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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한국에서 남자로 사는 것에 대하여

우리나라 가장들의 착각

어떤 글을 쓸 때나 생각을 많이 하지만, 오늘 발행한 [남자도, 가장이고  싶지 않습니다]만큼 힘겹게 쓴 글이 있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최종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조금 더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개인적인 일정상 그 정도로 정리하고 발행해야 했다.

이 시리즈를 쓰는 궁극적인 이유는, 개인적으로 진정한 남녀평등은 [남자]를 집단으로 보는 관점에서 탈피하고 남자들 중에서도 여자들이 말하는 [남자]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고, 책임과 의무를 평등하게 부담할 때 달성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기준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에서 남녀평등에 대한 어젠다는 너무 피해자로서의 여성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그에 따라 논의가 자극적이고 감정적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만든 구조와 해결책, 남자 사회에서 그런 가해자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들여다보고 '한 공동체에서 살아가야 하는 파트너로서의 남성과 여성'을 바라보고 다름과 틀림을 분명하게 구분해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남녀평등이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이 시리즈에서 가급적이면 남자들의 억울함에 대한 내용을 다루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중에서 남자인 나도 가장 용납이 되지 않고 변명할 수 없는 부분은 '가장으로써의 남자'에 대한 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신을 가장으로 여기는 적지 않은 남자들은 마초스럽고, 본인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일정 부분 이상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로 인해 본인이 더 크고 의미 있으며 우월한 일을 한다고 착각한다. 과연 그럴까? 누군가 뒤에서 그를 위해 헌신하지 않아도 그는 그런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 살기 때문일까? 우리나라에선 직접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이들이 가정에서 '갑'의 위치를 차지하는 느낌이 없지 않고, 그렇게 경제활동을 하는 이들은 자신은 엄청나게 힘든 일을 하면서 가족을 위해 '희생'을 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우리나라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이들은 사실 가족보다 자신을 위해 경제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는 '가족을 위한다'라고 하지만 사실은 본인의 사회적 성취, 본인의 금전적 성과로 인해 만족감을 느끼고 그로 인해 우월감을 누린다. 본인이 정말 가족이나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거나 더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소위 말하는 '가장'들은 자신이 경제활동을 하느라 피곤하고 이렇게 노력을 해야 했는데 그런 것까지 해야 하냐고 큰소리를 낸다. 여전히 가부장적인 우리나라 가장들은, 그렇게 희생을 피해 간다.

'가장'은 책임지는 자리지 '권리'를 휘두르는 자리가 아니다. 제대로 된 왕이나 대통령은 자신들의 백성 또는 국민을 먼저 생각하듯이, 제대로 된 가장은 자신의 가족부터 생각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존중은 가족 구성원에게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지, 그건 강요할 성격의 것이 아니다. 또 가장이 본인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 가정에서 그의 일상을 집중적으로 support 해주고 있기 때문이며, 본인이 엄청나게 희생해서 '먹여 살려주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자신의 가족은 사실 본인이 일하다 지칠 때 힘을 내게 해주는 존재들이다. 그들이 없다고 해서 본인이 일을 안 할 것은 아니지 않았나? 그렇다면 자신이 일하는 것이 100% 가족을 위한 희생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가족 구성원은 평등해야 한다. 부모와 자녀 모두. 물론, 부모가 살아온 세월이 있기 때문에 자녀보다 아는 것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성숙한 부모라면, 아이들이 그걸 모른다고 야단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나이 때 어땠는지를 돌아보고, 본인이 그 입장이었으면 어땠을지를 고민하면서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설득할 것이다. 아이들은 성인 또는 부모가 되어본 적이 없지만 부모는 그 아이의 나이였던 시절이 있고, 그렇다면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상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건 부모이고, 그렇기 때문에 한 걸음 물러나서 참고 양보하는 것도 당연히 부모여야 한다.

부모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그래야 하냐고? 그건 본인이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거나 낳게 되는 행위를 했기 때문에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를 가져본 적이 없는 난 그게 뭔지 모르지만, 아이들만이 부모에게 주는 기쁨, 행복과 즐거움이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부모는 그에 대한 답례로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옆에서 인내를 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가족과 관련된 표현 중에 '가장의 권위'란 말을 가장 싫어한다. 권위는 본인이 상대에게서 획득해야 하는 것이지 상대에게 강요할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본인이 가장으로써의 책임을 다한다고 유세를 부리지 말자, 본인이 그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것은 다른 구성원들이 자신의 위치에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가정은 가장이 바뀌어야, 가부장적이 되지 않아야 바로 세워질 수 있고, 가정이 회복되어야 사회에도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는 문화가 바로잡혀갈 수 있다.

가장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른 가족 구성원도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가족 구성원을 서로를 보완하고 지탱해주는 존재이고 각자의 역할이 있고 그 안에서 우열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