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여행이 아닌 나의 첫 제주 여행은 2011년이었다. 숙소는 산방산 아래에 있는 '더게스트하우스.' 아직까지 동생과 단 둘이 떠난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다. 그 1-2년 전에 그곳을 다시 찾았을 때 폐허처럼 문을 닫아서 마음이 아팠는데, 얼마 전에 다시 찾아보니 다른 분이 인수해서 운영하시는 듯하다. 공용공간이던 큼지막한 서재는 4인이 묵을 수 있는 방으로 바뀌었지만 그 당시 주인이 직접 지으면서 건물 안에 침대를 아예 빌트인으로 지었던 모습은 그대로인 듯하다. 사진을 보니.
더게스트하우스에 다시 묵은 적은 없지만, 나의 제주여행은 그 이후로 2-3년 안에서 맴돌고 있다. 숙소도, 경로도, 식당도. 더게스트하우스 이후에 묵었던 쫄깃 센터에는 몇 번을 더 묵었고 협재는 나의 서쪽 제주 여행의 기점 역할을 했다. 동쪽에서는 게으른 소나기, 늘작 (구, 함 피디네 돌집), 수상한 소금밭 정도가 나의 거점 숙소(?)였고 최근 1-2년 간은 플레이스 캠프에 묵었다. 최근 몇 년간 숙소를 조금 바꾼 것은, 이젠 더 이상 도미토리에 잘 자신이 없어졌고 1인실에서 오롯이 쉬는 맛(?)을 알았기 때문이다.
숙소뿐 아니라, 먹는 밥과 가는 장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매년 여름에 한라산 등산을 가시는 12년째 다니고 미용실 부원장님은 내게 '어떻게 제주도를 매년 가면서 한라산을 한 번 안 가냐'라고 타박을 주고, 제주에 숙소의 형태와 종류는 늘어났지만 나의 숙소 선택은 그대로다. 쉬기 위해서는 익숙한 것이 좋고, 내가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면 그 패턴이 조금 달라질 수는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상 극단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다.
제주의 변화는 숙소에만 있지 않다. 제주에 육지 사람들이 대거 이주해 오면서 지난 몇 년간 제주에는 다양한 가게들이 생기고 또 사라졌다. 사라지는 가게들을 보는 게 마음 아팠기 때문일까? 아니면 '유행은 다 지나가'라는 생각에 내 멋대로 사는 습성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생각이 많고 복잡하기에 다른 건 최대한 단순화시키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난 수도 없이 사라지고 생기는 '핫플레이스'나 갑자기 유명해진 맛집들은 찾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한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내가 알던 몇몇 맛집은 '안'가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못'가게 되었다. 언론에서 취재를 하면서. 정말 그 맛이 그리워서 한 시간을 기다려서 먹었을 때, 그 식당의 맛이 변했다는 것을 몇 번 경험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는 유명해진 맛집에는 잘 찾아가지 않는다. 지금 그 식당에 줄 서는 사람들은 언론을 탔던 그 맛이 지금의 맛이 아니었던 것을 알고 있을지...
그러다 보니 이번 여행 숙소의 첫걸음은 몇 년 전에 찾아왔던 '늘작'이었다. 내가 왔을 때는 '함 피디네 돌집'이었지만, 주인은 같은 분이셔서 얼마나 큰 안도의 한숨을 쉬었는지 모른다.
이번 여행 나의 첫 숙소. 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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