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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한국에서 남자로 사는 것에 대하여

남자들의 직장생활

우리나라 기업들의 문화는 가부장적이고 군대문화가 그대로 확대되어 있다. 혹자는 이걸 '남성 중심적'이라고 하지만 난 개인적으로 그 표현을 좋아하진 않는다. 이는 '남성'들도 대부분은 그런 문화를 좋아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문화가 남성적이라고 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 어떤 남자들도 그런 문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본인이 그런 상황이나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만 그런 문화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은 누구도 그런 문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누가 툭하면 술 마시러 가고, 자신이 아무리 의견을 내도 결국 윗사람 마음대로 하는 문화를 좋아하겠나? 남자들도 그런 문화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갈 뿐이다. 먹고살기 위해서. 우리 사회에선 여전히 남자들이 경제적인 책임을 지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으니까. 남자들도 그런 문화가 싫지만 그 이유 때문에 억지로 버틴다. 그리고 그 중 일부는 그런 문화에 완전히 동화되기도 한다.  

물론, 그걸 주도하는 것도 남자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걸 주도하는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이 본인이 그런 문화밖에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을 그렇게 주도한다. 그들은 사회생활을 그렇게 배웠고, 본인은 그렇게 취급당할 때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그런 방식의 사회생활 밖에 모르고, 가부장적인 가정과 군 복무를 하면서 그런 문화를 완전히 체득했기 때문에 자신이 익숙한 방식으로 조직을 끌고 나간다. 결정적으로, 본인은 마음대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때문에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문화를 끌고 나간다. 그들은 어쩌면 본인이 젊은 시절에 억압당했던 것을 자신의 하급자들에게 푸는 것인지도 모른다. 거기에서라도 어깨에 힘을 주고 대장놀이를 하기 위해서. 

물론, 성추행이나 성폭력 등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면서 마초적인 문화에 익숙한 남자들도 여자 구성원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서 그런 문화가 표면적으로는 약해지고 있다. 그들은 일을 일로 대하고, 사람을 인격적으로 존중하면서 대하는데 익숙하지 않다 보니 여자 구성원들을 대할 때 극도로 보수적이 된다. 아무 개념 없이 지내다 회사 안이나 사회적으로 문제를 만드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여자 구성원들을 잘못 건드리면 우리가 손해나 피해를 볼 수 있다'라고 생각해서 여자 구성원들에게는 그런 문화를 강요하진 못한다. 

그리고 그런 문화로 인해 결정적인 순간에 여자 구성원들이 성과나 대우에서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발생하는 게 현실이다. '남성 중심의  기업문화'는 그런 맥락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회사에서 그런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여자 구성원들의 경우 회식에 참여하기 싫다거나 그건 아닌 것 같다고 하면 그 의사가 표면적으로라도 존중이 되지만 남자들은 그런 말을 입 밖에 내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을 알기 때문에 남자들은 목소리를 내지 않을 뿐이다. 여자를 약자로 인식하거나 '잘못 건드리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아이러니하게도 여자분들을 그런 문화에서 어느 정도는 피해 갈 수 있게 해 준단 것이다. 

남자들의 경우 반복적으로 회식에 참석하지 않거나 선배들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고 일에 있어서도 따박따박 자신의 의견을 밝히면 '짬'으로 눌림을 당한다. 그런 남자들은 '사내 자식이 사회생활을 할 줄 모른다'는 식의 무시를 당하고, 때로는 직접 그런 말을 직접 들으면서 그런 시도를 억압당한다. 물론, 자신의 일을 120% 이상 해 내면서 그 안에서 자신의 입지를 만들어 나갈 수도 있지만 그런 남자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여자들이 차별받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례들을 본 다른 남자들은 조용히, 순순히 윗사람의 말을 듣는다. 

남자들 중 상당수가 싫고 불편해도 순순히 윗사람의 말을 듣는 것은 어쩌면 그들이 가정과 군대에서 그런 문화를 이미 체득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남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가정에서 참을 것을 강요받고, 아무 실체도 없는 '남자다움'을 지킬 것을 요구받으며, 군대에 가서는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윗사람의 명령을 따를 것을 요구받고 그렇게 훈련된다. 남자들이 모두 마초적인, 소위 말하는 '남성 중심적인 문화'에 익숙한 것으로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상당수 기업에서도 남자들은 남자다울 것을 요구받는다. 그리고 여기에서 '남자다움'이란 상명하복을 잘하는 것이다. 여자들의 경우 그걸 잘하지 않을 경우 '역시 여자가 조직에 있으면 피곤하다'는 식의 반응이 나오듯, 남자들 역시 튀는 행동을 하면 '저 자식은 왜 저래?'라며 조직에서 낙인이 찍힌다. 그리고 그런 낙인은 여자들이 여자이기 때문에 받는 차별보다 더 가혹하다. 이는 그런 사람들은 여자들에게는 애초에 기대하는 바가 별로 없기 때문에 여자 구성원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여자니까'로 그 일이 흘려지지만, 그들에게 남자가 그렇게 행동하거나 말하는 것은 절대로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여자들에게는 그런 기대치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마초적인 문화에 지지 않고 응하는 여자들이 있으면, 그런 사람들은 더 인정을 받는 경향도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기업의 여성 임원들은 대부분이 그렇게 힘들고, 어렵게 그 자리까지 오른 사람들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남자들도 그런 문화를 버티고 이겨내야 회사의 별이라는 임원이 된다. 아니, 그런 문화를 버티고 이겨낸 사람들 중에 극소수만 임원이 된다. 나머지 사람들은 대부분이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는데, 그런 문화에 정면으로 맞서는 남자들은 항상 다른 사람들보다 탁월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언제든지 찍혀나갈 각오를 해야 한다. 남자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사람들 역시 대부분은 임원까지 가지 못하고 낙오하고 만다. 심지어 성과가 매우 좋다 해도 말이다. 

우리나라들 중 대부분 회사들의 문화는 그렇게, 위에 무조건 복종하는 사람들을 만들어낸다. 그런 문화는 남녀 모두에게 폭력적이고, 또 그렇게 무조건 복종하기를 요구하는 괴물들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되어야만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대부분 사람들은 조직 밖에서 할 줄 아는 게 없으며, 우리나라에서 경제적인 책임은 여전히 대부분 남자들에게 맡겨져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언 사업 아이템은 절대 나올 수 없다. 그게, 우리나라 대부분 기업들이 갖는 한계다. 우리나라 회사들의 기업문화가 비판받아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고, 그런 문화는 '남성 중심적'이 아니라 '제왕적'이고 '수직적'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  그런 문화는 주니어인 남자들에게도 폭력적이고, 고통스럽다. 더군다나 남자들은 남자라는 이유로 그런 문화를 회피할 수도 없다. 이는 우리 부모님 세대에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