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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한국에서 남자로 사는 것에 대하여

남자들의 음주가무와 유흥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카페가 신촌에 있다. '미네르바'라는 70년대부터 그 위치에 있었고 알코올램프 같은 기계에서 커피를 추출하는 '사이폰 커피'가 시그니처인, 빈티지한 느낌이 나는 가게다. 신촌 근처에 있는 대학을 나왔다 보니 우연히 한 번 가게 된 곳이 지금도 가끔씩 찾는 애정 하는 카페가 되었다.

그 카페에서 많은 추억들이 있었지만, 그중에 가장 강렬한 추억은 남자 넷이 카페에 들어갔다 15분도 안되어 나온 기억이 아닐까 싶다. 카페의 특성상 연인이나 소개팅 한 남녀가 많은 분위기였는데, 그 날따라 유독 우리 테이블 외 모든 테이블에 남녀가 앉아 있었고 유리가 유일하게 시커먼 남자 넷이 앉은 테이블이었다. 우리 넷 모두 뭔가 우리가 있으면 안 되는 느낌적인 느낌을 받았고, 우리는 커피를 거의 원샷하고 나와 맥주집으로 향했다. 그중에 두 명은 술을 거의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게 더 편하게 느껴졌다.

거의 10년 전 일이다. 지금은 그나마 남자들끼리 카페에 앉아서 수다 떠는 광경을 종종 볼 수 있고, 유재석과 친한 연예인들의 소모임인 '조동아리'는 술 한잔 안 하고 카페에서 새벽까지 수다를 떤다는 얘기도 자주 회자되어 남자들끼리 술을 마시지 않고 수다를 떠는 것을 독특하게 보는 시선이 많이 줄어든 느낌이긴 하다.

하지만 '남자들끼리 커피만 마시면서 몇 시간 동안 수다를 떤다'는 내용이 여전히 방송에서 놀림거리 또는 통상적인 경우가 아닌 것처럼 다뤄지고, 그런 얘기를 하면 반사적으로 '무슨 남자들끼리 할 말이 그렇게 많아?'라는 반응이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서 나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술 마시지 않는 남자들의 모임'은 여전히 낯설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자들의 술 문화의 역사는 한국의 술 문화와 맥을 같이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조선시대 말기에 아무리 일을 해도 자신에게 떨어지는 것보다 양반이나 관리들에 의해 수탈당하는 것이 훨씬 많다 보니 일은 하지 않고 술에 찌들어 사는 남자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렇게 술에 찌들 수 있는 이면에는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불교를 억압하면서 불교의 차문화도 같이 사그라들었는데, 그런 차문화를 대체한 것이 술이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각 집별로 자신들만의 술이 있을 정도로 술 문화가 발달했고, 생활이 힘들어지자 사람들은 어디서나 찾을 수 있는 술에 찌들어 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문화는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이후 힘든 시기를 보내는 과정에서 그대로 이어졌을 것이다. 경제가 급격하기 발전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힘듦을 잊기 위해 술을 퍼마셨을 것이고, 경제가 발전하면서 엄청나게 열심히 일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사람들은 일한 후 스트레스를 또 술로 풀었을 것이다. 그 당시 사람들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술 마시는 것 외에 다른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당시에는 여자들은 대부분 살림을 하고, 남자들은 밖에서 일을 했다 보니 그렇게 술을 퍼마시는 문화는 남자들 사이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을 것이고, 그런 문화는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대물림됐을 것이다. 우리나라 아버지들은 상당수가 아들이 큰 다음에 함께 한 잔 하는 것이 로망 아닌 로망이 아닌가?

그렇게 처음에는 술 중심으로 시작된 문화가 술을 계속 부어대다 보니 2차로 옮겨지고, 남자들만 있는 집단에서 술로 나사를 풀자 본능에만 충실하게 되면서 이성이 나오는 곳을 찾아다녔을 것이다. 그런 문화는 조선시대에 어느 정도 있었을 것이고, 일제시대에 조금 더 확장 및 확대되었겠지만 우리나라처럼 폭발적이고 다양한 형태의 유흥업소가 생기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우리나라의 급격한 경제적인 성장, 그로 인해 쓸 수 있는 금전의 증가 등이 영향을 줬을 것이라 난 생각한다. 그리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부분 사회 요직을 남자들이 차지하는 상황에선 남자들의 본능에 집중된 유흥문화가 자리잡기 시작했고, 그 수요가 생기면서 공급도 늘어났을 것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그런 유흥문화는 '경제성장'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다른 여가활동이 부재했을 때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나라는 70-80년대, 아니 최소한 90년대까지도 '인권'과 '개인'이란 개념이 그렇게 강하지 않았던 것이 현실이고, 우리나라의 유흥문화는 그런 배경에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다르다. 우리나라에는 이제 술 외에 건강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여가생활이 넘쳐난다. 그리고 이제는 현실적으로 남녀가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아니 맞벌이를 해도 사는 게 힘든 시대가 되었다. 그만큼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었다면, 이젠 음주가무를 즐기더라도 그 문화에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인권, 특히 여성의 인권은 해결되어야 할 시급한 문제인데, 우리나라 유흥업소들의 문화는 인권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문제가 많다.

