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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의 일상생활

회의시간을 몇 번이나 바꾸는 거에요!

프리랜서의 삶도 다양하고, 그 업계에서 입지가 어떠냐에 따라 상황도 천지차이겠지만 프리랜서로서 바닥 중에 바닥에 있는 나의 삶은 고단하다. 언제 회의가 잡힐지 모르고, 누구에게서 연락이 올지 모르기에 항상 대기 아닌 대기를 해야 하고 같이 일하는 그룹이 여럿 있다 보니 다른 성격의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패닉이 오기도 한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글을 쓰거나 콘텐츠 만드는 일을 하고 있으며, 일 자체는 잘 맞는 편이기에 조금 피곤하거나 지쳐도 소화해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건 일이 많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고...), 프리랜서의 가장 큰 어려움은 내 일정을 내가 통제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회사를 다닐 때는 주간 회의, 월간 회의, 기획 회의가 정기적으로 잡히거나 보통 어떤 사업과 관련한 회의를 하게 되면 서로 일정을 조정해서 감당할 수 있는 일정으로 맞추는 작업이 가능했지만 프리랜서에게 그러한 럭셔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프리랜서에게, 힘없는 프리랜서에게 회의는 보통 통보되는 것이지 조정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특히나 이해관계자가 많은 회의의 경우 힘이 있는 사람의 일정을 중심으로 통보된다. 

그렇게 회의들이 잡히다 보면 당연히 회의가 겹치는 일도 생기는데, 그럴 때마다 밑바닥 프리랜서에게 필요한 덕목은 사과하는 것이다. 엄연히 말하면 내 잘못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대와 부딪히면 안 되기에 회의를 취소하거나 잡지 못하게 되는 상대에게 사과하는 일은 프리랜서에게 아주 드문 일은 아니다. 사과를 하면서도 '내 잘못은 아닌데...'라며 한숨을 쉬지만 말이다. 그래도 상대가 '아 그래요. 그럼 일정을 조정하면 되죠.'라고 하면 그나마 고맙고 괜찮은데 상대가 난처해하거나 화를 내면 그것을 받아내야 하는 것도 프리랜서의 숙명이다. 그래서 프리랜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아닐까 싶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그나마 기존에 일정이 잡혀 있고, 그다음에 들어오는 일정이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면 괜찮다. 하지만 프리랜서에게는 취소하거나 거절할 수 있는 일정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일정이 있어서 프리랜서는 일정이 겹칠 때면 그 순간 재빠르게 일의 경중, 상대의 경중을 계산해서 어느 일정을 취소 또는 연기해야 할지를 판단해야 한다. 가장 난처한 때는 기존에 잡혀 있던 일정보다 중요하거나 내가 통제 불가능한 일정이 추후에 생길 때인데, 그땐 정말 손이 발이 되도록 빌 수밖에 없고, 그러고 나면 이 삶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에 대한 여러 생각이 든다. 그것도 아니라면 나도 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프리랜서가 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밑바닥 프리랜서는 엄청난 걸 바라지 않는다. 그저 며칠 전에만 회의 일정을 잡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회의 시간이 잡히면 그대로 지켜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소박한 바람을 갖고 살지만, 그런 소박한 바람은 때때로 프리랜서에겐 소박하지 않은 바람이 된다. 오후 늦게 전화가 와서 내일 이른 오후에 회의가 잡히는 것은 흔한 일이고, 그럴 때면 '일정이 바쁘면 참석하지 않아도 돼요. 회의 끝나고 정리해서 알려줄게.'라고 상대가 말은 하지만 기존 일정이 내 손이 파리의 다리가 되어 빌면 취소할 수 있을 정도의 일정이면 프리랜서는 언제든 일정을 취소해야 한다. 

그런 회의마저도 당일에 뒤로, 앞으로, 다시 뒤로 바뀌면 나는 누구이며 여긴 어디인지가 혼란스러워지고, 그런 패턴들이 몇 번 반복되면 망각하는 동물인 인간인 프리랜서는 회사생활을 할 때 가졌던 불만을 기억하지 못하고 회사를 그리워한다. 내가 아닌 회사가 가진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을 때는 그런 일이 없었으니까.

오늘도 이틀 전에 잡힌 회의 시간이 3번 바뀌었다. 그러다 끝내 취소된 회의. 그 덕분에 난 이 글을 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