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불편한 자리
학부시절에 소개팅을 몇 번 한적은 있지만 자발적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주위에 여사친들이 많고, 어색함을 깨기 위한 대화는 잘 하는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가 편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소개팅을 시켜달라고 한 적은 없었다. 학부시절까지의 일이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깨달았다. 소개팅 외에는 사람을 만날 길이 없다는 것을. 물론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만날 수도 있었지만, 사귀다가 헤어지게 되면 두 사람 중 한 명은 공동체를 떠나는 것을 수도 없이 많이 봤고, 두 사람이 만난다고 하면 시선이 그 두 사람에게 집중되는 것을 봤기에 그 안에서 쉽게 만나기도 힘들었다. 기존에 알던 사람과 만나게 되는 게 아닌 이상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루트는 현실적으로 없더라.
그렇다. 소개팅이 편하고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소개팅을 많이 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소개팅이 편하지는 않다. 소개팅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그 한 사람을 찾아서 하는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선택이다. 이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렇다. 주위에서 알던 사람들, 특히 괜찮은 사람들은 모두 짝을 찾아 하나, 둘씩 떠나가기 때문에.
소개팅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사실 소개팅은 '잘' 받으면 그렇게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다. 4년 전에 나와 같이 팟빵에서 '사랑학개론'이란 팟캐스트를 같이 운영했던 형은 '소개팅으로 만나라. 지인이 속한 집단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자기 앞마당에 토하는 거다'라는 조금은 극단적이지만, 가슴에 확 와 닿을 수 있는 얘기를 하고는 했다. 그렇다. 연인은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리고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 가정을 꾸릴 수준의 확신을 갖는 경우는 매우, 극히 드물다는 것을 감안하면 소개팅은 분명 '안전한' 선택일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소개팅은 사실 기본적인 사항들을 필터링하고 본인에게 맞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사실 사람들은 누구나 구체적으로 말을 하지 않을 뿐 본인이 상대에 대해서 이성으로 매력을 느끼는 지점들이 있지 않나? 소개팅은 그런 사항들에 대해서 '기본적인' 필터링을 할 수 있는 루트이며, 지인에게서 받는 소개팅은 그 사람과 내가 가까울수록 나와 성향이 맞는 사람을 만날 가능성도 주위에서 우연히 그런 사람을 만날 가능성보다는 높을 것이다.
외모를 예로 들어보자. 어떤 이들은 만나기 전에 외모를 확인하는 것에 대해서 불쾌하게 생각하지만 사실 아주 현실적이고 냉정하게 인정하자. 모든 사람들은 외모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이 있고, 외모에 대한 부분은 일종의 '예선 통과'와 같은 절차다. 어떤 이들은 '난 외모를 안 봐'라고 하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외모를 안 보는 것도 실제로는 외모를 일정 수준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잘생긴 사람이 싫다는 것도 사실은 그런 방향으로 외모를 보는 것이 아닌가? 그러한 점을 고려하면 서로 사진을 확인하고 애초에 이성적인 매력이 느껴지지 않을 사람과는 만나지 않는 게 서로를 위해서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 외에도 소개팅을 하기 전에 상대의 취향, 직업 등의 정보를 갖고 필터링을 할 수 있는 요소들은 많이 있다. 연애에, 사랑에 조건을 붙이는 게 편하지 않을 수 있지만 대부분 소개팅들이 불편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서로가 첫 만남에서 '덜 불편하기 위해서'라도 본인이 갖고 있는 최소한의 기준은 따져보고 소개팅을 하는 것이 맞다고 나는 생각하고, 그런 면에서 소개팅은 분명 자신과 맞는 사람을 만날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루트임은 분명하다. 이는 결혼정보회사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소개팅이 최선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난 지금 '소개팅을 그냥 해!'라고 말하고자 이 글을 쓰고 있는 거냐 하면 그건 아니다. 사실 위에서 소개팅이 현실적으로 필요하고 장점이 많다는 얘기를 '이성적으로' 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런 장점을 갖고 상대를 놓고 주판을 튕기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불편한 일이다. 나 역시 소개팅을 하면 할수록 그렇더라. 상대도 누군가의 소중한 딸인데, 그 사람의 외모에 대해서 이성적인 호감은 나만 느끼지 못할 뿐 다른 사람은 느낄 수도 있는 것인데 내가 그걸 재고, 계산하고 상대를 평가하는 것 같은 그 과정 자체가 사실 굉장히 불편했었다. 그래서 난 때로는 사진을 보지 않을 뿐 아니라 상대에 대해서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지인을 믿고 만나기도 했고, 소개팅하는 것 자체가 너무 피곤해질 때면 '잘 맞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만 골라서 만나기도 했던 것 같다. 사실 그러다 이제는 소개팅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져서 소개팅을 하지 않게 된 지가 꽤나 오래됐다.
