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시장에서 여자들이 남자들이 더 불리한 것은 사실이다. 아니, 일단 그렇게 보이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2020년 4월에 나온 조사 결과에 의하면 대기업 44개 회사 중 93%가 남자들이 50% 이상이 됐고 90%를 넘는 기업도 36.2%에 달했다. 여자가 50%를 넘는 대기업은 3개밖에 없었단 것을 감안하면 취업시장에서 남자들이 선호되고 여성들은 역차별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취업시장에서 여자들이 불리하단 것을 부인하진 않겠다. 우리나라에선 (1) 그래도 군대 다녀온 사람이 말을 잘 듣고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생각과 (2) 여성들은 결혼하면 금방 그만둘 것이라는 생각이 비슷한 수준의 사람이면 남자를 선발하게 만드는 면이 분명 있다. 그리고 여전히 남자가 기업의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는 실력이 월등하지 않은 이상 남자들은 남자들을 선발하는 게 심리적으로 편한 면도 있을 것이다. 이는 여자 직원과 일을 하면 말과 행동을 더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실력대로 뽑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우리는 여기에서 '실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 대학교 학점이 더 좋은 사람이 회사일을 더 잘할까? 여러 활동을 한 사람이 더 능력이 있고 회사생활을 잘하는 사람일까? 꼼꼼한 사람이 무조건 회사에 더 잘 적응할까? 사람들은 회사에서 실력으로 선발해야 한다고 하지만, 사실 그 실력이 어떤 실력을 의미하는지는 아무도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아니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 그런 종류의 실력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 이는 대기업으로 분류될 만큼 큰 회사들은 업무체계가 내부적으로 잡혀 있어서 개인의 역량이 아닌 시스템이 일을 돌아가게 하고 개인의 역량이 결과물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영향을 미치더라도 그건 임원이나 팀장급의 역량이 문제가 되지 신입사원의 역량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냉정하게 얘기해서 큰 기업들의 신입사원은 너무 능력이 떨어지지만 않으면 회사의 성과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오히려 너무 똑똑하거나 야무진 사람들은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싫증을 내고 그만둘 수 있기 때문에 회사들은 오래 다닐 적정한 수준의 사람들을 뽑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채용시장과 취업시장에서 남녀차별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심각한 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사실 조금 더 세분화된 통계가 주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10명을 뽑는 자리에 1000명이 지원했다고 하자. 그중에 여자 지원자가 10명 있었고 최종적으로 남자만 10명이 채용되었다면, 그 채용과정이 여성에게 차별적인 것이었을까? 그런 상황에서 남녀를 균등하게 채용해야 한다는 기조로 인해 여성이 5명이 채용됐다면 그건 오히려 남자들에게 차별적인 것이 아닐까?
대기업 중에 남자 비율이 매우 높은 기업들의 경우 대부분이 공대 졸업생들을 많이 채용해야 하거나 생산 공장이 있는 업계에 있는데, 우리나라 공대에는 남자들이 압도적으로 많고 거친 공장에는 남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일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드웨어든, 소프트웨어든 공학적인 면이 강조되는 회사들의 경우 지원자 자체도 남자가 많을 것이고 그렇다 보니 여자들이 훨씬 적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우 지금도 그렇지만 10여 년 전의 경우에는 남자 중심적인 문화가 엄청나게 강했고, 그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맞벌이가 당연시되지 않았다 보니 여자분들 중에 결혼하고 일을 그만두는 분들이 많았기에 '남은 사람'들 중에는 남자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임원 숫자의 경우, 지금 대기업 임원의 평균 연령이 53세라고 하는데 이는 80년대 학번들이 임원들 중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80년대의 경우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고 대학 재학생들 중에서도 남자가 여자들보다 훨씬 많았고, 그 결과 회사에 취업하는 사람들도 남자가 훨씬 많았다. 그리고 90년대까지, 아니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고 나면 회사를 그만두는 여자분들이 상당수 있었기 때문에 회사에 남은 사람들은 남자들이 훨씬 많았다 보니 임원은 거의 남자로 채워질 수밖에 없었던 면도 분명 있다. 따라서 단순히 여자 임원의 숫자가 적다고 해서 그게 무조건 기업 내에서 남녀차별의 증거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통계를 세분화해서 보면 회사나 채용시장에서 남녀차별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난 (1) 군필자에 대한 긍정적인 선입견과 (2) 오래 다닐 것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기업들이 남자를 선호한다고 생각하고 적지 않은 여성들이 이로 인해 차별을 받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채용이나 기업 내에서의 남녀 간의 차별을 줄여나가는 데 있어서 '평등하게 대해라! 차별하지 말라!'라고 주장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거기에 통계를 들이밀어도 마찬가지다. 