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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한국에서 남자로 사는 것에 대하여

남자의 경제력과 결혼

브런치에서 연애와 결혼을 메인 콘텐츠로 삼았을 때, '경제력은 지금 당장 얼마나 경제력이 있는지도 중요하겠지만 사실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그 사람이 향후에 예상되는 커리어나 가능성이다. 상대의 경제력을 판단할 때는 상대가 미래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과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라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사실 거기까지 가기 전에 우린 먼저 '왜 [남자]의 경제력이 여자의 경제력보다 더 중요시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사실 '결혼하면 왜 남자가 집을 마련해야 하나?'와 관련되어 있다. 

남자가 집을 마련하는 문화는 사실 '신부가 신랑 집으로 들어가 사는 문화'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전 글에서도 설명했지만 그런 문화 속에서는 신랑 측 집안이 신부를 맞이하고 신부 측에서는 딸을 상대 집에 보내는 형태로 결혼이 진행됐다. 그에 따라 딸은 출가외인으로 결혼을 하면 친정에 마음대로 찾아가지도 못했다. 

요즘 시대에 누군가 결혼을 하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면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남자가 경제력으로 월등하고, 집을 마련해서 결혼하는 것은 자본주의식으로 해석하면 '아내를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그리고 실제로 결혼할 때 한쪽이 경제적으로 월등하게 우위에 있으면 상대적 열위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든 의사결정에서 마치 팔려간 사람처럼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집안에 더 기울게 되어 있다.

이는 남자 혹은 남자의 집안이 경제력을 더 우월한 경우가 아니라 그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판사나 검사 사위를 보려는 경제력이 있는 집안에서 법조인을 사위로 들이면 그에게 뭘 바랄까?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들을 보호해 줄 것을 기대할 것이고, 결혼할 때 집은 물론이고 결혼한 후에도 경제적 지원을 받은 법조인은 자신의 처가의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그런 사례들은 우리 사회에 무수하게 많지 않나? 

정말 사랑했는데, 상대를 좋아했는데 상대 또는 상대 집안의 경제력이 정말 대단할 수 있다. 그런 경우에는 얘기가 조금 다른 것이, 두 사람과 집안 관계에서도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상대의 경제력을 보고 상대를 찾은 것이 아니란 것을 양측이 다 알면, 두 사람과 집안에서의 의사결정은 최소한 경제력에 초점이 맞춰진 경우보다는 균형이 잡힐 가능성이 높다. 

경제력을 의식하지 않은 '척'하지 않으면 되지 않냐고? 그건 너무 나이브하고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의 눈치와 지적 수준을 무시하는 생각이 아닐까? 그 정도는 관계를 시작하는 시점에는 물론이고, 그때는 드러나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드러나게 되어있다. 당신이 경제적인 조건이 중요해서 상대를 선택했다면, 그만큼의 경제적인 풍요로움이 충족되길 기대하고 그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그 티를 내게 되어 있다. 

경제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결혼은 현실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력은 가정의 중심에 서 있게 된다. 다만, 집값을 생각하면 맞벌이가 자연스럽고 당연시되는 우리 시대에 '어떤 남자를 만나야 하는지'에서는 여전히 남자들의 경제력이 과도하게 강조되는 것이 이상하단 것이다. 

본인이 어느 정도 이상의 연봉이 되기 때문에 상대도 연봉이 그 정도는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울 수 있다. 이는 두 사람이 살면서 돈을 모으기 위해서는 [두 사람 경제력의 총합]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나는 잘 벌지도 못하고, 돈을 벌 생각도 없고 편하게 살고 싶으니까 돈 잘 벌거나 부자인 남자와 결혼할 거야'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최소한 사랑을 전제로 하는 결혼에서만큼은 상대에 대한 본인의 마음과 본인에 대한 상대의 마음, 그리고 한 가정 또는 공동체를 함께 꾸려나갈 수 있는 [사람]인지 여부가 가장 중요시되는 게 맞지 않을까? 진정한 남녀평등은 남녀가 서로를 동등하게 바라볼 때, 서로를 조건이 아니라 사람으로 바라볼 때 이뤄지는데, 남녀가 평등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결혼할 때 [객관적으로] 어느 정도를 부담하는지보다 [본인의 현재 능력 범위 안에서 비슷한 비율]로 부담하기로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어느 쪽이든 상대의 경제력 또는 외모만으로 상대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은 그 사람을 너무 물건으로 취급하는 느낌 아닌가? 

일할 생각도 없거나 경제적인 관념이 전혀 없는 남자들까지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아무리 좋아도 함께 가정을 꾸렸다면 본인이 경제적인 부분에 어느 정도는 기여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남편과 아빠로서의 자격이 없는 무책임한 인간이고, 그런 삶의 태도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여자가 더 잘 버는데 누군가 아이를 봐야 한다면 남자도 아이를 보고 집안일을 함으로써 가정에 경제적으로 기여할 수도 있고, 그 반대도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어야 한다. [특정 성별]이 특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고정시켜 놓는 것 자체가 폭력이고, 그런 역할은 두 사람의 상황과 경제력, 성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두 사람이 협의하고 합의해서 결정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여성이 성적인 대상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자도 돈 버는 기계나 은행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두 가지 다 잘못되고 비인간적인 것이지 어느 쪽이 더 비인간적이거나 나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