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km를 걸을 준비?
5년 전에 내가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으러 갈 때도 800km를 다 걸을 수 있는 체력을 만들어서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꾸준히 등산 및 하이킹을 해서 완벽한 몸을 만들어서 말이다. 그뿐인가? 나는 길 위에서 배낭, 신발, 옷 등을 철저하게 준비해서 한 달 정도를 걸을 준비를 완벽한 사람들을 만났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한 물품들까지 차곡차곡 쌓여있는 가방을 보면서야 비로소 난 내가 얼마나 충동적으로 그 길을 떠났는 지를 깨달았다.
마땅히 할 게 없는 상황에서, 사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변호사시험에 떨어질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합격률이 높으니까 혹시 몰라...'라는 마음으로 수습 변호사 모집공고만을 반복해서 보고 있는 내게 '까미노나 갔다 와'라고 그 친구가 말하지 않았다면, 그 이후에 망설이는 내 모습을 보며 '그래. 너처럼 보수적인 애가 무슨 까미노를 갔다 오겠어. 그냥 가지 마.'라는 말로 날 자극하지 않았다면 난 변호사시험 발표가 날 때까지 서울에 앉아서 주야장천 수습 변호사 모집 공고들만 보고 앉아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친구가 나를 그렇게 자극한 날 나는 충동적으로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기로 했다.
당연히 걸을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다. 변호사시험 준비를 한다는 것은 몇 개월을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하루 10시간 이상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하기에 1월에 시험을 보고 난 내 몸은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거기다 평생 담배를 입술에도 대 본 적이 없는 나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시험 3주 전에 담배 한 까치를 피웠다가 거의 2주간 앓아누웠던 상태였으니, 시험이 끝난 지 2 달이 지났다고 한들 내 몸이 정상일 수가 없었다. 거기다 움직이지는 않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음식은 엄청나게 먹어대는 성향의 나는 몸도 엄청 불어있는 상태였다.
출발지에서 아침상. 이 때까지는 모든게 좋았다 -2013년 3월
첫 발을 내딛다
그런 상태에서 친구의 자극에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기로 한 나는 비행기표부터 찾기 시작했다. 일단 변호사시험 결과는 서울로 돌아와서 보는 게 맞을 테니 귀국 일은 발표 예정일 이전에 맞춰야 했고, 계산해 보니 그러면 난 2주 안에 떠나야 했다. 정보를 찾아보니 까미노를 걷는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파리로 들어가서, 고속열차를 타고 프랑스 남부에 있는 생장이라는 마을로 가서 하루를 묵고, 거기에서 첫날 피레네 산맥을 넘으면서 순례길을 걷기 시작하더라. 세상에... 피레네 산맥이라니... 교과서에서만 봤던 피레네 산맥을 이 몸 상태로 첫날부터 넘어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사실 피레네 산맥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이틀 동안 방을 아무리 뒤져도 내 여권이 어디 있는 지를 찾을 수가 없는 게 아닌가? 그리고 통장 잔고를 보니 회사를 다니면서 모았던 돈을 로스쿨 3년 동안 학비와 생활비로 다 써버려서 길을 떠날 돈이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시간을 두고 고민할 수가 없었다. 변호사시험 결과 발표 이전에 귀국하려면 2주 안에 출국을 해야 했으니까. 난 결국 여권분실 신고를 하고 여권을 새로 발급받았고, 생각보다 짧은 고민 끝에 회사 다닐 때부터 납입하고 있던 주택청약통장을 깨서 그 돈으로 여행비를 충당하기로 했다. 지금 내 모양새를 보니 어차피 2년 안에 집을 살 수도 없을 것이고, 그럴 바에야 지금 그 돈을 여행을 가는데 쓰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그 아까운 것을 왜 깨냐고 하셨지만, 내겐 유럽 30일 이내 체류를 조건으로 하는 파리 왕복 동방항공편 비행기표를 살 돈 정도만 남아있었기 때문에 그 통장을 깨야만 했다. 떠나기 위해서는 말이다.
