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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문화

기독교의 기도에 대하여

신앙적으로 2020년은 내게 말씀 읽는 습관, 말 그대로 말씀을 읽지 않고는 하루가 불편하도록 습관을 기르는 한해였다. 물론, 몸이 안좋거나 일이 너무 바쁠 때는 짧게는 하루, 이틀, 길게는 거의 일주일씩 말씀을 읽지 않은 날이 있었다. 그런 부분들은 조금 여유가 있는 날, 아니 여유가 없는 날에도 정신 차렸을 때부터 최선을 다해 읽으면서 어쨌든 1월 9일서부터 12월 31일까지 말씀 묵상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2020년 마지막 날에 그 목록을 보면서 나의 2020년의 가장 큰 성취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느순간부턴가 '말씀은 읽고 있는데 기도는 얼마나 하고 있나?'가 마음에 불편함으로 와 닿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말씀과 기도가 신앙의,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의 핵심이라고 말은 하지만 말씀도 읽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는다. 아니, 심지어 5분 기도하고 나면 기도할게 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로스쿨 시절에 만난 형이 그렇게 얘기하더라. 그게 그 형만의 말이었을까? 대부분 사람들이 사실 그렇게 생각하며 기도하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왜 그럴까? 그건 나의 시선이 나의 일과 내 현실에만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통보하고, 징징거리고 힘들다고 하면 기도는 5분 이상 할게 없다.

그런 기도가 잘못된 것은 첫 번째로 기도는 대화이기 때문이다. 기도는 내가 하나님께 말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과 음성을 듣는 시간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잘못하면 신비주의로 빠질 수도 있는데, 그건 사람들이 신비주의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집착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해주시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우리에게 어떠한 마음이 들게 하시고 평안함을 주심으로써 말씀하신다.

그런데 기도의 전제는 [말씀을 알고 있는 것]이 깔려있어야 한다. 성경을,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모르고 기도를 하면, 아무리 기도를 해봤자 하나님과의 대화가 될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보여주고 말씀하시는 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말씀을, 주시는 마음을 알 수 있겠나? 그건 마치 한국말을 할 줄 모르는 외국인이 한국인과 대화하려는 것과 같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두 번째로 기도는 나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도 해야 한다. 즉, 기도에서 내가 하는 [말]도 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말이 일어나야 한단 것이다. 물론, 나의 말과 상태도 하나님 앞에 내어드려야 한다. 하지만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우리가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은 그냥 내 앞가림 하나를 하는게 아니라 이 나라가, 이 땅이, 이 세상이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회복하는데 기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사랑]이 있다. [사랑]은 무엇인가? 쉽지 않은 문제지만 사랑은 크면 클수록 상대를 내 자신만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이 위대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의 삶은 물론이고 생명도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던지셨으니까. 자신의 모든 것을.

그렇다면, 우리는 거듭나면, 예수님을 닮아갈수록, 창조되었을 때의 모습을 회복할수록 우리 자신의 이익에서 다른 사람의 삶으로 눈이 옮겨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기도제목도 확대, 확장되게 된다. 나에게서 우리 가족으로, 가족에서 이웃으로, 이웃에서 지역사회로, 지역사회에서 국가로, 국가에서 세계로.

혹자는 [내가 무슨 그런 것을 위해 기도하냐, 그게 무슨 의미냐]고 말할지 모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현실에서도 큰 변화는 작은 변화들이 모여서 이뤄진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도 한 표들이 모여서 당선을 시킨다. '한 사람'이 중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서 그렇게 크게 생각하고 기도하는 것은 현실에서도 우리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환경을 예로 들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땅의 자연을 위해 기도하다보면 우린 아무래도 플라스틱을 덜 쓰고, 환경친화적인 제품을 쓰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그런 제품들이 개발되고 나오고, 장기적으로는 그 덕분에 환경이 본래의 모습을 회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루, 이틀, 일, 이년 안에 이뤄질 일은 아니지만 그 방향으로 가야 그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시선이 현실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 손과 발은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되, 우리의 그런 손과 발이 모였을 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큰 그림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그런 작은 현실에서부터 큰 그림까지, 모든 것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기도해야 하는 것은 사실 그런 기도를 함으로써 우리의 결정과 행동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매일, 매일 그렇게 하나님 앞에 서서 그런 기도를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하는 결정과 말, 세상을 보는 시선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기도는 말씀을 읽고, 아는 것을 전제로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은 기도는 우리를 샤머니즘과 다를 바 없는 수준에 머무르게 할 것이다.

진짜 기독교인의 기도는, 그런 기도에 머무르지 않는다.

내 올해 신앙적 과제는, 기도시간을 늘려나가는데 있다. 너무 기도를 안하면서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