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시간을 보낼 때면 하나님께 항상 원망했다. 누군가 의지할 사람이 있다면 숨이라도 쉴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아무도 붙여주지 않냐고. 왜 이 시간을 나 혼자 견디게 하냐고.
그 과정에서, 과정을 지나고 나서 알게 된 여러가지 신앙적인 측면은 이 글에서 일단 생략하고 제목에 내용을 맞추자면, 민망하지만, 이젠 좀 함께 할 사람을 만나고 싶단 기도를 많이, 자주 했다. 그런 감정들과 당시 나의 상태로 인해 발생하는 감정에 휩싸여 잘못된 선택, 결정, 말도 많이 했다.
예전에 다른 글에서 '이젠 내려놨다'고 했지만, 그 글에서도 썼듯이 내려놨단 것이 '결혼하지 않겠다'는 의미는 아니고, 난 지금도 아마 거의 매일 배우자에 대한 기도를 하는 듯하다. 그럴수록 내가 세상 한 가운데에서 혼자 신앙을 지키며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일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진 못하다는 사실만 알아가고 있다.
그렇게 기도하고, 고민하는 중에 얼마 전에 문득, 힘든 시간 동안 내가 했던 기도들이 얼마나 잘못됐는지를, 그리고 하나님께서 왜 내게 누구도 허락하실 수 없었는지를 깨달았다. 그 내용이 결혼을 안하고 있든, 못하고 있든, 한 후에 후회하고 있는(?) 분들께도 생각해 볼만한 문제 같아서 글을 쓰기로 했다.
난 철저히 '내가 이런 걸 받고 싶다'고 기도하고 있었고, 현실적으로 누군가에게 뭔가를 줄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물질적인 부분도 그런 면이 있지만, 물질적인 얘기만 하는 건 아니다. 난 심적으로도, 관계적으로도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줄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너무나 이기적인 생각과 마음으로 한 기도였다. 내가 무엇을 줄 지는, 무엇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이. 하나님께서 예뻐하시는 관계를, 공동체를 만들어 갈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내가 준비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내게 어떻게 무엇인가를 선물로 주실 수 있겠나.
그 사실을 깨닫고, 지금 내 자신을 돌아봤다. 내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 뭐, 물질적인 부분은 당연히 부족하다. 많이. 그런데 그 부분은 하나님께서 마음 먹으시면 쏟아부어주실 수 있는 경로들도 내 손에 쥐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은 패스. 그렇다면 나의 다른 면들은 어떨까.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게 떠오르지 않았다.
물론,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결혼할 수는 없다. 아니, 우린 죽을 때까지 완벽한 가정은 꾸리지 못할 것이다. 결혼은, 가정은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드는 거니가. 그래도 서로 맞춰가고, 부딪혔다 푸는 것은 물론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무엇인가를 줄 수 있을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받고, 요구만 하는게 아니라 내가 상대에게 주고 있는 것이 있어야 두 사람이 꾸린 가정이 두 사람이 하나님을 더 바라볼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그렇다. 부부도, 가정에서도 모든 관계는 [주고 받는 관계]여야 한다. 세상은 이걸 거래나 장사라고 하는데, 그건 [받는] 것이 우선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독교인이라면, 내가 받는 것보다 주는게 먼저여야 한다. 상대와 함께 있을 때 내가 상대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지, 줄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관계는 난 상대에게 주는게 없는 듯한데 상대는 내게 받는게 있는 것이겠지만, 그런 관계는 매우, 극히, 드물뿐 아니라 우린 그걸 따지고 계산하면서 아는 건 불가능하다.
생각해보면 교회에서 일부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배우자 기도'는 내가 갖고 싶은 것들에 대한 기도나. 그런 면에서 봤을 대 배우자 기도는 단순히 틀린게 아니라 어쩌면 반기독교, 반성경적인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기도제목들은 거의 대부분 세상적인 욕구와 욕망을 내용으로 하고 있지 않나?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를 그런 조건으로 나열하고 평가하는게, 성경적일까?
물론,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의 약점까지 너무 잘 아시기에 우리가 이성적인 매력도 느낄,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만한 사람을 붙여주실 것이다. 하지만 그걸 내가 요구하고 추구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붙여주시는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기혼자들에게 결혼은 하지 마라, 싱글이 좋은거다. 라는 말을 적지 않게 듣는다. 그에 대한 내 답은 '30대 후반에 경제적으로 우월하지 않은 싱글이 되어보지 않았으면 그런 말은 하지 마라'다. 그 이전에 결혼한 사람들은 자신이 결혼하기 전, 아니 배우자와 연애하기 전까지 본인의 삶만을 기억하며 그게 유지됐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20대는 물론이고 30대 초반과 30대 후반의 싱글로서의 삶은 여러 면에서 완전히 다르다.
내가 들은 얘기들을 따져보면 기혼자들이 힘들어하는 건, 적지 않은 경우 본인이 무엇을 주고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아니면 그걸 너무 크게 생각하는 반면 상대가 본인에게 주는 것은 작게 생각하거나 상대 없는 삶이 어떨지는 생각해보지 않기 때문이다. 기혼자들은 배우자에, 결혼생활에 대한 불만을 갖기 전에 잠시 멈춰서 내가 아닌 배우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결혼생활을 돌아보시길 권하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것, 하기 싫은 것, 힘들고 불편한 것이 아니라 배우자의 하루가 어떤지, 결혼하기 전에 무엇을 꿈꾸던 사람이었는지, 내가 배우자와 같은 삶을 살면 순간순간이 어떤지를 생각해보면, 상대 없이 내가 사는 삶을 하루가 아니라 일년을 두고 상상해 보기를 권한다.
아 물론, 거기에서 당신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친구관계들은 잊자. 30대 후반에서 곧 40이 되는 싱글의 경험에 비춰서 설명해주자면, 본인의 삶을 어지간히 즐기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즐거움은 3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한계효용이 줄어들고, 각자의 삶이 달라짐에 따라 지인들과 대화는 점점 잘 안 통하기 시작한다. 그걸 염두에 두고 1년을 상상해 보시면, 배우자가 본인에게 생각보다 많은 걸 선물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무엇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하나님께서 내게 가정을 허락하신다면 받기보다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상대도 그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그리고 나도 상대가 내게 선물해 주는 것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 그게, 내 배우자, 아니 내 가정을 위한 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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