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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의 일상생활

프리랜서가 다 프리한 것은 아니다!

교수님: 지금 학교에 있나?

나: 아... 교수님 지금 학교에 있진 않습니다.

교수님: 어디고?

나: 아... 에... 교수님 지금 삼성역 쪽입니다. 학교로 갈까요?

교수님: 삼성역이면 멀진 않네. 약속이 있거나 하면 안 와도 된다.

나: 아닙니다 교수님. 특별한 일은 없습니다. 몇 시까지 갈까요.

서울 국제도서전에서 출판사들 부스를 흥미롭게 보던 난 이 통화를 마치고 20분 후에 학교로 가는 지하철에 앉아 있었다. 내 지도교수님, 혹은 내가 주로 학교에서 담당하는 업무인 우리 센터장님은 내가 시간이 안된다고 해도 뭐라고 하셨을 분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책들을 조금 더 보고 싶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리고 결제할지 고민되는 정기구독은 지름신으로 해결한 후 2호선에 몸을 실었다.

이번에 갑자기 튀어가게(?)된 게 교수님이시다보니 이게 잘못하면 스승에 대한 제자의 충성 같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프리랜서에게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뭔가 일거리가 있거나 기회가 있을 것 같으면, 당장 엄청나게 급한 일이 있거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은 이상 프리랜서는 항상 자신을 부르는 사람이 있으면 달려가게 되어 있다. 모든 프리랜서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 업계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갖고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일을 맡기고 싶어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프리랜서들도 말도 안 되는 조건이 아니라면 들어온 일을 내치기는 쉽지 않다. 저쪽이랑 일정을 조율할 수 있지 않냐고? 한 번 놓친 미팅은 다시 오지 않을 수 있고, 상대에게 나를 배려할 의무는 없으며 내가 잡지 않은 일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수 있다.

그렇다. 프리랜서라는 표현은 사실 프리랜서로 불리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살을 잘 반영하지는 못한다. 사실 프리랜서는 특정 조직에 구속되지 않았다면 면에서만 프리 하지 더 많은 조직이나 사람들에 의해 구속되어 있단 측면에서는 프리 하지 않다. 그리고 프리랜서는 자신이 한 번 하는 일은 반드시 일정 수준 이상으로 해내야만 한다. 이는 한 번의 실수는 의뢰인이 나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내가 아무리 잘났다 하더라도 날 대체할 사람은 업계에 분명히 존재한다.

어떤 이들은 '돈 좀 덜 벌면 어때? 난 내 시간을 조금 더 보장받고 싶어'라고 생각하며 프리랜서를 선택하지만, 여기에서 '돈을 좀 덜 버는 것'은 일반적인 프리랜서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럭셔리다. 자신이 일하는 업계에서 자리를 잡기 전에는 돈을 안 버는 게 아니라 못 벌 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지금 일이 몰린다 하더라도 다음 달엔 일이 하나도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정말 죽기 일보직전이 아닌 이상 프리랜서들은 들어오는 일은 일단 받아야 한다. 프리랜서로 안정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최소한 2-3년에서 길면 5-6년 간의 흉년을 버텨내고, 꾸준히 자신의 일을 해야 비로소 '조금 덜 벌기'를 해 볼 용기가 생기는 것 같더라.

예외가 있다면 10년 정도 남성잡지에서 한 분야에 대한 기사만 계속 써온 동생 한 명이 있는데, 그 친구는 이미 그 분야에 대해서 워낙 전문성이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것이지 모든 사람들이 프리를 선언하자마자 일이 몰려드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는 그런 친구도 수입이 들쭉날쭉해서 아주 가끔은 불안해지고, 또 프리를 하니 지출이 늘어나서 남는 게 더 많은 지는 모르겠다고 하니... 프리랜서는 정말 '프리'랜서인지에 대해서는 항상 물음표를 달게 된다. 토요일 오후에도 일을 하고 있는 지금, 내 인스타 피드에 프리랜서들의 일하는 사진이 계속 올라오는 것을 보면 프리랜서들은 대부분 프리 하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