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에 대하여
가부장제: 가장인 남성이 강력한 가장권을 가지고 가족 구성원을 통솔하는 가족형태, 또는 가족 구성원에 대한 가장의 지배를 뒷받침해 주는 사회체계를 일컫는 말.
가부장제의 가장 큰 피해자는 누가 뭐래도 여성이다. 남성에게 강력한 가장권이 주어짐으로써 여성은 일방적으로 남성에게 종속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엄청난 피해이며 폭력인 것은 개인은 동등하고 평등해야 하는데, 누군가가 자신의 성별만을 이유로 다른 이들에게 종속되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그 사람의 자유가 박탈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남성에게 강력한 가장권을 부여하는 가부장제는 여성이 태어날 때부터 그녀들의 자유를 박탈한다는 면에서 매우 폭력적인 제도이고, 그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여성에게 발생하는 피해가 단순히 '현상'에 그치면 여성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아닐 수 있다. 예를 들면 여성들이 태어나서부터 가부장적인 문화에 익숙하게 적응하고 그렇게 삶을 사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고,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면 그건 '객관적으로'는 폭력적일 수 있지만 '주관적으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피해가 발생했는지 여부는 온전히 피해를 받은 자의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으로서의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권리와 '보호할 의무'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그 균형이 잘 잡히고, 여성들이 그러한 제도에 순응적이라면 그건 피해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리고 남성들은 가부장적인 제도 안에서 '남자다움'을 활용해서 여성들을 보호하기보다는 함부로 대하고 심한 경우에는 물건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상처를 받지 않을 사람은 없다. 아니, 그 과정에서 상처를 받지 않을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은 현실적인 상황의 영향을 받고, 인간에게 자유는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태어났을 때부터 그 자유를 제한 또는 일부 박탈하는 제도는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
가부장'적'사회에서 여성의 피해와 상처
우리나라 또는 사회는 가부장제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헌법에서는 오히려 남녀평등에 대한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가부장제' 사회가 아니라 가부장'적'인 사회다. 그리고 가부장'적'이라는 것은, 남성에게 권한이 더 부여되고 남자들이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적으로 수혜를 보는 사회를 의미한다.
이렇듯 '국가에서는 공식적으로 남녀가 평등하다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남녀차별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갈등이 많을 수밖에 없고, 그런 사회에서는 여성들이 '가부장적인 것도 괜찮아'라고 받아들일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가부장적인 사회에서는 여성들에게 피해가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발생하고 존재한다. 여기에 더해서 '현실'의 부조화 또는 부정의함은 여성들의 현실은 물론이고, 그 과정에서 마음에 상처와 피해를 입힌다. 그러한 측면에서 '가부장적'인 사회는 어쩌면 '가부장제'가 아예 공식적으로 승인되는 사회보다 여성들에게 더 많은 피해를 입힌다고 할 수 있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들의 피해와 상처가 발생하는 경로는 현실에서 시작된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당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대함을 당하는 '현실'에서의 경험이 그녀들의 '내면'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이들은 '여성가족부도 있고, 이제는 여성이 더 우대받는 세상이 아니냐'라고 말한다. 그에 대해서는 이 매거진에서 다루겠지만, 여성들이 더 우대를 받는 면이 일부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에 대해서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접근해서도 안되고 그렇게 될 수도 없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여성이기 때문에 받는 불이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조금 덜하다고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30대 후반의 남자인 나를 낳으신 우리 어머니만 해도 나의 친할머니가 '아들, 아들'하시는 것에 질리셔서 내가 딸이었으면 엎어놓으려고 하셨다고 하실 정도면, 우리 사회에는 남녀차별과 불평등으로 인한 상흔이 온전히 치유되지 않고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음은 인정해야 한다. 즉, 이는 이성과 논리가 아니라 감정과 상처의 문제인 것이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남자
그런데 가부장'적'인 사회가 '가부장제'보다 더 안 좋은 이유는, 가부장제가 공식적으로 용인될 때는 남자들에 있어서도 권리, 책임과 의무가 체계적으로 잡혀있었던 반면 가부장제는 인정되지 않지만 가부장적인 사회에서는 그 체계가 없이 가부장적인 요소들만 일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서 가부장제에서의 '남성성'은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왜곡되고, 그 왜곡된 남성성은 남자들을 괴물로 만든다.
