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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의 일상생활

프리랜서에게도 출근이 필요해

'그냥 집에서 일해도 되는 것 아니야?'

성수에 내가 출근하는, 핫 데스크로 사용하는 공간을 잡았다고 하자 들었던 말이다. 회사원으로만 일해 온 그 친구에게 자세히 얘기해 봤자 잘 이해를 못할 듯해서 특별히 대응을 하지 않고 넘겼다. 사실 당시만 해도 일감이 잡히지 않은 상태였다 보니 별도의 공간을 찾아서 계약하는 것은 내게 꽤나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그 친구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 이해가 되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공간을 계약하고 사용하기 시작한 건 집에서 일을 하면 내 일하는 공간과 쉬는 공간이 분리가 되지 않아서 쉬어도 그게 쉬는 것 같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난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그런 느낌을 이미 경험했었다. 학교 연구실에서 논문을 쓰다가 집에 와서 또 새벽까지 자료를 보고 글을 쓰는 게 심사 기간에는 일상이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논문을 쓰지 않아도 되는, 아니 쉼이 반드시 필요할 때 조차도 나는 나도 모르게 논문 생각을 하고 있더라.

물론, 30대 후반의 싱글 프리랜서에게 출근이 필요한 것은 단순히 일과 쉼의 공간이 분리될 필요가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30대 후반에 부모님과 같이 사는 싱글 프리랜서는 어머니와 거리를 두기 위해서라도 일하는 공간이 별도로 필요하다. 어머니께서 수시로 방문을 여는 건 기본이고, 눈 앞에만 보여도 짜증이 나신다고 하니 그런 어머니를 위해서도, 그런 반응을 듣고 짜증을 내게 되는 나를 위해서도 출근할 나만의 공간은 필요했다.

올해 수입이 보장되지 않았던 시기에 일하는 공간 계약을 한 것은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가격과 위치 때문에. 나는 작년 7-8월에 Wework를 사용했었다. 그런데 확실한 수입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Wework를 쓰기에는 비용이 너무 비싸기도 했고, 항상 노트북과 책 등을 들고 다녀야 하는 HotDesk형태의 계약에 지쳐있는 상태이기도 했다. 그리고 주위에서 개인사업을 시작하거나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다양한 형태의 사무실 공유 업체가 생긴 듯해서 혹시나 내가 부담할 수 있는 가격대의 사무실이 있는지를 2-3주 동안 알아본 후에 결정한 공간이 지금 내가 사용하는 공간이다.

난 공간에 대한 큰 욕심이 있지는 않았는데, 그 2-3주의 기간이 공간에 대한 절실함을 만들어내더라. 그리고 내 인생에 있어서 그 기간이 내가 가장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던 시기였다. 가격이 저렴하면 창고 같거나 화장실 냄새가 나고, 공간이 조금 괜찮다 싶으면 차라리 월세방을 구해서 나와 살겠다 싶은 공간들을 반복해서 보다 보니 사무실을 알아보러 다니는 중간에 밥을 먹을 때마다 돈이 없는 서러움이 북받치고, 그러다 보면 정말 돈이 미친 듯이 벌고 싶어 지더라.

그렇게 2-3주 정도 공간을 알아본 끝에 난 결국 왕복 3시간이 걸려도 그냥 학교로 다니든지, 아니면 파트타임으로 일했던 회사 대표가 자리는 치우지 않을 테니 자리를 자유롭게 쓰라고 했으니 그 자리를 쓰러 나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우연히, 딱 그 시기에 본인 사업을 시작한 친구가 잠시 입주한 이 공간을 보고 나는 망설임 없이 계약을 체결했다. 사람들은 '성수'에 있다고 하면 '힙한데 있네'라고 하지만, 사실 내가 지금 주로 출근하는 공간을 선택할 때 난 입지에 대한 고려를 할 여지가 없었다. 있었다면 그건 '우리 집에서 30-40분이면 도착하네' 정도의 생각이었다.

이렇게라도 프리랜서에겐 출근할 공간이 필요하다. 일할 때는 일하고, 쉴 때는 쉬기 위해서. 그리고 프리랜서에게 출근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꽤나 행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