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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 혹은 개독/일반적인 신앙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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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하나님 코로나가 하나님이 벌을 주신거니 뭐니 이런 말. 내가 알 수 없는 것을 아는 척하지 않는 말을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말은 하지 않겠다. 다만, 세상에서, 나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왜?'란 질문을 할 때 나는 [하나님께서 왜 이 일이 일어나는 것을 허락(방치)하셨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고 하나님께 묻고, 원망하고, 욕하며 따진다. 사실 올해 8-9월까지만 해도 코로나에 대한 큰 불만은 없었다. 한 발자국도 앞으로 가지 않는 내 인생을 놓고 봤을 때, 오히려 온세상이 멈춰있는 듯한게 내겐 심지어 위로가 될 때도 있었으니까. 수입도, 늘어나지는 않았지만 줄어들지도 않았고. 하지만 10월, 11월이 지나 수입이 줄고 사람을 만나지 않는게 장기화되면서 '아, 내가 힘들구나'란 생각..
기독교 관련 몇 가지 논쟁에 대하여 내 생각, 마음을 정리하는데, 기독교인으로 남는데 영향을 미친 몇 가지 핵심적인 논리를 그냥 문득, 침대에서 뒹굴다 나누고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바보 같은 논쟁인데 사람들은 심각하게 하고 있는 것 같아서... 1. 예수님은 성인인가 메시아인가? 예수님은 둘 중 하나다. 메시아이든지 정신병자든지. 왜 그렇게 극단적이냐고? 이는 예수님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3대 성인 중에 한 명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 말을 제외한 예수님의 가르침들을 보면서 3대 성인이라고 한다. 그런데 예수님의 삶은 이 주장이 관통한다. 그걸 빼고 예수님을 논하는 것은 팥 없는 팥빵 같은거다. 예수님은 주장하는대로 정말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이던지, 그렇다고 주장하는 미친놈이다. 그런데 미친놈..
교회 공동체에 대한 생각 조심스러운 글이다. 내가 다녔던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이 페친으로 있어서. 하지만 이 부분은 내게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언젠간 나누고 싶었다. 우선 대전제를 말하자면, 난 교회는 가능하면 옮기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정말 부득이한 상황으로, 아니면 지금 다니는 교회에 다님으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지는게 아닌 이상, 교회는 세상적인 이유나 개인적인 취향을 이유로 옮기는 건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이런 말이 모순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건, 내가 전역하고 2번 교회를 옮겼기 때문이다. 난 제대하고 온누리교회 대학부에 다녔고, 그 후에 높은뜻 푸른교회를 다니다 지금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변명을 하자면, 내가 교회를 옮길 때는 상황이 나를 그렇게 이끌었다. 옮기기 몇 달 전부터 뭔가 내가 다니..
'내려놓음'에 대하여 어머니와 금전적인 부분 얘기를 하다 서로 언성이 높아졌다. 금전적인 부분은 내 손에 있는 것 같지 않고, 난 내려놓고 내가 할 일들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는데 어머니께선 그게 '돈 생각하지 않고 그냥 살 수 있어'라는 나이브한 생각으로 들리셨나보다.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갔고 그러다 언성이 높아졌다. 내가 내려놨다는 것은 내 힘으로 그걸 다 넘어섰고 그것과 상관 없이 산다는 의미가 아니다. 난, 돈 좋아한다. 필요하다. 솔직히 회사원으로 살 자신이 없는 여러 이유 중 하나도 돈 때문이다. 회사란 곳은 있는 동안 수입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주지만 CEO나 일정 수준 이상의 임원이 되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의 수입은 보장해주지 않지 않나? 지금 조금 힘들어도 내가 꾸준히 한 길을 파면 내가 가진 자..
광야를 떠나며 작년에는 박사학위를 받고 무단히도 학위를 갖고 통상적으로 가는 길을 가려 노력했다. 그 길들은 다 막혔고, 연초에 많이 힘들었고, 파트타임으로 도와주던 마케팅 회사에 정규직으로 들어갔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정규직으로 다시 들어간 그 회사에서 나의 또다른 성향을 발견했고, 당황했는데 내가 예상하지 않은 프리랜서 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제작이 나가리 될 것 같았던 하이에나는 역대급 캐스팅으로 제작과 편성이 이뤄졌다. 그 이후 일어난 일들을 하나로 엮어서 구체적으로, 공개적으로 기록에 남기기는 조금 조심스럽지만 '하나님이 내 인생을 왜 이렇게 끌고 가시지?' 싶은 일들이 내게 주어졌고, 작년 연말 그 일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광야의 시간이 축복인 이유 광야. 사람들은 본인이 힘들면, 힘든 상황에 있으면 그걸 그냥 광야의 시간이라 말한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광야에서의 시간은 단순히 힘든 것과 다르다. 이는 '힘들다'는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적이고, 그에 따라 사실 힘든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힘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광야]는 객관적인 시간 혹은 상황이다. 내가 생각하는 광야의 시간은 내가 뭘 해도 인생이 앞으로 나가지 않는 시간이다. 정말 최선을 다해도 인생이 앞으로 가지 않고, 뭘해도 안되며, 주위에서는 네가 뭔가를 잘못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 척만 하고 안하는게 아니냐고 말하는 시간. 너무 억울해도, 내 몸이 부서지고 마음이 무너질 정도로 노력해도 내 인생에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고 모든 길이 막히는 시간. 그게, 광..
한국교회와 결혼 한국교회 청년부의 현실 내가 예전에 다녔던 교회에서는 목사님께서 청년부 예배에서 대놓고 그런 말씀을 하셨었다. 이 안에서 만나서 가정을 꾸리면 좋겠다고... 물론 같은 교회에서 만나서 가정을 꾸리면 그만큼 안정적이고 좋은 것도 없는 것은 사실이다. 마치... 동향 사람들끼리 결혼을 하거나 캠퍼스 커플로 연애를 하고 결혼하면 좋은 것처럼... 서로 공유할게 많고 공감할 수 있는 것도 많을 뿐 아니라 같이 아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그런데 유독 특히 한국 교회에서는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끼리 결혼하는 것을 그 이상의 어떤 창조의 목적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성은 한국교회의 청년부를 짝을 찾기 위한 사냥터로 만들어가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교회들의 청년부는 짝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사..
한국교회와 고지론 고지론이란? 고지론이라는 말 자체가 사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익숙할지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이 표현을 교회 안에서만 들었기 때문에. 고지론이라 함은 쉽게 설명하면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이 필요하고 좋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높은 자리에 올라가거나 돈을 많이 벌고 영향력을 많이 미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주로 사용이 되는 듯하다. 사실 이러한 고지론은 한국교회에 만연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많은 것이 사실인데... 이는 아마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한국교회에 대해서 많이 갖고 있는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니까 대통령이 되어야 하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니까 국회의원이 되어야 하고, 교회 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