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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020년 봄, 제주

제주의 책방들

제주에서 몇 년 전부터 생겨난 트렌드라면 트렌드는 아마도 '책방'일 것이다. 내 지인 중 한 명은 4박 5일 동안 버스를 타고 제주에 있는 작은 책방들을 돌면서 다니더라. 그 친구의 인스타를 보면서 처음으로 소위 말하는 '독립서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아주 솔직히는 '도대체 저게 무슨 재미가 있다고 저러고 다닐까?'라는 생각도 조금은 가졌었다.

그래서 지난번에 제주에 갔을 때 마침 시간과 기회가 되어 제주에 있는 '무명 서점'을 방문했는데, 그때서야 그 재미를 알게 되었다. 역시 사람은 직접 해보지 않은 것의 재미는 모르는 법. 기본적으로 책은 좋아하고, 읽은 책 보다 사놓은 책이 많은 성향이 많은 편이다 보니 책방 주인이 큐레이션 해 놓은 책들을 보는 건 쏠쏠한 재미가 있더라.

구들 책방에서는 서울에서보다 저렴하게 헌책을 픽업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출판사들도 정말 많고, 출판사들이 쏟아내는 책들도 엄청나게 많아서 어떤 책이 나오는지는 물론이고 좋은 책과 그렇지 않은 책, 읽을만한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을 구분하는 게 불가능해진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 보니 책을 사거나 읽어도 읽어본 작가의 책을 읽게 되고, 서점에 가서 훑어보다가 괜찮다 싶은 책을 그 자리에서 온라인으로 주문하게 되는데, 문제는 서점에 비치되어 있는 책들은 대부분이 어느 정도는 마케팅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데 있다.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책을 사는 것이 어려워졌다.

그런데 독립서점들을 방문해 보면, 그 주인에 따라 비치되어 있는 책들의 콘셉트가 분명하더라. 어떤 책방에는 페미니즘과 관련된 책이, 또 다른 책방에는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 그렇지 않으면 사람 냄새나는 책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들을 보는 건 꽤나 흥미로운 '여행 방법'이었다. 최소한 내겐 그랬다.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 하나 가득한 사슴 책방에서도 한참 머물렀다.

그 책들을 살펴보면서 '이 책방 주인은 어떤 사람일까?'를 상상하고, 내가 평소에 관심 없었던 주제의 책들도 뒤적이다 보는 과정은 내가 몰랐던 세계를 나를 끌고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내가 세상을 보는 시선도, 아주 가끔씩은 나의 가치관도 영향을 받거나 바뀌어 가더라.

그 이후로 난 시간이 되면 독립서점을 가끔씩 찾는데, 제주는 독립서점들을 둘러보기에 완벽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서울이나 도시의 경우 주위가 소란스럽거나 서점에 사람이 많으면 눈치를 봐야 하지만 제주의 독립서점들은 보통 조용한 곳에 있고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곳에 오래 머무르며 책들을 한 땀, 한 땀 볼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제주의 독립서점들은 보통 정가를 그대로 받기 때문에 금전적으로는 제주여행 중에 책을 사는 게 손해를 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서점들이 유지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능하면 책을 사는 편이다. 배송비를 생각하면 제주에서 사는 것이 조금 더 비용이 드는 것도 당연하고, 또 여행 중에 산 책은 기억에 더 남기도 하기 때문에 제주에서 책을 사는 것은 손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가수 요조 씨가 운영하는 책방 무사에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간 것이다 보니 짐을 넣는 게 한계가 있어서 그 자리에서 마음이 들었던 책도 사지 못할 때가 많아서 사장님들께 죄송한 마음을 종종 갖게 된다. 이번 여행에서도 초반에 2권을 샀다 보니 그 이후에 방문한 책방들에선 책을 한 권도 사지 못하고, 내가 사용하는 서점 어플 장바구니에 책만 하나 가득 넣으면서 얼마나 죄송했는지 모른다.

그런 공간들이 제주를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항상 감사하고, 다음 제주 여행에서도 난 책을 한두 권은 사들고 바다를 건너올 것이다.

음악과 책과 외관이라는 삼박자를 갖춘 만춘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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