대안 없는 주장은 공허하고, 무작정 평등과 차별금지를 외치는 것은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통계들의 경우 위에서 내가 설명한 모순과 허점들이 있기 때문에 설득하는데 크게 유용하지 않고, 사실 통계를 들이미는 것도 대안 없이 일단 비판을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채용의 불평등, 불공정함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군대의 문제는 내가 이 시리즈 다른 글에서 다뤘기에 그 글을 그에 대한 논의를 대신하는 것이라 치고 이 글에서는 생략하고자 한다. 그 글의 요지는 남녀가 모두 국가에 대한 책임과 의미를 공정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남녀평등으로 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는 것이었는데, 이는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두 번째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여자는 금방 그만둔다'는 생각만큼 낡고 현실을 모르는 사고방식도 없을 것이다. 요즘 20-30대가 사는 세상에서는 맞벌이를 하지 않고 외벌이만 해서 먹고살 수 있는 수준의 연봉을 받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에 결혼하거나 애를 낳으면 그만둘 생각을 하는 여자들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완전히 기업 또는 채용을 결정하는 사람들의 잘못이라고 하기 힘든 것은, 실제로 많은 여자분들이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으면 회사를 그만둬왔기 때문이다. 21세기에 들어와서 그 흐름이 변하긴 했지만, 그렇게 그만두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고, IMF전까지만 해도 여자분들 중 대부분은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으면 회사를 그만뒀을 것이다. 채용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이 맞지는 않지만, 그렇게 결정하는 경험적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채용과정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기도 쉽진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에 대해 '기업문화가 바뀌면 될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고 이는 의미가 있는 비판이긴 한데, 어떤 문화를 어떻게 바꿔서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에 대한 대안이 제시되지는 않는 듯하다. 회사가 변화를 하는데는 물리적 비용과 함께 기존 구성원들이 적응하는데 드는 에너지라는 비용이 소요되는데, 기업문화를 바꾸려면 그렇게 바꾸려는 인센티브와 함께 비용을 최소화 할 방법이 같이 제공되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제기되는 비판은 비판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회사나 구성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치밀하고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대안이 함께 제시되어야 하는데, 그런 대안은 거의 제시되지 못하는 듯하다.
분명한 것은 기업에서 채용을 하는 남자들은 '여자들은 채용한 후에 애를 낳으면 출산휴가에, 육아휴직에 생리휴가에 별의 별거를 다 요구해서 피곤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는 엄청나게 폭력적인 생각이다. 사람이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것을 갖고 차별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것이 또 있을까? 그리고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기업은 시스템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런 휴직을 한다고 해서 회사 일이 안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그런 선입견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설적으로 남자들이 가사에 여자들만큼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남자들도 육아휴직을 하는 게 당연해지고, 심지어 아내가 출산을 하면 남자도 아내를 돌볼 수 있도록 출산휴가를 어느 정도 기간 동안 보내주게 되면 채용하는 과정에서 그런 요소로 인한 여성에 대한 선입견은 확연하게 줄어들 것이다.
남자들도 가사에 참여할 수 있게, 해야만 하게 회사의 제도와 시스템이 바뀌면 기업들도 채용을 하는 데 있어서 남자를 확연하게 선호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자들도 아내가 출산하면 출산휴가를 가고, 아이가 커가면서 육아휴직을 한다면 남자를 채용하는 것과 여자들을 채용하는 것이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것 아닌가? 그와 같은 방식으로 남녀 간의 생물학적 차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업무공백의 수준을 줄여나가면 채용시장에서 남녀를 차별하는 경향도 약화될 것이다.
모든 문제들이 그렇지만 '이게 문제야!'라고 외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이는 그걸 외치는 상대가 더 강한 상대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럴 때는 그 문제를 야기하는 원인을 파악하고 그 부분을 어떻게 바꾸는 것이 결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할지를 고민하면서 그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채용과 기업 내 승진의 문제는 특히 그런 방향으로 접근해야만 하는 문제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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