가부장제에서 남자들은 권리도 갖지만, 그만큼 책임도 져야 한다. 자신의 가정의 생계를 해결하고,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남자의 책임과 의무에 해당한다. 그래서 그러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남자들은 남자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그에 따라 사회적으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다. 가부장제에서 가장으로서의 권리를 인정받고 그 지위를 누릴 수 있었던 남자들은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가부장적인 요소는 있지만 가부장제는 인정되지 않으면서 남녀평등이 국가의 기본원칙인 사회에서 그 체계는 붕괴되었다. 남녀는 평등하기에 남녀의 권리는 동등해야 하는데, 가부장적인 요소가 사회에 남아있다 보니 우리 사회에서는 남자에게 책임과 의무가 여전히 부과되어 있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반대로 어떤 남자들은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는 다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권리는 찾으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남녀 간의 갈등은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남자들은 가부장제에서 남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는 다할 것을 요구받으면서 권리는 평등하게 갖는 법제도와 사회문화에 분노하고, 여자들은 자신의 책임과 의무는 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권리를 갖겠다고 하는 남자들을 비판한다. 사실 이 두 주장은 모두 맞는 얘기다. 책임과 의무가 한쪽에 쏠리면 그 사람이 더 많은 권리를 갖는 게 맞고, 자신의 기본적인 책임과 의무도 다하지 않으면서 권리를 누리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여기에서 문제는 어느 경우에서든지 우리 사회에서는 '남자라면 000해야'라는 전제가 여전히 존재한다는데 있다. 물론, 그런 문화가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지금의 30대들만 하더라도 어렸을 때부터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자라온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남자들 중 일부는 그 과정에서 괴물이 되어간다. 어렸을 때부터 심어진 '남성성'은 가부장제 하에서는 '책임과 의무를 하는 사람'이라는 측면에서 강하고 강직하며 힘든 상황에서도 버텨내는 존재였는데, 가부장제는 무너지고 가부장적이기만 한 사회에서는 권리, 책임, 의무라는 개념이 희석되다 보니 '강함'만 남게 되었다.
그 '강함'은 사춘기를 거치면서 왜곡된다. 책임과 의무의 개념 없이 남성성은 패기, 깡, 강함, 공격성으로 왜곡되고, 남자들 사이에서는 그들이 말하는 그러한 '남성성'이 없는 사람들은 '남자답지 못함'으로 간주되어 업신여겨진다. 그리고 그러한 그들만의 남성성은 여전히 남자와 여자들만 존재하는 중고등학교가 많은 우리 사회에서 강화되고 고착된다.
그러한 면에서 우리나라의 '가부장적'인 사회는 현실이 아니라 관념과 내면의 차원에서 적지 않은 남자들을 망가뜨린다고 할 수 있다. 즉, 그들이 현실에서 피해나 차별을 받는 경우는 드물지만, 사회에 나가기 전에 잘못된 남성성과 남성관을 학습하게 되고, 그 왜곡된 남성성이 여성에게 피해를 주는 결과를 야기한다.
그리고 남자들 중 상당수는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자신 안에 있는 감성, 감정과 정서에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상처를 입거나 그 부분이 망가지고 왜곡된다. 즉, 그들은 왜곡된 남성성으로 인해 속에서부터 망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망가진 내면이 현실에서 구현되면, 그들은 책임과 의무는 다하지 않고 권리만 요구하는 괴물이 된다. 그러한 면에서는 사실 남자들도 '가부장적'인 사회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그들이 본래 그러한 면보다는 사회에서 그렇게 되기를 강요받음으로 인해 그렇게 변해가는 면이 더 크기 때문이다.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하여
어떤 이들은 '남자는 원래 이렇게 여자는 원래 저래'라고 한다. 나 역시 소위 말하는 '남성성'과 '여성성'은 분명히 일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남성과 여성 호르몬이 다르고, 그 호르몬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이미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 아닌가? 하지만 같은 성별의 사람도 그 호르몬이 강한 사람이 있고 약한 사람이 있다. 그 다름은 틀림이 아니며, 그 다름은 다름으로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
또 다른 이들은 '원래 남자들에게 모든 것이 더 많이 인정되었었잖아'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려시대만 해도 남자가 결혼 직후에 처가에서 사는 경우도 많았고, 여성의 지위가 유교를 바탕으로 한 조선시대와는 확연히 달랐다. 심지어 조선시대에도 초기에는 여성의 지위가 중기나 후기처럼 낮지 않았다. 신사임당이 살던 시기만 해도 남녀관계가 그렇게까지 불평등하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남녀차별로 인해 신사임당이 크지 못했다'라고 하고, 그런 면도 일부 있겠지만 한 번 생각해 보자. 남녀차별이 엄청나게 심했다면 신사임당에 대한 이야기들이 지금 우리에게 전해질 정도로 남아있었을까? 신사임당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 당시만 해도 여성들이 사회적 지위가 압도적으로 낮지는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남녀의 차별적인 지위는 '원래 그런 것'이 아니란 것이다.
물론, 원시시대에는 신체적으로 더 강한 남자들이 사냥을 하고, 농사를 지었고, 전쟁도 치렀다 보니 남성들의 지위가 우월했을 수는 있다. 그런데 원시시대의 특징이 지금처럼 고도로 발전되고, 힘이 센 사람이 아니라 머리를 잘 쓰는 사람이 생존하는데 유리한 사회에서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
현대사회에서는 현대사회에 맞는 질서가 필요하다. 이는 남녀의 사회적 지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고, 그 질서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남녀는 '평등'하다는 것. 즉, 남자와 여자는 성별로 구분될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사회적 역할, 책임, 의무에 따라 권리가 부여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잡혀 있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재정의 되고, 어떠한 면이 남자와 여자의 다름으로 인정되어야 하고 어떠한 면은 같다고 간주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관념적인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지금처럼 남녀가 평등해야 하는 사회체제 속에서 가부장적인 사회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사회에서는 여성들은 물론이고 남성들도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 왜곡된 남성성에 대한 예시들은 이 시리즈에서 계속해서 풀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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