등산의 '등'자도 싫어하던 내가 등산가방이나 신발이 있을 리도 만무했다. 그래서 난 집 앞에 있는 아웃렛에 가서 발목을 잡아주는 등산화들 중에 제일 저렴한 것을 샀고, 불어난 몸으로 인해 겨우겨우 걸을 때 편할만한 방수가 되는 바지를 하나 샀다. 물론 등산가방도 새로 샀어야 했는데, 등산장비에 대해 무지했던 나는 겉으로 괜찮아 보이는 최대한 저렴한 가방을 사 들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2주를 보내고, 책방에서 산티아고 가는 길이 가장 잘 정리되어 있는 가이드북을 하나 사들고 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몸은 준비되어 있었냐고? 위에서 설명했듯이 냉정하게 얘기해서 난 걸을 상태의 몸이 아니었고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내가 준비한 것은 고작 무릎보호대, 벙거지 모자, 반창고 정도였다. 나는 심지어 걸을 때 물집이 나면 다음날 걷기 위해서 그걸 어떻게 해결하여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비행기를 탔다. 장담하건대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은 수많은 한국 사람들 중에 나만큼 준비되지 않은 순례자는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없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파리에서 바게트와 물 사들고 생장으로 - 2013년 3월
무슨 준비를 해야 하나?
하지만 누군가 만약 그렇게 준비하지 않고 길을 떠난 것을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난 준비하지 못하고 떠났기에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꼈다고 대답할 것이다. 난 마음도, 몸도, 상태도 준비되지 않은 순례자였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마음도, 몸도, 상태도 이 땅에서 살아갈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태어나지 않나? 역설적으로 그렇게 준비되지 않은 순례자였기에 그 길 위에서 초반 200km는 남들보다 훨씬 힘들었고,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내 인생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로 준비하지 말고 떠나라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떠났다가는 길 중간에서 미아가 되어버리기 십상이라... 나도 눈 속에 파묻혀 죽을 뻔한 고비를 한 번 넘겼으니까... 내가 초반에 어려움을 극복하고 끝까지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중간중간 몇 개월을 쉴 때도 있었지만 20대 초반부터 기본적으로 항상 운동을 해서 몸 안에 기초 근육은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근육이 잘 만들어지는 편이라서 몸이 걷는 패턴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까미노를 갈 생각이라면, 본인의 상황이 허락하는 한에서 최소한의 준비는 하고 가는 게 안전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렇게 준비를 하고 간다고 그 길을 다 걸을 수도 있는 것도 아니고, 준비를 하지 않는다고 그 길을 걷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 중에서도 등산장비를 화려하게 다 갖춘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냥 가벼운 배낭, 옷 두 벌, 막대기 하나를 갖고 까미노를 완주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보다 운동능력도 부족하고, 나만큼이나 걷는 게 준비되지 않았던 사람도 조금씩, 조금씩 걸어서 거의 50일 만에 까미노를 완주한 사람도 있었지만, 군인 출신으로 체력에 자신이 있고 까미노를 걷기 위해 한 달 동안 매일 10km 이상을 걸으면서 훈련을 한 사람도 중간에 무릎이 나가서 길을 완주하지 못하기도 했다.
까미노를 7번 걸었다는 Samos에서 만난 스페인 할아버지가 내게 해 준 말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모든 사람들이 까미노를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까미노를 걷는 모든 사람들이 그 길이 불러서 오는 것도 아니라는 말을 말이다. 나 역시 사람들에게 '무조건 걸어, 정말 좋아'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내 경험과 그 길이 내게 갖는 의미를 설명해 줄 뿐. 이는 난 그 사람이 까미노를 걸어야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마음과 상황이 그 길을 걷도록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내가 그 길에 발을 내딛게 된 것처럼.
그립다. 이 모든 풍경이 - 2013년 3월
'여행 > 2013년 봄, 까미노 데 산티아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순례자 유랑기_사람 (0) | 2021.01.22 |
---|---|
순례자 유랑기_가방 (0) | 2021.01.22 |
순례자 유랑기_길 (0) | 2021.01.22 |
순례자 유랑기_개요 (0) | 2021.01.22 |
순례자 유랑기_인트로 (0) | 2021.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