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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한국에서 남자로 사는 것에 대하여

진정한 남녀평등에 대하여

최근에 '남녀평등'이 문제 된 사례를 살펴보자. 그리고 그 사례들이 모두 정말 남녀평등의 문제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1. BBC에서 연봉 15만 파운드가 넘는 인원의 연봉을 공개했는데 국제 담당 편집장 4명 중 남자 편집장 2명은 연봉이 15만-20만 파운드 구간 또는 20만-25만 파운드 구간에 있었지만 다른 여성 편집장의 이름은 명단에 없었다. 여성 편집장들은 연봉이 15만 파운드가 되지 않은 것이다. 이에 항의하며 BBC 중국 에디터인 캐리 그레이시는 사퇴했고, 이 문제는 영국에서 크게 부각되었다. 

2. 할리우드에서 배우들의 출연료가 일부 공개되면서 같은 영화에서 비슷한 비중을 차지한 여자 배우들이 남자 배우들의 10~25%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는 출연료를 받은 것이 드러났다. 러닝 개런티도 보통 남자 배우들이 더 많이 받거나 남자 배우들은 받는데 여자 배우들은 받지 못한 사례들도 밝혀졌다. 

3. 스포츠에서 골프, 축구 등의 종목에서 남자 선수들의 우승상금이 같은 종목의 여성 선수들의 우승상금보다 훨씬 큰 것이 문제가 됐다. 예를 들면 영국 남자 프로축구리그인 EPL의 우승상금은 550억 원이지만 여자축구리그인 WSL은 우승상금 자체가 없다. UEFA 챔피언스리그의 경우 남녀 상금이 61배가 차이 났다. 

이 세 사례는 모두 '남녀평등'에 대한 문제로 부각되었다. 그런데 그 이면을 살펴보면 이 세 사례는 그 성격이 모두 다르다. BBC사례의 경우, 이는 명백한 남녀차별의 사례다. 이 문제를 둘러싼 공방에서 BBC는 남자 앵커의 경력을 말하면서 경력의 차이일 뿐 남녀차별은 아니었다고 주장했지만 아무리 경력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한 회사 안에서 다른 지역을 담당할 뿐, 같은 역할을 하는 여성이 남자의 반도 안 되는 연봉을 받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할리우드 사례의 경우 약간 애매한 경우가 있다. 같은 영화에 출연하고 같은 비중의 역할을 해야 하는 배우들은 최소한 비슷한 수준의 출연료를 받는 게 원칙적으로는 맞다. 그런데 만약 그 영화에서 남자 배우가 다른 배우로 바뀌었을 때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수준, 그에 따라 투자가 달라질 규모가 만약 여자 배우가 다른 배우로 바뀌었을 때의 그것보다 월등하게 크다면, 해당 영화의 여자 배우가 바뀌어도 투자가 이뤄지고 관객이 동원되는 데는 큰 변화가 없는 반면 남자 배우가 빠지면 그 모든 것에 차질이 생기는 경우라면 남자 배우가 훨씬 높은 출연료를 받는 게 정당화될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 이런 프레임에서 바라보면 이는 남녀평등이나 차별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의 문제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비중을 차지한 여자 배우들이 1/4 이하의 출연료를 받은 것은 분명한 남녀차별이다. 그리고 영화의 경우, 남자 배우보다 여자 배우가 관객 동원능력이 훨씬 뛰어난 경우도 굉장히 많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할리우드에서 남녀 배우 출연료가 이렇게까지 차이 나는 것은 남녀평등과 차별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되어야 하고 이는 시정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배우들의 관객 동원 능력 등을 평가하는 지수 등이 개발되고 그 수치들이 출연료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반영되어야 남녀차별적인 요소가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사례는 많이 다르다. 스포츠에서는 여자 선수들이 출전하는 리그와 남자 선수들이 출전하는 리그는 관중 동원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스폰서 규모에서 차이를 가져온다. 그 차이는 어마어마한데, 이는 스포츠의 경우 남자들의 운동신경이 월등하다 보니 남자종목들이 더 거칠고, 경쟁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스폰서 규모에서 차이가 나면, 그 안에 있는 이해관계자들이 나눠먹을 수 있는 상금 등의 파이에서도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실 스포츠 영역에서 남녀 간의 연봉이나 임금의 차이는 남녀 차별적인 성격보다 자본주의 논리적인 성격이 훨씬 강하다. 이는 남자 스포츠 안에서 연봉 차이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면 메시의 경우 2019년 연봉이 약 1300억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메시와 함께 '신계'로 분류되는 호날두가 연봉이 730억 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차이다. 전 세계에서 탑클라스에 속하는 손흥민의 경우에도 연봉이 114억으로 메시 연봉의 1/10도 되지 않는다는 점은 스포츠에서 자본주의가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스포츠계에서 논란이 되는 남녀차별을 완전히 없애는 방법이 무엇일까? 이는 남녀 종목을 구분하지 않고 남녀가 모두 한 리그, 한 팀에서 뛸 수 있게 하는 것일 테다. 여자선수들도 EPL에 출전할 수 있게 하고, 골프도 남녀 리그를 구분하지 않고 같이 경쟁하게 해서 그 안에서 승자가 상금을 가져가게 하면 현재 존재하는 남녀차별에 대한 논란을 완전히 없앨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진정한 남녀평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이는 남자와 여자는 생물학적으로, 신체적으로 차이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테니스의 경우 남녀 성대결이 이뤄진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 세레나와 비너스 윌리엄스는 여자 테니스계를 완전히 평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두 선수는 남자 세계랭킹 203위인 카르스텐 브라슈와 한 세트 시범경기를 벌여서 1-6, 2-6으로 완전히 패하고 말았다. 

