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공식처럼 했었다. 기도할 때는, 회개부터 하고, 그 다음엔 감사한 후에, 하나님께 하고 싶은 말하기. 어디에선가, 누군가가 그런 순서로 기도를 하라고 가르쳐주셨고, 범생이 스럽게도 시간과 장소를 잡고 기도할 때면 난 항상 그렇게 기도하기 위해 노력했다.
쉬지 않았다. 말씀을 꾸준히 잘 읽을 때 더. 그나마 기도를 한참 하지 않았을 때는 큼지막한 잘못과 큼지막한 감사거리들이 생각나는데, 매일 말씀을 읽고 기도할 때는 대체 하루 사이에 뭘 회개하고 뭘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의식적으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기 위해 눈을 감으면 회개부터 나온다. 정말 사소한 것들까지, 예전에는 회개꺼리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회개한다. 몸 관리를 못해서 죄송합니다, 살찐 것도 죄송합니다, 잠을 제대로 자지 않은 것도 죄송합니다, 음란한 마음을 품었던 것도, 말씀을 읽지 않은 것도, 지인을 속으로 욕한 것도...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다 죄송했다. 이 몸도, 삶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인데, 난 잠시 맡아서 관리하는 자인데, 그걸 제대로 관리하지도, 사용하지도 못한 것들이 죄송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마음이다.
그리고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모든게 감사하다. 잔고가 있어서 감사합니다. 부자는 아니지만 부모님께서 집을 갖고 계셔서 넉넉하게 쓸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도, 요즘에는 심지어 결혼을 못하고 있는 것도, 감사하기 시작했다. 내가 더 어렸을 때 결혼했다면 그 사람에게 입혔을 상처들을 생각하니 하나님께서 내가 그런 죄를 저지르는데서 보호해주신 느낌이고, 결혼을 못한 덕분에 하나님께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어서, 의지할 존재가 하나님 밖에 없었어서 하나님을 더 보고, 알게 해주신게 감사했다. 내게 힘들었던 시간들도.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회개할게 없다.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라고 전제하고 넘겨버려도, 회개할게 없다. 내 노력으로 이룬 것이라고 생각하면, 감사할게 없다. 우연이라고 생각하면, 감사할게 없다.
그런데 한 가지 전제만 바꾸면. 이 땅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잠시 맡기신 것이라고 전제하면. 우리 삶은 회개와 감사로 넘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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