서 일 생각을 하기 되기에 '미래'는 나만의 퇴근시간에 만큼은 떠올리면 안되는 금기어다.

퇴근해서 내 방의 유일한 대화 상대이자 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유일한 친구 '짱구'에게 '짱구야 스탠드 켜'라고 명령하고 나서 백열전구가 들어간 책상 스탠드가 켜지고, '짱구야 선풍기 켜'라고 강요한 이후에 방바닥에 드러누워서 선풍기 바람을 맞고 있을 때가 하루 중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회사원들은 모를 것이다. 그 순간 만큼은 내가 회사원들을 얼마나 부러워하는지를... 그들은 그러다가 잠이 들면 되는 것 아닌가? 난 20-30분 정도 그러다가 다시 책상 앞으로 '출근'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행복하고 감사하다. 뭔가 할 일이 있는 게, 큰 금액은 아니더라도 통장에 입금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 지를 잘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