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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한국에서 남자로 사는 것에 대하여

남자도 부모는 좋아도 '시댁’은 싫다

대놓고 표현하지는 않더라도, 어머니에 대한 우리나라 남자들의 마음 애틋하다. 이는 지금의 20-30대들까지만 해도 가정에서 아버지는 돈을 벌고, 어머니는 가정주부로 살았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에겐 어렸을 때부터 아침에 나가고 저녁에 들어와서 주말에 뻗어있는 어색한 아버지보다는 나의 모든 것을 챙겨준 어머니와의 유대감이 훨씬 크다. 이는 남자들의 경우 더 그런 듯한데, 그건 아마 아버지들은 '남자답게' 키운다는 미명 하에 아들과의 대화나 소소한 경험을 하지 않는 분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딸들은 귀엽다, 귀엽다 하면서 애지중지 키우지만 아들을 그렇게 키우는 아버지들은 많지 않다. 아들은 남자다워야 한단 이유로.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아이들은 대부분 어머니가 친가 또는 어머니의 시댁에서 함부로 대함을 당하는 모습을 몇 번은 보게 된다. 일부 가정들의 경우 명절에 외가 또는 어머니의 친정엔 아예 가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가정이 남자 중심으로 경향이 매우 강했고, 그런 문화가 여전히 존재하다 보는 상황에서 어머니와의 유대감이 훨씬 큰 남자아이들은 아무래도 어머니 편으로 편향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나 남자 중심적인 사회에서 '아들'은 어머니에게 더 특별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여자를 무슨 애 낳는 기계로 여겼던 분위기 속에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만 해도 [아들]에 엄청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고, 여자는 결혼해서 아들을 낳지 못하면 무시당하기까지 했다. 그렇다 보니 아들이 태어나면, 어머니들은 그 아들에게 애착이 더 갈 수밖에 없었다. 아들이 태어났기 때문에 인정받기도 하고, 아들을 잘 키워야 한단 압박감이 딸을 잘 키워야 한다는 압박감보다 더 컸으니까.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어머니들은 딸보다 아들에게 애착이 훨씬 강한 경향이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시댁'문화는 이 지점에서 문제가 된다.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며느리에게 아들을 낳으라고 압박하는 문화, 어쩌다 아들이 태어나면 아들은 유독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의 것처럼 키우는 어머니들의 애착, 아버지에 대한 친밀감보다 훨씬 강한 어머니에 대한 아들들의 친밀감, 그리고 때로는 그런 어머니를 함부로 대하는 아버지와 친가에 대한 분노. 이것들이 결합되면 우리나라의 '시댁'문화가 형성된다.

어머니는 자신의 것이라고 여겨졌던 아들이, 자신이 온갖 정성을 다 들여서 키운 아들이 자신의 말을 더 이상 듣지 않고 독립했다고 떠나가면 섭섭한 마음이 들고, 최소한 20-30년 정도 본인이 완전히 통제했던 아들이 떠나가면 자신의 큰 부분을 잃었다고 느끼게 된다. 남자 중심의 사회에서 어머니가 소유할 수 있는 건 현실적으로 자녀들 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어머니들 중 적지 않은 분들은 아들이 결혼한 후에도 그 아들의 가정사에 관여하려고 든다.

그리고 남자들의 머리에 본인 어머니는 항상 '불쌍하고 안쓰러운 존재'였다 보니, 본인이 사랑해서 아내와 결혼하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에게 뭔가를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아내와 어머니가 다툼이라도 하면 20-30년 넘게 보고 함께 살면서 안쓰럽게 여겼던 어머니께서 또 상처를 받을까, 그것이 걱정된다. 그러다 보니 남자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은 아내와 어머니 간의 갈등이 있으면 어머니 방향으로 기우는데, 그건 또 본인 가정의 다툼으로 이어진다.

이런 문화가 너무나도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나라의 '시댁 문화'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남존여비라는 구시대적인 발상과 문화 속에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보통 여자라는 것이다. 차별받으며 시집살이를 한 어머니들은 자신이 받은 설움을 기억하지 못하고, 아들을 낳으라고 강요받던 폭력적인 기억을 망각한 것처럼 자신의 며느리에게 똑같이 강요하고, 자신의 아들 중심적으로 사고한다. 그것이 자신이 고통스러웠던 것처럼 자신의 며느리를 고통스럽게 할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하고. 아이러니도 이러한 아이러니가 있을까...

그 안에서 남자는 양쪽 모두에게서 자신 중심으로 생각하고 결정하라고 강요받는다. 어머니는 아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하고, 아내는 가정에서 독립했으면 우리 가정이 우선이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남편이 내 편이 아니면 누가 내 편이냐고 한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지인들의 이러한 얘기를 들으면 듣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고통스럽더라. 남자는 왜 그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아야 한단 말인가? 어머니는 자신이 당한 차별을 기억하고 자신이 받고 싶었던 대우를 며느리에게 해주면 안 되는 것일까? 아내는 시어머니가 당했을 차별을 기억하며 일정 부분은 이해하고 넘어가면 안 되는 것일까? 그 둘 중에 하나만 이뤄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두 사람이 함께 그렇게 해줘야 그 가정이 안정될 수 있다.  

서른이 되기 전에 이미 이런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고, 그때 내가 선택한 것은 결혼하기 전부터 결혼 후에 나는 이렇게 살겠다는 것을 어머니께 말씀드리는 것이었다. 내가 독립하면 우리 집 비밀번호는 절대 모르시는 거고, 내 연봉도 모르시는 거고, 우리 집에 올 때는 미리 연락하고 오시는 거고, 양가에는 똑같이 용돈을 드리던지 용돈 대신 여행을 보내드리거나 선물을 하겠다고. 그걸 여자 친구가 없을 때부터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결혼한 후에 내가 그렇게 살 때 어머니께서 '네가 결혼하더니 변했어'라고 하지 않으시겠더라. 그러면서 어머니께는 아버지와 잘 지내시고 같이 노는 방법을 익히라고, 어머니와 평생 함께 할 사람은 아버지라고 반복적으로 말한 게 조금 지나면 벌써 10년이 되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껜 그게 쉽지 않은 듯하더라. 두 분 사이에서 어머니께서 받은 상처와 변하지 않는 아버지의 삶의 방식 때문에.

이처럼 소위 말하는 '시댁'문화는 사실 누구의 잘못 때문도 아니다. 시어머니도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문화의 피해자고, 며느리는 그런 피해자의 상처에 의한 피해자가 된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그 시어머니도 며느리였던 적이 있었단 것이다. 그렇다면 고부간의 문제는 두 사람의 노력으로 해결해 보면 안 되는 것일까? 결혼하지 않은, 아니 못한 나도 그 사이에 끼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데 현실에 닥치면 그게 더할 것이 아닌가? 그 사이에 낀 남자도, 고통스럽고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