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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020년 봄, 제주

제주와 어울리는 식당

'로컬푸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로컬푸드만 먹는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또 그분들은 '제주도에 가서 무슨 일식, 프랑스 음식 등을 먹냐'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앞의 글에서 썼지만, 나도 제주에 가면 로컬 음식, 진짜 제주의 현지 음식은 무조건 찾는 편이다. 그러나 여행은 여행이고, 현지에 계속 사시는 분들이 먹을 음식만 먹는다면 그게 '떠나온' 사람의 일상에 맞을까?

개인적으로 제주여행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제주에는 '쉼'에 맞는 식당들이 있기 때문이다. 꼭 해산물로 만들지 않고 제주 흑돼지, 당근 등이 들어가지 않아도 쉼을 찾을 수 있기에 찾게 되는 식당들이 있다. 그런 식당들은 기본적으로 식당들만의 메뉴가 한두 가지가 있고, 그렇게 크지 않으면서 편안한 느낌을 준다는 특징을 갖는다. 그리고 그 식당들은 조용한 곳에서 조용히 그 장소와 음식만 누릴 수 있게 해 준다.

물론 서울에도, 다른 도시에도 그런 곳들이 있다. 그런데 굳이 제주에 있는 그런 아담한 식당이나 카페들을 찾는 것은 다른 도시에 있는 그런 아담한 식당이나 카페들과 달리 제주에는 그 규모를 키우지 않고 그 아늑하고 따뜻함을 유지하는 식당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곳들은 줄을 서게 되더라도 조금 기다리게 되고, 혼자 들어가서도 충분히 그 분위기와 맛을 누리고 싶어 지더라.

개인적으로 가장 아늑함을 풍성하게(?) 느끼게 되는 풍림 다방 내부.

내게 그런 곳 중 한 곳은 풍림 다방이다. 사실 풍림 다방의 경우 에스프레소, 드립, 롱 블랙처럼 커피를 내려서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커피를, 여름에도 따뜻하게 마시는 내게 과도할 정도로 단 브레붸가 시그니처 메뉴다. 그래서 '메뉴만'보면 내가 풍림 다방을 찾을 일은 없는데, 몇 년째 규모를 키우지 않고 같은 곳을 한결 같이 지켜주시는 그곳을 난 제주에 갈 때마다 찾는다. 그리고 평소에는 잘 마시거나 먹지도 않는 달달한 커피와 심지어 티라미슈를 먹고, 마시고 있더라.

그 외에도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종달리의 카페 제주 동네, 이미 이 시리즈 이전에 소개했던 종달리엔 처럼 아담하고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지 않는 가게들은 제주도 곳곳에 숨어있고, 그런 가게들은 조용히 하나, 둘씩 생기더라. 그런 가게들을 찾을 때마다 제주에 다시 내려와야 할 이유들이 생기고, 그렇게 제주에 내려오면 난 무슨 루틴이라도 짜 놓은 것처럼 그 가게들을 하나, 둘씩 찍고 다닌다.

그런 식당들 중에 꽤나 유명해져서 규모를 키우거나 제주 또는 서귀포시로 옮겨가는 가게들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좋아했던 풍기 샌드위치를 하던 가게가 작은 마을에서 제주시로 옮겨갔는데, 그 가게가 시내로 옮겨간 이후로는 아이러니하게도 난 그 가게를 방문한 적이 없다. 그 마을과 건물이 어우러져서 입을 즐겁게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영혼까지 늘어지게 해 주던 그곳의 추억을 제주 시내에서 느끼기는 쉽지 않을 듯해서, 그 추억과 기억이 망가지는 것이 두려워 제주 시내로는 향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정말 운이 좋게도 그런 식당들을 몇 군데 새롭게 찾았고 여행의 마지막 끼니를 고민하다가 그중에 하나인 종달리에 있는 '릴로'에서 샌드위치를 픽업해서 해안도로로 향했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릴로에서의 음식이 '맛있지만 그 정도로 다시 찾을 곳인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워낙 바게트 샌드위치를 좋아하는 편이고, 역설적이게도 새로운 손님이 오지 않은 상태라면 손님들이 먹고 난 그릇을 부리나케 치우지는 않는 사장님의 모습과 정말 먹고 싶어서 찾았던 비프스튜가 4시간 후에 완성되기 때문에 먹지 못했던 기억이 그곳을 뇌리에 강하게 각인시켰다. 팔기 위해 팔고, 아등바등 거리는 모습이 없는 그 가게 사장님에게서 나오는 아우라가 나까지 느긋하게 만들어주는 듯하더라.

샌드위치 하나 먹으려다 만찬을 먹고, 운전하기 위해 술 깨기 위해 죽치고 앉아있었던 릴로.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선호하는 식당들을 모든 사람들이 아끼고 좋아할 필요는 없다. 사장님들께는 죄송하지만 사실 내가 좋아하게 되는 식당들을 사람들이 그 정도로는 좋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갔을 때 조금 여유 있게 있을 수도 있고, 기다리지 않아도 될 테니까.

분명한 것은 제주에는 음식도 맛있지만, 전반적인 아우라(?) 덕분에 온전한 쉼을 누릴 수 있는 곳들이 곳곳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식당들에서는 손님들을 쫓아내거나 눈치를 주지도 않는다. 그런 식당들은 보통 제주에서 태어난 분들이 아니라 도시의 삶에 지쳐서 자신의 속도로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제주로 이주한 분들이 운영하는 듯한데, 그렇다 보니 그 가게도 그분들 속도로 운영되고, 그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그 속도로 쉼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런 식당이나 카페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곳을 그렇게 누리는 것은 아니다. 그런 곳들도 '맛집 찍기' 신공으로 후다닥 음식을 먹고, 사진을 찍은 후 '후다닥' 떠나는 분들도 있다. 나 같은 사람에겐 그런 분들이 참 고마운데, 같은 돈을 내고 그 '장소'가 제공하는 더 많은 것들을 누리지 못하시고, 누릴 줄 모르시는 분들을 볼 때 조금은 안타까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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