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을 들지 않고 걷는 사람들
어떤 이들은 '가방'이란 제목을 보고 아무리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은 얘기를 한다고 해도 굳이 가방에 대한 얘기를 한 꼭지로 뽑을 필요까지 있을까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은 다르다. 까미노를 걷는 것의 핵심은 가방에 있다. 그래서 사실 난 '같이 걸을까'를 재미있게 보고는 있지만, 그들이 다른 캐리어를 제작진에게 맡기고 걷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실망감 아닌 실망감을 느꼈다. 물론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들은 다큐가 아니라 예능을 찍고 있고, 그들이 화면에 노출되는 동안에는 아마 그들이 광고하는 특정 브랜드가 노출되어야 할 것이며, 그들은 GOD이기 때문에 너무 꼬질꼬질하게 화면에 나오면 안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가방을 구성하고 까미노를 걷게 되면 까미노에서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인생에 대한 의미를 반의 반도 얻지 못할 수밖에 없다. 물론 까미노에서도 성수기에는 한 지점에서 다음 지점으로 대신 가방을 옮겨다 주는 서비스가 있을 정도로 가방을 들고 걷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달을 그렇게 걷는다는 것은...
첫 날. 저 가방이 저렇게 무거울 줄 몰랐다 - 2013년 3월
까미노에서 가방의 의미
그런데 가방이 까미노의 핵심이라고 내가 주장하는 것은, 까미노를 걷다 보면 그 가방을 통해서 인생을 계속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까미노를 걷는 내내 '변호사시험 결과'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였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같이 길을 걸었던 영국 할아버지가 페이스북으로 변호사시험은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을 정도라면 내 머리가 얼마나 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는지를 알 수 있지 않을까?
내 인생길에서 변호사시험 결과가 내게 짐이었다면, 까미노에서는 내 가방이 곧 나의 짐이었다. 그렇다. 내가 갖고 있는 가방의 무게는 인생으로 따지만 나의 인생의 무게와 같았고, 내가 물건을 더 많이 갖고 걷기 위한 욕심을 부릴수록 길을 걷는 내 발걸음과 몸은 더 힘들어져만 갔다. 그 과정을 겪고, 어쩔 수없이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걷기 위해서 갖고 왔던 물건들을 버리면서 나는 우리가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할수록 우리의 인생이 더 힘들어진다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경험하면서 걸었다.
사실 그렇지 않나? 우리는 항상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 하고, 조금만 더 가지면 우리 욕구가 충족될 듯하지만 사실 우리는 더 가지면 가질수록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더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하게 된다. 예를 들자면 20억짜리 집을 샀다고 하자. 그것으로 우리 인생이 끝나는가? 그 집은 3-4억짜리 집보다 세금도 더 많이 내야 할 것이고, 관리비, 유지비 등도 월등하게 많이 들 것이다. 집은 차라리 덜하다. 2-3억짜리 차를 산다고 쳐보자. 그에 수반되는 세금, 기름값, 보험료를 생각해 보면 우리가 더 좋은 것을 갖는 것은 단순히 그것을 갖는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수입을 올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일정 수준 이상의 재산을 모았다고 치자. 우리는 과연 그에 만족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장담하건대 우리가 그 정도 재화를 가지면 더 높고, 좋은 비싼 것들이 보일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갖고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사실 우리는 무엇인가를 더 가질수록, 그로 인해 우리 인생의 무게는 더 무거워진다.
그런데 까미노를 걸으면서 만약 가방을 메지 않고 이동 서비스에 맡기게 되면, 그 사람은 결국 자신이 소유하고 싶은 것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자신의 인생의 무게에 대한 고민을 할 기회를 상실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난 개인적으로 까미노는 가방을 들고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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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를 걸을 때 나의 가방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짐을 엄청 많이 싸갔냐고 한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속옷 4-5개, 양말 3-4개, 티셔츠 3-4개, 긴바지 하나, 반바지 하나, 모자, 수건 2개, 스포츠 타월 1개, 반창고, 휴대폰, 지갑, 여권, 산티아고 가이드북, 여분의 모자 하나. 중간에 혹시 몰라서 읽을 수도 있는 책 하나 정도.
이쯤 되면 하이킹을 많이 다니신 분들은 '너무 부실하게 갔다'라고 느끼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일 최소 20km에서 최대 45km를 걷다 보면, 저 짐이 얼마나 무겁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그래서 사실 난 까미노를 건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저 짐에서도 짐을 버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돌이나 자신의 물건을 걸어놓고 오는 그 십자가에는 내가 가져갔던 여분의 가방을 걸어놓고 오기도 했다. 내 물건을 놓고 오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 짐을 조금이라도, 그만큼만이라도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쓸데없이 걱정이 많은 사람인지를 깨달았다. 내가 그 십자가에 걸어놓고 온 모자는 거의 20일을 걸을 동안 내가 한 번도 쓰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돌이켜보니 내 인생에서 나는 꼭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갖고 싶었던 것들이 정말 많았더라. 사실 까미노를 걷고 온 후에 변호사시험을 수차례 더 떨어지면서 내가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그것이었다. '내가 변호사 license가 필요한가? 내가 변호사를 하는데 맞는 사람인가?' 아이러니하게도 까미노를 걷고 오고 나서도 나는 내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난 그것이 필요 없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세상의 평판과 나의 면을 세우고 싶어서 시험을 계속 봤다. 그렇게 미련한 짓을 계속했지만, 그 와중에도 내가 반복해서 일어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내가 까미노를 걸을 때 받아들이게 된 그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 날. 정말 가방을 버리고 싶었을 때 - 2013년 3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
그리고 까미노를 걸으면서 내가 깨달은 또 한 가지 사실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만약 누군가 내게 다시 까미노를 걸을 때 어떻게 짐을 꾸리겠냐고 하면 난 속옷 2-3개, 양말 2-3켤레, 티셔츠 3개, 긴바지 하나, 모자 하나, 스포츠 타월 1개, 휴대폰, 지갑, 여권, 가이드 북 정도로 줄일 듯하다. 사실 그보다 더 줄여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내가 갖고 갈 짐의 최대치다.
어떤 이들은 그게 말이 되냐고 하지만 사실 까미노를 걷다 보면 속옷과 양말을 그날그날 빨아서 잠잘 때 널어놓고, 번갈아 가면서 입고 신으면 속옷, 양말, 티셔츠도 두 개 씩이면 충분하다. 난 그렇게 25일을 살았다. 거의 한 달이 되는 기간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누군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한 달을 꼽으라고 하면 난 일말의 주저함 없이 그 한 달을 꼽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 과정에서 내가 가지려고 하는 것들 중에서 정말 꼭 필요한 게 무엇인지, 내가 정말 그렇게 많은 것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사실 까미노를 다녀온 후에서 지금 사이에, 내가 정말 금전적으로 힘들리고 쪼달릴 때는 난 티셔츠, 양말, 속옷 각 5개, 바지 2개로 6월에서 9월까지 살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렇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었다. 물론 그렇게 살게 되면 멋을 내거나 옷을 통해서 기분 전환을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몇 년을 그 수준으로 산 결과, 작년과 올해에는 옷을 조금 사고 있는 편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꼭 있어야 할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까미노를 걸으면서 점점 가벼워지는 내 가방을 통해 나는 머리가 아니라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그게 아마도 까미노가 내 안에 일으킨 가장 큰 변화였을 것이다.
까미노에서 가방은 가장 친한 동반자다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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