이처럼 남녀 간에 존재하는 선천적인 차이를 무시하고 경쟁하는 것은 평등하다고 할 수 없다. 이는 '평등'은 같은 것은 같고, 다른 것은 다르게 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녀 간에는 분명 차이가 존재한다. 그런 차이는 남녀의 호르몬과 생물학적 차이에서 기인하기도 하고, 사회적인 유인에 의해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남녀 간의 차이는 존재한단 것이다. 

생물학적으로는 그렇다고 치자. 사회적으로는 어떨까?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남녀는 평등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 역시 남녀의 성별과 관련된 사회적인 변화를 면밀하게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 남녀는 법적으로 평등한가? 아니다. 남자는 법적으로 군 복무의 의무를 지는 반면 여자는 지지 않는다. 의무와 권리는 서로 주고받는 관계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무가 다르면 권리도 달라야 하는 것이 진정한 평등이다. 물론, 얼마나 달라야 하는지에 대해선 이론이 있을 수 있지만 의무가 다르다면 권리가 달라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자주 문제가 되는 임원과 고위 관료의 성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는 가부장적인 문화로 인해 80-90년대에 일하는 여성들은 많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결혼하면 직장을 그만두는 것을 남자뿐 아니라 여자들도 당연시에는 자연스럽게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게 맞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게 현실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로부터 20년 이상 지난 지금, 고위 관리직에 임용 또는 채용되는 사람들은 보통 30년 전후 동안 사회생활을 한 사람들이다. 30년 전 우리 사회의 특징을 고려했을 때 그에 적합한 후보군에는 남자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서 무조건 남녀를 1대 1 비율로 맞춰야 한다는 건 경력과 능력이 없어도 특정 성별이라는 이유로 임용 또는 채용해야 한단 의미인데, 그게 과연 평등한 것일까?

이는 취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채용시장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거나 공학을 전공한 경우 취업에 성공할 확률이 더 높고, 이는 대기업일수록 그런 경향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우리나라 주요 대학의 경영학과나 공대에서 남녀 성비는 남자가 최소 2배 전후에서 심한 경우 4배 이상에 이른다. 이는 대기업이 채용할 후보군 자체에 남자가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확률적으로 봤을 때 대기업에 채용되는 남자들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 남녀차별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이전 글들에서도 말했지만 우리나라의 성차별, 성폭력, 성추행, 성희롱은 매우 심각하다. 다만, 남녀평등을 둘러싼 현시점의 논의 방식으로는 '객관적인 남녀차별'의 수준을 분명하게 알 수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남녀차별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스포츠계의 경우 남녀 스포츠에 스폰서 규모가 얼마나 다른 지부터 봐야 하고, 영화와 드라마의 경우 관객 동원력을 평가해서 반영해야 하며, 고위 임원이나 관료의 경우 남녀 대학 진학 비율과 취업비율 등을 살펴보고 각 단계별로 진급할 때 남녀 진급과 탈락 비율을 살펴보고 탈락되는 사유까지 면밀하게 조사해야 한다. 사유까지 조사하는 건 무리라고 치면, 최소한 수치적으로는 조사와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 

그런 조사들이 이뤄질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기관은 많지만 누구도 그에 대해 조사를 하지는 않는다. 어느 기관도 그런 조사를 맡기지 않는다. 사실 남녀차별의 문제는 이 지점이 가장 큰 문제인데, 그런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그런 조사를 하기로 결정해야 하는 기관의 기관장들은 대부분이 남자이고, 그런 남자들은 남녀차별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성들의 입장에선 감정적으로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수치만 놓고 보면 성별을 이유로 본인이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여성들의 분노는 모두 정당할까? 아니다. 남녀차별에 대해 여성분들이 강력하게 주장하는 부분들을 놓고 보면 그 과정에서 남자들이 실질적으로 더 필요한 영역에 대한 논의와 남녀의 의무의 불평등에 대한 부분은 교묘하게 빠져있다. 그렇다고 젠더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남자들의 반응이 옳다는 것도 아니다. 그런 남자들의 경우 우리나라에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남녀차별에 눈을 감고, 성추행과 성폭행 문제에 있어서도 피해자의 입장이 아니라 오히려 가해자의 편에 서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 보니 여성의 입장에선 이에 분노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패턴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남녀평등'에 대한 논의는 악순환만을 반복한다. 

진정한 남녀평등은 남자와 여자의 다름을 존중하고, 특정한 상황에 그 다름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 게 정당한 지를 여러 요소들을 최대한 이성적,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하기를 시도할 때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지금은 그런 시도가 어느 집단에서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여자분들 중에서는 성차별을 핑계 삼아 여성 우위적인 주장을 펼치는 분들이 목소리를 내고, 남자들 중에서는 여성이란 이유로 차별받고 폭력의 대상이 되는 현실에 눈을 감안 사람들이 목소리를 낸다. 그런 목소리는 갈등만 고조시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