우리나라는 경제가 어쩌면 지나치게 빨리 발전했는지도 모른다. 경제는 빠르게 발전하는데 사회의 문화는 그 속에 맞춰서 발전하지 못했다 보니 우리나라의 여가생활을 포함한 여러 문화는 여전히 70-80년대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그 시대에 사회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여전히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보니 그 시대의 문화는 그대로 밑으로 대물림된다. 자녀들 뿐 아니라 회사 후배들에게도. 그런 음주가무 문화가 처음부터 편하고 자연스러운 사람은 없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게 불편했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불편함은 사라지고, 그런 문화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나는 남녀가 섞여 있는 술자리에 한 결혼한 선배가 당당하게 2차까지 이어지는 유흥업소나 마사지 가게에 가는 얘기를 하는 것을 들으면서 남자들이 그런 문화에 얼마나 무감각해졌는지를 여실히 느꼈다. 결혼해서 아이도 있었던 그 선배는 혼자서는 그런 업소를 찾지 않지만, 미혼인 친구들이랑 만났을 때 가자고 하면 자신도 2차까지 간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거기에선 사랑을 하는 게 아니라 엔조이를 하는 것일 뿐이라고. 딸도 있는 사람이 어떻게 그 업소에서 일하는 여자분들의 마음은 전혀 헤아리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얘기를 듣고 '그러면 형수님이 홉빠에 가서 놀고 2차에 가는 건 사랑이 아니니까 받아들일 수 있냐'는 나의 질문에 그 선배는 왜 그건 다르다며 짜증을 낸 것일까. 엄청나게 가정적이고,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모습만 보여왔던 그 선배까지 그런 말을, 당당하게 하는 것을 보고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 선배도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들끼리 있는 사회 또는 무리에서 그런 식의 대화가 오갔을 것이고, 그렇게 쓸려다니다가 본인도 어느새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 문화는 시간적으로는 70-80년대에서부터 이어지지만, 남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토대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남자들의 사회에서 만들어진 '남자다움'과 남자들 특유의 '군대식 집단주의'를 통해 형성된다.

정말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셔야만 했던 시대가 있었다. 고통을 잊기 위해서는 술이 가장 저렴한 수단이었던 시대가. 그리고 우리나라는 경제발전이, 부자가 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로 설정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를 거쳐왔고, 그것만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우리나라의 음주가무 문화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시대는 다르지 않나? 경제적으로 규모가 성장한 만큼 문화적으로도 성숙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럴 수 있는 선택의 여지도 많지 않나?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자분들에 대해서는 '당신 딸이라고 생각해 봐라'라는 말로 설득하려는 사람들도 있는데, 정말 굳이 그렇게 상상을 해야만 발걸음이 멈칫하는 사람이라면 이는 그 사람이 얼마나 '사람' 그 자체에 대한 존중이 없는 지를 보여준다.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처음부터 원해서 일한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강제로, 어떤 이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어쩔 수 없이 그 업계에 발을 들였을 것이고 거기에 있다 보니 그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고통을 견디면서 그 안에 있을 것이다. 만약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없다면, 다른 대체재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게 되면 그 영역에서 시장과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고, 유흥업에 발을 들이는 사람은 줄어들 것이다.

그런 변화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남자가 무슨...'이란 생각과 말을, '남자답지 못하게...'란 생각과 말을 없애고 개인의 다름을 존중하는데서 시작될 것이다. '야, 남자들끼리 새벽까지 커피만 마시고 수다를 떨었대'라는 말에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어쩌라고?'라고 반응하는 게 자연스러워졌을 때, 우리나라의 음주가무 문화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지 않을까?

이 시리즈의 다른 글들에선 여자들이 모르는 남자들이 처하는 상황에 대해 설명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음주가무와 유흥문화는 어떠한 변명의 여지도 없고, 우리나라의 음주가무 문화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