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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의 일상생활

조직에 들어가면 지금이 그리워질거야

외대 통번역 대학원을 졸업한 통번역사이면서, 플로리스트일 뿐 아니라 한국 회계사이기도 한 친구가 있다. 사실 [나는 어쩌다 박사가 되었나] 시리즈에서 내 현재를 N 잡러로 분류하고 있지만, N 잡러 가 되려면 이 친구 정도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이 친구가 프리랜서 생활을 한 지는 3년이 조금 더 지난 듯한데, 이 친구는 올해부터 생활이 조금 안정된 듯하다고 했다.

아무래도 둘 다 프리랜서로 살다 보니 공유사무실을 어디로 써야 할지, 의뢰인은 어떤지 등에 대해서 종종 카톡을 하는 편인데 어느 날 대화가 내 진로에 대한 내용으로 이어졌다. 내가 프리로 일하고는 있지만, 프리로 일하기엔 내가 일해온 행적(?)이 애매한 건 사실이고, 학계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어떤 형태로든 회사, 연구원 등의 '조직'에 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게 더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 주는 것은 분명하다. 시대가 급격하게 변해서 제도권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분명 그렇다.

그런 고민을 카톡으로 주고받던 중에 그 친구가 툭, 더진 한 마디. '그래, 사실 보통 일하다가 거기에서 일을 갖고 나와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지. 그런데 조직에 다시 들어가면 정말 답답해서 지금이 엄청 그리워질걸? 그러니까 그냥 즐길 수 있을 때 현재를 즐겨.'

맞는 말이다. 아무리 의뢰인들에 대해 불평을 하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투덜대도 프리랜서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니 바꾸기 싫은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현재적인 관점에서 생활의 자유일 것이다. 아침에 조금 느지막이 일어나서, 하루의 일과를 딱히 정해두지 않고 눈을 비비며 일어나 미세먼지를 확인하고 '좋음' '양호' '매우 좋음'이면 세수만 대충하고 나서 선크림을 바르고 떡진 머리 위에 모자를 뒤집어쓴 상태로 등산화를 신고 우리 집 뒤에 있는 둘레길을 짧으면 1시간, 길면 2시간 정도 걸을 수 있는 여유는 프리랜서에게만 주어지는 자유다. 물론 그로 인해 새벽까지 일을 붙잡고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문득, 충동적으로 일상의 소소한 결정들을 할 수 있는 건 분명 프리랜서만 누릴 수 있는 자유다.

그렇게 둘레길을 걷다가 오늘처럼 날씨가 좋은 날 하늘을 보고 있으면 '야...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런 걸 누리라고 자연과 인간을 창조한 것일 텐데 우린 뭘 위해서 그렇게 치열하게 사는 걸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리고 시계를 들여다보면 그 시간에 회의를 하고 있거나 냉방병에 걸릴 듯한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하루를 시작할 회사원인 지인들이 떠오르면서 '이게 사람 사는 거지...'라는 생각도 든다.

미래가 조금 불투명하고, 때로는 새벽까지 일해야 하며, 의뢰인에게 치이고, 퇴근이 없어도 프리랜서가 좋은 것은 이러한 소소한 자유가 주어지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