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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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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 물질, 성공, 명예 등-다른 종교와의 차이에 대하여> 음. 내가 이런 류의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지난 얼마 간, 정확히 얼마 동안인지는 모르겠다. 이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정확히는 이런 생각이 나의 생각과 고백이 된 건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생각은 나의 30대 전체를 통해서 나의 생각이 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얼마 동안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를 정의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것이 나의 인생관이고, 이 생각이 향후에 바뀔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 이 시점에는 이게 내 생각이란 것이다. 내가 이렇게 구구절절 판을 깔아 놓는 것은, 내가 이 글에서 쓸 내용들을 고백하는 사람들을 난 가식적이라고 생각했고, 인간은 그렇게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나는 대부분 사람들이 형식적으로 가식적으로 그런 ..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의 재미와 어려움 최근 얼마 동안, 기독교인으로 사는게 은혜롭고, 행복하고 이런게 아니라 말 그대로 재미있었다. 사람들은 상황이 좋아지거나 기분이 평안해 지거나 하면 그게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의 즐거움, 행복, 은혜라고만 생각하는데, 2-3년 정도 전부터 하나님을 믿는, 정확히 말하면 성령님과 동행하는 [재미]를 조금씩, 가끔씩 느껴왔고, 작년 정도부터는 그 재미의 빈도와 깊이가 깊어졌다. 그 [재미]는 내가 절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하는 생각, 다른 사람이 입 밖으로 말하는 간증을 듣고 '말도 안돼' 또는 '나는 절대 저러지 못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의 생각이 되는데서 느껴졌다. 내 인생에서 절대로 포기하지 못할 것 같았던 돈, 명예, 결혼에 대한 집착이 완화되다 못해 '그냥 하나님께 맡겨버려'까지 되는, 지금 ..
정치에 대한 기독교인의 관심 학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런저런 것들에 대해 항상 본인들 의견을 말씀하시는 부모님의 자식으로 태어나 그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까? 난 항상 많은 것에 관심이 많았고 거의 모든 것에 의견을 갖고 있었다. 당시에는 항상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조금 더 어렸을 때는 주위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고, 박사과정을 거치면서야 비로소 주체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사실 난 책을 많이 읽지도 않고 많이 아는 것도 없는데... 그렇게 다양한 이슈에 관심이 많고 생각이 많다 보니 아는 것이 많다는 오해(?)도 종종 받았다. 자세히 들어보면 사실 알맹이는 없고 다 썰이고 의견인데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 많은 것들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생각해보지 않은 영..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에 대하여 한 대형교회 담임목사였던 사람이 성추행으로 인해 물러나고 나서, 교단에서도 그를 잘라내지 못한 후, 그가 다시 교회를 시작할 때 그는 "판단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지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라면서 스스로를 변호했다. 일단 그 말 자체가 얼마나 본인이 한 행위에 대한 반성이 없는지를 보여주는지는 뒤로 하자. 그 말을 듣고 얼마나 분노하고, 말씀을 자신 멋대로 왜곡한 것인지도 일단 그냥 그렇다고 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은 맞는 말이란 생각이 아침에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데 들었다. 사실 우리 모두가 죄인이고, 누군가가 어떤 행위를 하게 될 때까지는 그 성장과정에서 했던 경험이 그를 붙들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한 행위의 상당 부분은 그만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 환경, 가정의 영향이었을..
노력할 영역과 하나님께 맡길 영역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직면하는 가장 구분하기 힘든 난제가 아닐까 싶다. 한국교회에서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 본인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사람들과 기도가 우선이라고 하는 사람들로 구분된다. 그래도 교회에 다니고 있으니 두 가지 중 하나만 해야된다는 말은 양심적으로 하지 못하겠으니 양극단 중간 어디선가에서 노력과 기도 사이의 비중을 조절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문화가 아닐까 싶다. 나 역시 그와 같은 입장에 서 있었으나 최근에 생각이 바뀌었다. 노력을 해야 할 영역과 하나님께 맡길 영역은 다르다. 구분되어 있다. 우리가 노력을 해야 할 영역은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다. 내게 주어진 가정, 내게 주어진 일, 내게 주어진 사람들에게 ..
우리가 구할 것, 구해도 소용 없는 것 내게 가장 큰 딜레마 중 하나는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라고 되어 있는 마태복음 7장의 말씀이었다. 아니 이렇게 다 구하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걸 다 주실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 땅의 물질도, 재화도, 시간도 제한되어 있는데! 그런데 무엇이든지 다 구하라고 하시다니! 이게 사기꾼이 아니면 뭔가! 실제로 교회 다니는 많은 사람들은 이 말씀을 붙들고 산다. 심지어 소위 말하는 '배우자 기도'에 대해서도 목록을 만들어 놓고 기도했더니 그대로 들어주셨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을 붙들고 열심히 기도하면, 서낭당에 정화수를 떠놓고 빌면 신령님이 그 정성에 감복하여 소원을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샤머니즘이지, 기독교적 ..
<하나님과 결혼과 이혼과 약속> 변호사시험에서 계속 낙방할때 내가 힘들었던 여러 이유 중에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내 노력을 탓하거나 손가락질 하기도 했지만,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나는 알기에 하나님 앞에서 내가 가진 능력치 안에서 최선을 다했음을 알기에 하나님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전지전능하시다는 작자가, 전지전능하시단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원하시면 그 자리에서 생각나게 하실 수 있단 것을 의미하는데, 도대체 왜 내게 그 길을 허락하지 않으시는게 화가 났다. 전지전능하심을 믿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두 번째 시험에 떨어진 이후에는 변호사로 일할 생각은 하나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고민을 하다 결국 시험을 다시 보기로 한데는 '나를 로스쿨에 붙이신 분..
물질에 대한 한국교회의 잘못된 관점 한국교회는 물질에 대해 완전히 모순되는 두 가지 관점을 가지고 있고, 그걸 동시에 강요한다. 첫 번째는 물질적인 것을 추구해서는 안된단 청빈론적 입장이고 두 번째는 물질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란 것이다. 이게 좋게 해석하면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주실 수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한국교회는 이상하게 두 가지를 부정적으로 활용한다. 물질을 추구하는 삶은 청빈론적이지 않단 이유로 함부로 판단하고, 물질적으로 빈곤해지면 그건 또 하나님께서 벌하시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아니 설사 물질이 축복의 증거라고 하더라도 물질을 주지 않으시는게 그 사람이 잘못되었단 것은 아니지 않나? 개인적으로는 물질[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적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