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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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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과 계획에 대하여 교회에서 가장 많이 듣는 논쟁 아닌 논쟁은 하나님도 노력해야 일하실 수 있단 입장과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입장의 논쟁이 아닐까 싶다. 우리 아버지는 철저히 전자의 입장에 서 계신 분이다. 원래부터 그러셨던 것은 아닌데, 사실 얘기를 들어보면 우리 집에서 아버지께서 어린 시절에 은사도 있으셨고 영적으로 예민하셨는데 그게 두려워서 제발 가져가시라고 기도를 했더니 그런 은사들이 사라지셨다고 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 이후에 철저히 인간이 노력해야 이뤄진다고 생각하시는 편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잘못된, 이분법적인 사고에 기반한 논쟁이라고 생각한다. 두 가지 모두가 작용해야 할 것이다. 다만, 우리는 우리가 어떤 영역에서 무엇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와 어떤 영역에 대해서는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맡겨야 하..
기도응답에 대하여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구했고 하나님께서 그걸 주셨다며 감사하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고 한국교회에서는 그런 사례들을 갖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게 맞는 것일까? 그 기도응답, 정말 하나님께서 해주신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닐수도 있다. 우린 그걸 분명하게 분별하지 못한다. 물론, 최소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 대상이 된 현상이 일어나거나 물건을 갖게 방치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걸 적극적으로, 우리가 기도했기 때문에 주셨는지는 아무도 분명히 알지 못한다. 그렇게 믿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는 있다. 거기까지는 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걸 입 밖에 내고 간증하듯이, 또는 간증하는 과정에서 그런 얘기를 ..
인문학과 경전 없는 신학, 종교학의 위험성 우리나라 교회들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성경 본문을 떠나서 '썰' 중심으로 모든 게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우리나라 뿐 아니라 대부분 나라에서는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고찰과 경험론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종교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은 느낌이다. 성경을 매우 단순화 해서 정의하면 구약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기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인도하셨는지에 대한 내용이고, 신약은 예수님과 그 이후에 복음이 전파된 경로, 그리고 그 이후 복음 전파에 대한 내용이다. 교회에서는 보통 이 프레임으로 설명을 한다. 그런데 구약과 신약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구약은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이 세상을 만든 절대자가 ..
기독교인이 되어가고 있다 내 자신을 '기독교인'으로 부르기가 어느 순간서부턴가 부담스러워졌다. 내 모습이 예수님과 너무 다르고,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으며 내가 세상 사람들과 다를바 없다는, 어떤 면으로는 더 세속적이란 것을 알게 된 후부터 내 자신을 쉽게 '기독교인'이라 부르지 못한다. 그 이름의 무게가 언젠가부터 굉장히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제 있었던 일로 인해 조금씩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 갑작스럽게 찾아온 프로젝트 기회에 이름이 올라갔었는데, 4대보험이 보장되고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병행하면서 할 수 있어서 프로젝트가 심사를 통과할 경우 내 연수입이 적지 않은 수준이 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총 6개년 프로젝트여서 내가 여러가지를 준비하는데 있어서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는 좋은 기회..
고난과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 사람들이 말하는 고난에 대한 내 정의와 비판은 이렇다. 우리가 생각하는 고난 중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우리를 밀어넣고 힘든 상황을 감당하게 하시는 경우는 매우, 극히 드물다. 우리가 말하는 고난 중 상당수는 그저 우리가 원하는 일이, 우리의 욕망과 욕구가 충족되지 않음으로 인한 불만, 분노와 힘듬이지 그게 하나님께서 그런 상황을 만드신 것은 아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난 속으로 밀어넣으실 때도 있다. 뭘해도 안될 때가, 우리가 정말 최선을 다해도 하나님께서 다 막고 자리를 지키게 하실 때가 있다. 그런데... 그런 광야의 시간은 아무에게나 허락되는 건 아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그렇게 몰아넣지는 않으신다. 그것을 감당할 힘이, 준비가 된 사람들, 정말 하나님을 바라보고 오롯이 하나님만 따..
성경 자체를 읽지 않는 것의 위험 소위 말하는 모태신앙이다. 머리로는 물리적으로 주일예배를 드리지 않는다고 해서 뭐가 엄청 잘못되거나 하나님께서 분노하신다는게 아니라는 것을,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매일, 매일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해 몸부림치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단 것을 알면서도 주일성수를 하지 못하면 뭔가 불안해지는 관성이 있는, 모태신앙이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성경 자체를, 본문을 그렇게 많이 읽지는 못했다. 초등학교 시절 교회에서 성경 통독하면 상준단 말에 제대로 읽지도 않고 페이지 슥슥 넘기면서 '읽었다!'고 하면서 1년에 삼독했다고 여겼던 경험과 읽긴 했지만 머리는 다른 곳에 있었던 학부시절 성경 일독은 사실 말씀을 읽었다고 하기 어렵기 때문에 제대로 읽은 건 지금 우리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고도 1-..
중독되지 않는 축복 어렸을 때부터 조금 희안한 아이였다. 당시에 그렇게 느끼거나 주위에서 대놓고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는데, 지금 돌아보면 나는 분명 조금은 다른, 이상한 아이였다.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정도 되는 아이들은 보통 특정 장난감이나 게임에 푹 빠진다. 초등학생만 그런가? 중고등학생들도 마찬가지... 어디 미성년자만 그런가, 남자 어른들 중 상당수가 그렇지. 심지어 아내랑 게임을 할지 여부를 놓고 싸우고 난리법석을 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니 남자와 게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관계일지도 모르겠다. 장난감을 모으는 성인 남자들도 적지 않으니 장난감도 마찬가지. 성인이 되고 나면 우리나라 남자들이 공통적으로 손을 잘 대는 두 가지가 있다. 담배와 술. 담배는 안 피우던 사람도 군대에서 담배를 배우고, 술은 우리나라에..
투박하지만 은혜가 되는 우리 교회는 좀. 독특하다. 목사님께서 매년 예배 드리는 법을 실험하셨다. 하긴, 사역이 아예 없고 성경통독반만 있으며 청년부도 없는 구조도 한국에선 찾아보기 힘든 구조니, 뭐 예배 드리는 법이 독특한 건 독특한 축에도 끼지 못하겠구나. ㅎ 실험은 3년 전부터 시작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4년 전이었나. 매달 마지막 주는 전체 예배, 한국 교회에서 보통 '대예배'라고 부르는, 예배의 크고 작음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 표현을 쓰지 않는 난 '주일 낮 예배'라고 부르는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 다른 교회의 구역, 셀, 소그룹 모임과 같은 단위가 우리 교회는 '통독반'으로 있는데, 이 통독반들은 그룹으로 묶여 있었고, 마지막 주는 그 그룹이 자체적으로 예배를 드렸다. 2년 전에는 조금 더 과격한(?) 실험을 하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