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64) 썸네일형 리스트형 우리가 벽에 부딪혀야 하는 이유 구약에서 보이는 하나님의 모습에 대해서 '난 저런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라면서 무신론자나 불가지론자가 된 신학자들이 적지 않다. 신학자들만 그럴까? 대부분 사람들이 구약에서 보이는 하나님의 모습을 의아해 할 것이다. 겨우 한 번의 실수로 인해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 것도, 한 번의 실수들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신 것도 그렇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전제해야 한단 글은 이전에 쓴 적이 있다. 요약을 하자면, 우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노예로 여러 세대를 살아서 하나님에 대한 기억도 없고, 성경도 없으며, 오롯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 했고, 구약이 배경이 된 시대에는 힘있는 자들이,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자들이 인정을 .. 요가, 명상과 기독교 요가가 유행하기 시작할 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요가를 하면 안된다는 말에 '뭔 소리야'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운동으로, 몸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하는 요가가 나쁠게 뭐가 있다고... 그러면서도 왠지 모르게 나도 상쾌한 느낌은 아니었던 것을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소위 말하는 모태신앙의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런 생각을 안한지 오래됐다. 이제 요가는 수많은 운동 중 한 가지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으니까. 그런데 우연히 클럽하우스에서 홍정욱씨가 자신의 에세이를 중심으로 얘기하는 방에 들어갔고, 거기에서 명상에 대한 방을 열겠다고 예고하시는 것을 듣고 그 방에 들어가 이런저런 얘기들을 들었다. 사실 최근 몇 달간 마음도 복잡하고, 두려웠다 괜찮았다가 반복되어왔다. 몸은 거의 고정적으로 안 .. 성경무오설에 대하여 개인적으로는 교회에서 이뤄지는 많은 논의들이 그렇듯, 성경무오설도 흑백논리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성경무오설에 반대되는 입장에서 제기되기도 하는 "성경이 그냥 인간들이 쓴 책들이다"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성경은 당연히 현실에서는 인간이 쓴 것이기 때문에 그 주장이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기록들을 사람들이 쓰도록 하시고, 그게 심지어 수 천년 후에도 우리가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이어져 내려올 수 있도록 해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하고 상황을 끌어오셨다고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봤을 때 성경은 인간이 쓴 것임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개입하셔서 말씀하고 전해주신 글이다. 이걸 굳이 어느 한 쪽에 서서 우길 필요는 없다. 성경의 모든 내용은 오차.. 악한 자의 성공에 대하여 악한 자들이 성공하는 것에 분노하는 사람들은 성경에도 많이 나오고, 나 또한 그렇게 분노하면서 하나님께 따지며 살아왔다. 그런데 악한자의 [성공]이라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잘못된 관점이다. 첫 번째는 우리가 [악한 자의 성공]이라고 할 때의 '성공'의 기준은 세상적인 성공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는 잘못된 관점이다.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은 삶의 기준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기독교인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성공에 대한 기준이 달라야 한다. 기독교인으로서의 성공은 물질적 풍요로움, 권력과 명예가 아니다. 성경은 그러한 것을 쫓는 삶을 우상을 쫓는 것이라고 명확히 말하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 [성공]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사실은 비기독교적인 것이다. 세상.. 일과 소명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 중 한 가지는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란 고민을 대부분 한단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왠지 대기업에 가고 돈을 많이 벌면 안될 것 같단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가야한단 강박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민망한 얘기지만 난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고지론적 입장에는 비판적이긴 했지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사는게, 그렇게 추구하는게 맞을 것 같진 않았다.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을 때도 난 현장보단 본부에 있고 싶었고, 현장에서 살 자신이 없었다. 법대나 의대는 애초에 생각하지 않은게 마음이 힘든 사람이나 몸이 아픈 사람을 만나면서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 '선택받은 자'란 거대한 착각 교회 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은 선택받은 자라는 것에 몰입하고, 매몰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유대인들처럼. 그런데 그건 성경이 전제하고 있는 몇 가지만 생각해봐도 말도 안되는 착각임을 알 수 있다. 일단 유대인들이 자신들이 선택받은 자라는 점을 살펴보자. 그들에겐 질문 하나만 해도 자신들이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깨진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는가?" 이걸 부인할 유대인이 있을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면, 아담과 하와가 인류의 시작이라면, 모든 인류의 뿌리는 하나다. 그런 개념에서 생각해보면 사실 [민족]이라는 개념은 사람이 만든 개념이지 태초부터 존재하는 개념 자체가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선택받은 자가 될 수 있나? 하나님 눈에는 그저 하나님의 창조물인 인간들일 뿐인.. 복음이 왜곡된 현실에 대하여 화도 났고,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도 생각했고, 분노하기도 했다. 그런데 말씀을 읽는 중에 문득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이 무리들 중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들이 얼마나 됐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거의 없었다. 예수님의 12제자도 심지어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을지를 놓고 싸우지 않았나? 12제자가 그런 수준이었는데 예수님께서 일으키시는 기적을 보고 따라다니던 사람들 중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인 사람들이 몇이나 됐겠나? 인류역사상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살아낸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십자군도 성경을 오해했고, 구교도 복음을 왜곡해서 타락해 갈 때 개신교의 분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사실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따르는 사람.. 기도부탁을 잘 하지 않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기도 부탁을 잘 하지 않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오히려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일들을 잘 얘기하지 않게 되었다. 기도부탁을 하거나, 개인적인 일에 대한 얘기를 하면 오는 피드백에 오히려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의 목표는 무엇인가를 이루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내 뜻과 의와 세상이 말하는 좋은 것, 세상이 말하는 목표를 이루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내가 노력하더라도 그 결과가 내가 원하는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고,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그 자리에서 다시 하나님께 물으면서 내 길을 찾아가야 하는 삶이어야 한다. 그런데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근황을 말하거나 기도부탁을 하면, 합격하게 해주세요, 잘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부탁을 하지 않았.. 이전 1 ··· 4 5 6 7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