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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한국에서 남자로 사는 것에 대하여

Pr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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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를 여름에 기획했을 때 서두에 썼던 문구다. 두려웠다. 남자가, 한국에서 남자들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 말이다. 사랑과 연애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아주 가끔씩 특정 커뮤니티에서 좌표를 찍고 오는 경험도 했고, 남자와 여자에 대한 주제가 아무래도 예민할 수밖에 없다 보니 어떤 반응이 어떻게 올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에 대한 나의 최소한의 대비책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친한 주위 사람들에게 이 시리즈에 대해서 의견을 물어보자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갈렸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남자들은 '그래, 이런 얘기도 사실 좀 필요해'였고, 여자들은 '굳이 그럴 필요 있어? 네가 구독자를 늘려야 하는 것도 아니고, 너무 자극적이지 않을까?'라고 반응했다. 한참 고민을 하다 접었다.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직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시리즈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이 시리즈의 제목만 본 사람들은 마치 '남자들도 힘들다고!'라고 말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때문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있는 많은 남녀 문제들은 사실 남자들이 고쳐져야, 남자들의 사회에 변화가 있어야 일어난다고 생각하기에 이 시리즈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이런 나의 의도와 마음을 오해해서 공격받는 것도 두려웠지만, 사실 난 그보다도 더 근본적으로 내 의도 자체가 의심받고 오해받는 것이 더 두려웠다.

남자들도 힘들다고 변명할 생각은 없다. 이는 남자인 내가 추측하기로도 우리나라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이 남자로 사는 것보다 몇 배는 힘들 듯하기 때문이다. 성장환경과 내가 속한 집단의 특성상 30대 초중반까지도 내 주위엔 여자들이 더 많았다 보니 그녀들의 이야기를 다른 남자들보다는 많이 들은 편이지만, 난 여전히 남자이기 때문에 내가 그녀들의 이야기를 머리로는 받아들여도 그것이 마음에서까지 온전히 느껴질 수 없다는 한계를 안다. 그래서 감히 여성들이 우리 사회에서 겪는 어려움을 평가하거나 비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시리즈를 써내려 가다 보면 '남자들도 이런 사회가 힘들다'라는 이야기는 나올 수밖에 없다. 그것도 사실이기에. 하지만 그 지점에 초점을 맞출 생각은 없다. 다만, 그 부분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지 않는 이상 우리나라의 가부장제도, 남녀차별의 문제도 해결될 수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지점이 해결되어야 남녀의 다름과 각자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가 가능할 것이기에.

우리나라에서 표면적으로 여성들을 힘들게 하는 것의 7-8할 이상은 남자들의 영향이지만,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 보면 여성과 남성을 모두 힘들게 하는 출발점은 모두 같다. '가부장제' 그 문화의 영향으로 인해 때로는 남성이 여성에게 가해자가 되고, 여성이 여성에게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남자들의 경우에는 가해자가 되는 경우는 있어도 가부장제 자체로 인해 여성에 의해 피해를 입는 경우는 없지만, 그 문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오는 여성들의 반응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는 있는 듯하다.

우리는 그렇게 돌고 돌아서 서로에게 가해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점은 사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가부장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여성들이, 여성이기 때문에 경험하게 되는 문제들이 '여성이 차별받고 있어!'라고 외침으로써 개선되는 면도 있지만, 그 효과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우리는 그 한계를 이미 다양한 형태로 경험하고 있다. 여가부를 없애라는 일부 남성들의 댓글과 여성들을 비하하는 표현들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것이 그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난 개인적으로 이솝 우화 중에 '해와 바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뒷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해와 바람' 이야기는 해의 승리로 끝나지만, 그 뒷이야기에서는 해와 바람이 협력하고 조화를 이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남녀문제에서 남자들의 잘못된 모습을 지적하고 남녀차별을 지적하는 것이 '바람'이라면, 남자들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그에 대한 이해를 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은 '해'일 것이다. 두 가지가 모두 균형 잡히게 이뤄질 때야 비로소 우리나라에 있는 남녀문제가 부작용은 최소화하면서 해결되어 나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남자들이 변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 남자들의 변화는 야단치고, 채찍질만 한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본인의 잘못을 지적할 때 '네가 이러이러해서 이러한 면이 있는 건 알겠어, 하지만 이건 이러저러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설득하는 것이 '너는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고 이런 게 잘못된 나쁜 놈이야'라고 하는 것보다 상대를 설득할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남자들이 변하기 위해서는 남자들이 경험하는 현실을 최소한 인정은 해줄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금 후자의 상황에 있는 듯하고, 전자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시리즈가 누군가에게는 그 첫걸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우리 사회가 조금 덜 공격적이 되고 남녀가 평화롭고 평등하게 공존할 수 있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리즈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