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모두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유명한 곳들을 찍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들은 액티비티 하는 것을, 또 어떤 사람들은 한 곳에서 길게 있는 것을 좋아한다. 내 경우를 보면 심지어 우리 부모님과 내 여행 방식도 다른데, 그런 다름을 예전에는 틀림 또는 '여행할 줄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여행하는 방법이 '다르다'라고 해서 그게 '틀린 것'은 아니다.
나 같은 경우 애초에 제주의 북쪽과 남쪽, 즉 제주시 시내와 서귀포시 시내는 잘 가지 않았다. 천지연 폭포 등 전통적인 관광명소는 부모님과 왔을 때의 기억이 있어서 잘 가지 않았다. 이번 여행에서 그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었고, 언젠가는 한번 다시 가봐야겠단 생각을 했지만 뭐 여하튼 지금까지 난 그렇게 제주여행을 했다.
그렇게 선택하고 남는 것은 동쪽과 서쪽인데, 반반 정도 가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동쪽으로 치우치고 있다. 이것 역시 나의 편견인 것은 알지만 왠지 '동쪽은 조금 더 느긋하고 사람 사는 느낌'인 반면 서쪽은 '관광지가 많고 조금 북적거리는 느낌'이 들었고, 그러다 보니 '쉬러' 제주에 오는 내 입장에선 계속 동쪽만 찾게 되더라. 약 10년 간 동쪽도 개발이 많이 되었지만 그래도 서쪽에 비하면 조금은 숨을 쉴 수 있는 곳이 많은 느낌이다. 느낌뿐일지도 모르지만...
취향일 뿐이지만, 난 제주의 동쪽 바다가 좋다.
그래서 동쪽을 주로 찾고, 네비는 켜놓지만 네비를 따라다니지는 않는다. 해안도로가 있는 구역에서는 해안도로를 따라 천천히 차를 몰다 내가 아는 동네에 들어가 내가 아는 가게에 1-2년 만에 들어가는 것을 즐긴다. 그곳에 가면 지난번에 왔을 때의 느낌, 마음, 경험들이 되살아나고, 그 과정에서 내 인생을 반추해 보고 현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어서, 그게 좋아서 제주는 그렇게 찾는다.
예전에는 단순히 그런 이유로 동쪽을 찾았지만, 이번 여행을 계획하고 숙소를 잡으면서 '동쪽'이 조금 특별하게 다가왔다. '해가 뜨는 방향'인 동쪽. 사람들은 '5박 6일간 제주에 가고 신세 좋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이번 여행은 내게 조금은 특별하다. 이는 어두운 동굴 속에서 몇 년을 지내고, 작년에 오랜만에 사회에 나와 무슨 일을 하며 먹고살지를 고민하다 그 방향을 잡았고, 올해를 잘 살아내기 위해 일종의 '신년 여행'을 온 것이기 때문이다.
30대 후반까지 정말 열심히 살아서 인생을 만들어 갈 재료는 많지만 아직 갖춰진 단단한 기반은 없는 인생. 그리고 그 재료들을 어떻게 조합하고 만들어 나갈지에 대한 청사진 또는 설계도 정도만 만든 상황이다. 올해는 내게 그 설계에 따라 첫 삽을 뜨는 해이며, 그런 의미에서 내 인생은 어쩌면 이제야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제주의 동쪽에서, 해가 뜨는 방향에서 내 인생의 해돋이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해가 서쪽으로 질 때까지 치열하고 살고 싶고, 무엇보다 그럴 수 있고 싶다. 이젠 인생이 내 계획과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과 환경에 의해서 기회가 주어지기도 하고 박탈되기도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을 넘어서 받아들일 나이가 되었고 그렇다 보니 '그럴 수 있고 싶다'는 소망함 이상의 기대와 희망은 잘 갖지 않는다. 또 그렇기 때문에 내게 주어진 기회들에는 항상 감사하다.
벌써 네 번째 글을 썼지만, 사실 내가 이 시리즈를 통해 하고 싶었던, 내가 여행 과정에서 마주하는 씬에서 하게 된 생각들을 정리하는 건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동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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