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프리랜서

(29)
Epilogue 8주 동안 매주 하나씩 써온 [프리 하지 않은 프리랜서 이야기]의 연재를 마쳤습니다. 사실 매주 월, 수, 금에 다른 주제로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똑같이 월, 수, 금에 Seoul Talker라는 유튜브 채널에 영상을 만들어 올리는 것은 구속하는 것이 없는 프리랜서인 제 삶을 구속하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그렇게 제 삶을 관통하는 큰 요소인 프리랜서에 대한 시리즈를 마치니 뭔가 매주 꾸준히 한 주제로 글을 썼다는 것이 뿌듯함과 동시에 아쉽기도 합니다. 이 시리즈를 시작하게 된 가장 큰 동기는 [짜증]이었던 것 같습니다. 툭하면 듣는 [야 그래도 프리랜서는 자유롭잖아]가 너무나도 듣기 싫었고, 대나무 숲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는 마음으로 브런치 안에서 이 시리즈를 써 나갔습니다. 그렇게 계획한..
30대 프리랜서의 결혼과 연애 A: 선배님! B: 오랜만이다! A: 그때 부탁드렸던 소개팅 시켜주세요! B: [임시 직장+프리랜서+박사=지방대 졸업]인 거 알지?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우선은 그 답변에 있는 '지방대'에 대한 선입견이 불편했고, 그럴듯한 직장이 없거나 경제적으로 완전히 자리 잡지 않은 상태인 것을 기준으로 '너 몇 점 짜리인지 알지?'라고 낙인을 찍는 듯한 내용이 그렇게 편하게 다가오지만은 않았다. 나보다 거의 20살이 많으신, 자녀가 다 대학에 다니는 나이가 있으신 선배님이 하신 말씀이고, 원래 돌직구를 던지시는 스타일이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그 파도의 여파는 며칠이 지난 지금도 남아있다. 물론, 그분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이나 감정은 없다. 그분은 원래 좀 돌직구이고 좋게 표현하자면 엄청난 극 현실주의자이..
글이 안 써진다 고민이 많아서 글이 써지지 않는 것은 처음이다. 난 보통 고민이 있으면 그걸 글로 쓰면서 해결책을 찾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민이 많아서, 글이 써지지 않는다. 뻔뻔스럽게 '프리랜서의 일상생활'이란 매거진으로 만들었지만, 난 자발적으로 프리랜서가 된 것은 아니었다. 로스쿨을 졸업했지만 변호사시험을 통과하지 못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이 재미있어서 박사과정을 마쳤는데, 그 이후에 내게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도교수님께서 기관장을 하고 계시기에 거기 업무를 일부 하면서 받는 돈이 조금 있지만 그 돈만으로 생계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불안했고, 파트로 일했던 회사에도 들어갔다 나와 맞지 않아서 나왔으며, 그렇게 등 떠밀리듯 프리랜서가 되었다. 그렇다 보니 내 프리랜서 생활은 다른 '그..
슬럼프가 왔다 지난 금요일. 회의 직전에 난 혼자 신이 난 상태였다. 회사로 돌아갔다 나온 이후 처음으로 주말에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회의 중간에 논문 개재 탈락 이메일을 받았고, 그 때문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때부터 슬럼프를 겪게 되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럴 땐 모든 걸 다 놔버려야 해. 마침 마감이 급한 것도 없잖아'라고 마음먹었다. 마감을 맞춰야 하는 일들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멍을 때리면서 보냈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서. 그 과정에서 깨달았다. 내게 약간의 시간과 공백이 허락되자마자 내가 슬럼프에 빠진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시발점은 논문 개재 탈락이라는 사실도, 그제야 깨달았다. 로스쿨을 다니다 ..
돈이 안되는 일을 하는 이유 여기에서 '돈이 안 되는 일'은 '돈을 받지 않고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일하는 것에 비해서 훨씬 돈을 적게 받는 일을 의미한다. 프리랜서들의 기준에서 그런 의미의 '돈이 안 되는 '은 내가 같은 시간과 에너지를 썼을 때 보통 받을 금액보다 단가가 더 낮은 프로젝트나 건수를 의미하는데, 그건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장당 10만 원이 '돈이 안 되는 일'일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장당 5만 원을 받는 일도 '큰돈'일 수 있다. 지금 내가 하는 일들 중에는 내 단가를 기준으로 '돈이 안 되는 일'이 있다. 그 일은 다른 일들보다 받는 금액은 50% 수준인데, 내가 갖고 있는 전문성도 더 많이 투여되고 최근에는 쓰게 되는 시간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사실 의리와 기회의 차원에서..
마지막 연주가 아니길 기도해야지 아버지께서는 고등학교 시절에 하셨던 밴드반 OB연주를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하고 계신다. 할아버지는 트롬본을 부셨고, 아버지는 클라리넷, 나는 트럼펫을 하지만 사실 아버지의 그 OB연주에 단 한 번도 같이 서 본 적이 없는 게 항상 마음이 편치 않다. 내가 악기를 워낙 오랫동안 놓고 있기도 하고, 사실 거기 계신 분들은 내 상황들을 대충은 알고 계시다 보니 내 상황이 나아지기 전에, 그분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부끄러워하시지 않을 수 있는 시점에 같이 연주를 서고 싶었는데 그 시기가 아직도 오지 못했다. 그런 아버지께서 내년에는 반드시 시골로 내려가시겠다며 요즘에는 귀농 교육을 받고 계신다. 난 아버지께서 시골에 가서 훨씬 행복하게 살 수 있으실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대기업에 다니시다 정년퇴직하고 나서 ..
난 글을 그냥 쓰는 줄 알았다. 글을 잘 쓰는 편은 아니지만, 글 쓰는 게 어려웠던 적은 없었던 편이었다. 브런치에서 글을 많이 쓸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술은 해야 할 때만 하고, 담배는 아예 피우지 않으며, 이상하게도 어렸을 때부터 게임은 하지 않아 왔기에 난 내가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게 스트레스 해소 방법인 동시에 취미 비슷한 것이라고 항상 생각해 왔다. 글쓰기가 특기는 아니어도 취미는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어쩌면 그 생각도 오만이었다는 생각이 지지난주에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프리랜서로 돌아와서 들더라. 글 쓰는 게 어려웠다. 겨우 3개월 정도 글을 꾸준히 쓰지 못했을 뿐인데 내 머리도 손도 녹슬어 있더라. 그리고 프리랜서로 하는 일들이 엄청 밀려 있으니 브런치에서 쓰고 싶은 글들은 잡히지가 않더라. 그러면서 처음..
프리랜서에게 사람이란? 연락이 조금 늦어지던, 기다렸던 연락을 줬던 일감에 대한 연락이 왔다. 그 회사를 방문해서 계약조건에 대한 논의를 했고, 원래 금전적인 보상이 1순위가 아니었기에 아무런 무리 없이 얘기가 수월하게 오갔다. 그리고 내가 할 업무에 대한 브리핑을 듣는데 폴더에 내 이름이 이미 있었다. 나: 뭐야? 나 이미 업무 할당되어 있던 거야? A: 그럼요. 뭐라고 생각했어요? 나: 난 계약이 안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A: 무슨 소리예요. 00 없으면 안 되는 상황인데. 그렇다. A는 이미 내게 일을 주기로 했지만, 조건이 어떻게 맞춰질 수 있을지를 몰라 확답을 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고마웠다. 나를 이렇게까지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프리랜서에게 이렇게까지 본인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큼 고마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