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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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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기도, 그리고 불만 많은 기혼자들께 힘든 시간을 보낼 때면 하나님께 항상 원망했다. 누군가 의지할 사람이 있다면 숨이라도 쉴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아무도 붙여주지 않냐고. 왜 이 시간을 나 혼자 견디게 하냐고. 그 과정에서, 과정을 지나고 나서 알게 된 여러가지 신앙적인 측면은 이 글에서 일단 생략하고 제목에 내용을 맞추자면, 민망하지만, 이젠 좀 함께 할 사람을 만나고 싶단 기도를 많이, 자주 했다. 그런 감정들과 당시 나의 상태로 인해 발생하는 감정에 휩싸여 잘못된 선택, 결정, 말도 많이 했다. 예전에 다른 글에서 '이젠 내려놨다'고 했지만, 그 글에서도 썼듯이 내려놨단 것이 '결혼하지 않겠다'는 의미는 아니고, 난 지금도 아마 거의 매일 배우자에 대한 기도를 하는 듯하다. 그럴수록 내가 세상 한 가운데에서 혼자 신앙을 지키며 하나..
결혼을 안함과 못함에 대하여 내가 사는 패턴을 보며 지인들은 난 결혼을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 것이라고 자주 말한다. 항상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연애나 결혼 자체가 실제로는 내 우선순위에서 그리 높게 있지 않은 듯하다면서 말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우선은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그래도 '못'한 게 아니라 '안'한 것이라고 봐주는 것은 최소한 가정을 꾸리지 못할 만큼 이상하거나 매력이 없다는 말은 아니니까. 그나마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서라도 그렇게 보이면 다행히 아닐까. 하지만 브런치에서 글을 쓸 때도, 주위 사람들에게도 난 결혼을 안 한 것이 아니라 '못'한 것임을 분명히 한다. 난 만으로 서른이 되기 전에는 결혼을 하는 것의 의미와 그 변화가 가져올 나비효과에 대해서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서른에는 가정..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 인간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다. 어떤 이들은 인간이 본래 악하기 때문에, 이기적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주장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인간이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은 상당한 시간을 혼자 보내고, 항상 본인과 함께 있기 때문이다. 파리나 뉴욕에 직접 가보지 않은 사람은 그 도시의 진정한 매력을 알 수 없듯이 인간은 본인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경험들로 축적된 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인간은 누구도 자신의 힘과 의지로 그러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을 머리로 '이해'는 할 수 있어도, 그러한 경험들에 '공감'하는 것은 인간이 홀로 있을 때 이뤄질 수 없는 현상이다. 다만 그것을 넘어설 수 있게 ..
연애의 풍경_감정 '사랑'인가요? '사랑'하면 어떤 감정이나 마음이 떠오를까? 설레임? 흥분? 심장박동? 기혼자들에게서 들려오는 결혼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설레임이 없어진다는 얘기들, 그리고 계속 심장이 뛰어면 심장마비에 걸려 죽는다는 우스갯소리에 비춰봤을 때 대부분 사람들은 '사랑'을 위와 같은 감정상태들로 여기는 듯하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런 감정이 수반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감정적인 상태 자체가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는 우리가 연인이 아닌 다른 것 혹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데서 알 수 있다. TV에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왔을 때, 아니 조금 더 적나라하게는 그 연예인을 실물로 봤을 때 우리는 모두 설레이고, 흥분되기도 하며,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하지 않던가?..
어쩌면 연애와 결혼의 이유 오늘 아침. 내가 사용하는 공유 사무실로 길을 나서며 내가 지금까지 써 온 사랑, 연애와 결혼에 대한 글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내년 3월이면 무려 3년 동안 이 주제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건데, 나도 글을 이렇게 오래 쓰고 있을지는 몰랐다. 이 주제에 대해서. 내가 박사학위 논문 주제를 잡고 학위를 받을 때까지 약 2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렸으니 그렇게 따지고 보면 난 내 박사학위 논문을 쓴 기간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이 주제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구독을 오래 해오신 분들이나 나중에 하셨어도 내 이전 글들을 많이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사이에 몇 번이나 이 주제에 대한 글을 그만 쓰려고 노력을 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조금 다른 각도에서 다른 주제들로 또 쓸 이야기들이..
소개팅 주선의 고달픔에 대하여 예전에는 소개팅을 쉽게 주선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어차피 두 사람의 일은 본인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리고 소개팅 주선자의 임무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싫지 않은 수준의 사람들을 소개해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에. 또 한창 소개팅 주선하는 재미를 느낄 때는 두 사람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양쪽에 상대의 반응을 전해주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그랬던 생각이 조금은 바뀌기 시작한 것은 내가 소개팅을 주선한 사람들이 연애를 하다가 헤어지는 시점을 겪거나 소개팅 주선했던 사람이 내가 아는 것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소개팅 자리에서 보였다는 경험을 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연애할 때는 주선자를 잘 찾지도 않더니 헤어질 때 즈음에는 어쩜 그렇게들 주선자를 찾는지... 그나마 한쪽이 일방적..
'사랑'임을 알게 될 때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감정은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사랑'이란 말을 하는 것도, 듣는 것도 부담스러워하는 반면 또 다른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 쉽게 '사랑'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는 누군가와 만날 때 연애할 때 상대를 '사랑'하는 것인지 '좋아'하는 것인지 '호감'을 갖고 알아가는 것인지를 분명하게 칼로 무 자르듯이 구분할 수가 없다. 이는 상대를 이성으로 인식하고 우리 안에서 호르몬 작용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우리 내면의 많은 것들이 뒤죽박죽이 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감정이 생겨나고, 설레임이 폭발하는 단계에서는 우리의 그런 마음이 상대를 소유하고자 하는 소유욕인지, 생물학적으로 욕구가 만들어내는 상태인지, 아니면 상대를 사랑하기 때문인지..
소유하지 못해도 '사랑'일 수 있다 몇 번의 연애와 그중에 몇 번의 사랑을 했다. 호감과 좋아하는 마음 그리고 사랑이 무 자르듯 잘라서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 기준으로는 그렇다. 세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러지는 않을 예정이지만 그렇게 '연애와 사랑'을 한 횟수보다 소위 말하는 '짝사랑'을 한 횟수가 적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어떤 이들은 '고백을 했다가 거절당한 횟수와 비교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할지 모르지만, 상대를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말 한마디 꺼내보지 못한 사람도 있으니 그 횟수만으로 정확한 비교가 되지는 않을 듯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서부턴가 '짝사랑'이란 표현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짝사랑'은 왜 따로 구분해야 하는 걸까? 다른 언어에서는 별도의 표현이 있는 경우가 거의 없는 그 표현이 왜 한국어에는 있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