소개팅이 갖는 가장 큰 한계는 주선하는 지인이 상대와 나를 아무리 잘 알더라도 '지인으로써의 A'와 '이성으로써의 A'는 다를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런 사람들이 분명 있지 않나? 친구로는 괜찮지만 이성으로서는 지인에게 소개를 차마 못 시켜주겠는 사람들 말이다. 또 사람들은 자신의 친구들에게 보이는 모습과 이성에게 보이는 모습이 많이 다른 경우도 있다. 그래서 조건을 아무리 치밀하게 따지고 만나도 두 사람이 잘 맞지 않는 경우는 생각보다 자주 발생한다. 그뿐 아니라 사람들은 '내가 잘 아는 사람이야'라고 하지만 알고 보면 두 사람은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할 뿐, 실제로는 깊은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어서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 특히 남자들의 경우 서로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경우는 많지 않아서 남자가 시켜주는 소개팅은 그들이 설명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뿐 아니라 소개팅을 시켜주는 사람들이 사람을 보는 시각과 소개팅을 하는 당사자가 사람을 보는 시각이 다름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도 있다. 여자가 보는 여자와 남자가 보는 여자, 남자가 보는 남자와 여자가 보는 남자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지 않나? 외모나 성격면에서 모두 말이다. 또 여자는 자신의 여자인 친구들에게, 남자는 남자인 친구들에게 조금 더 관대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혹자는 '외모는 그래도 확인이 가능하지 않냐'라고 할 수 있지만, 내 경험상으로는 사진만큼 믿지 못할 게 없다. 내 경험으로는 상대가 사진보다 덜 매력적이었던 적도 있었고, 더 매력적이었던 적도 있었다. 이는 외모라는 것은 그 사람의 이목구비뿐 아니라 전반적인 분위기가 종합적으로 작용해서 나타나는데 사진으로는 그게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외모와 느낌을 제대로 확인하려면 차라리 그 사람이 나오는 영상을 확인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한동안은 사진을 아예 확인하지 않고 소개팅을 하고는 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때때로 상대방의 조건을 따짐으로 인해서 상대가 갖고 있는 다른 매력을 놓칠 때가 있어서 조건을 엄격하게 따지는 소개팅이 꼭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간극은 우리가 스스로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스스로를 잘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나의 예를 들자면 난 상대의 종교를 엄격하게 따질 때도 있었고, 아예 따지지 않을 때도 있었는데 그 과정 역시 소개팅 과정에서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도 신앙의 색에 따라 상극일 수도 있고 종교가 달라도 다른 면에서 두 사람이 정말 잘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소개팅의 원칙
나이가 들수록 대부분 사람들에게 소개팅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선택이 된다. 이는 친구가 많은 사람들은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친구의 친구들까지 모이는 모임이 그래도 종종 있기 때문에 그나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지지만, 나이가 들면서 지인들이 결혼을 하면서 그렇게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의 풀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동호회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적당히 알고 지내던 사람과 관계가 발전하는 것도 소개팅 까지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인위성은 수반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소개팅을 마냥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소개팅을 '마구잡이로' 할 필요는 없단 것이다. 나의 경험상, 그렇게 하는 소개팅에서는 서로 잘 맞는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아주, 매우, 낮다. 두 사람이 마음이 맞는 것이 기적이라고 하지 않나? 그런데 그렇게까지 마구잡이로 해서 만나질 정도의 사람이라면 이미 주위에서 누군가를 만나지 않았을까? 이성을 만날 수 있는 루트가 전혀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물론 사람들 중에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는 과정 자체가 즐거운 사람들도 있고, 그런 사람들이라면 모든 소개팅을 다 하는 것이 큰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에게 소개팅은 굉장히 지난하고 피곤한 과정이다. 그렇다면 소개팅은 빈도를 높이지 않는 게 본인의 현재의 행복을 위해서 맞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소개팅은 본인이 잘 아는 사람한테, 혹은 사람을 보는 눈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받아야 한다. 소개팅이 자주 들어오던 시절에 나는 한 다리 건너서 들어오는 소개팅은 절대로 받지 않았고, 소개팅이 잘 들어오지 않는 시즌(?)에는 가라지 않고 소개팅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경험상 그래도 두 사람을 직접 아는 사람이 시켜주는 소개팅이 최소한 두 사람이 불편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더라. 실제로 내가 소개팅으로 연인까지 됐던 경우는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나를 어느 정도 이상 아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놓고 고민하다가 잘 맞을 것 같은 구체적인 포인트를 집어서 연결해줬었다.
마지막으로 소개팅을 할 때는 상대에 대해서 '최선의 조건'을 따지려고 하지 말고 '내가 수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그리고 가장 낮은 수준의 기준'을 갖고 결정을 해야 한다. 이는 일단 그렇지 않으면 소개팅을 할 수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고, 자신이 생각하는 최소한의 기준에는 부합하는 사람이라면 실제로 만났을 때 자신이 생각하지 않은 조건에서 두 사람이 정말 잘 맞고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상대를 만날 때 기대가 높으면 만나서 실망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 기대가 적정한 수준으로만 있으면 실망하지 않거나 상대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이 형성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상대에 대해서는 환상을 갖지 않고 소개팅에 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난 생각한다.
왜 소개팅인가?
브런치에서 내 글을 꾸준히 읽어주신 분들이라면 이쯤 됐을 때 '얘는 평상시에는 실전 같은 얘기는 하지 않더니 이번에는 왜 이렇게 현실, 조건, 실전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깊게 보겠다면서 소개팅 얘기를 이렇게까지 설명하는 것도 의아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소개팅 얘기를 한 것은 아주 어렸을 때 만난 사람과 결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소개팅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통과의례에 해당하는데 이에 대한 반감을 강하게 갖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소개팅을 무조건 하라는 것도 아니다. 나도 들어오는 소개팅들도 하지 않고 있는데 그런 의도로 글을 쓰지는 않지 않겠나?^^ 난 미래를 위한 행복도 중요하지만 내가 지금 행복해야 미래에도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난 사실 누군가를 인위적으로 만나고 싶을 만큼 외롭지도 않고, 지금 내게 주어진 일들만으로도 행복하며, 소개팅을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그래서 난 내 상태가 변하기 전까지는 소개팅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이 역시 내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난 그저 '지금의 행복을 위해서 결정을 하시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소개팅은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그 경로를 인위적으로 막을 필요는 없다. 정말 인연이라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상하게 편한 사람들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본인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머리가 아니라 그 상황에서 본인의 마음이 가는 대로 결정을 하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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