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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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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안 써진다 고민이 많아서 글이 써지지 않는 것은 처음이다. 난 보통 고민이 있으면 그걸 글로 쓰면서 해결책을 찾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민이 많아서, 글이 써지지 않는다. 뻔뻔스럽게 '프리랜서의 일상생활'이란 매거진으로 만들었지만, 난 자발적으로 프리랜서가 된 것은 아니었다. 로스쿨을 졸업했지만 변호사시험을 통과하지 못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이 재미있어서 박사과정을 마쳤는데, 그 이후에 내게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도교수님께서 기관장을 하고 계시기에 거기 업무를 일부 하면서 받는 돈이 조금 있지만 그 돈만으로 생계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불안했고, 파트로 일했던 회사에도 들어갔다 나와 맞지 않아서 나왔으며, 그렇게 등 떠밀리듯 프리랜서가 되었다. 그렇다 보니 내 프리랜서 생활은 다른 '그..
슬럼프가 왔다 지난 금요일. 회의 직전에 난 혼자 신이 난 상태였다. 회사로 돌아갔다 나온 이후 처음으로 주말에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회의 중간에 논문 개재 탈락 이메일을 받았고, 그 때문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때부터 슬럼프를 겪게 되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럴 땐 모든 걸 다 놔버려야 해. 마침 마감이 급한 것도 없잖아'라고 마음먹었다. 마감을 맞춰야 하는 일들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멍을 때리면서 보냈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서. 그 과정에서 깨달았다. 내게 약간의 시간과 공백이 허락되자마자 내가 슬럼프에 빠진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시발점은 논문 개재 탈락이라는 사실도, 그제야 깨달았다. 로스쿨을 다니다 ..
마지막 연주가 아니길 기도해야지 아버지께서는 고등학교 시절에 하셨던 밴드반 OB연주를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하고 계신다. 할아버지는 트롬본을 부셨고, 아버지는 클라리넷, 나는 트럼펫을 하지만 사실 아버지의 그 OB연주에 단 한 번도 같이 서 본 적이 없는 게 항상 마음이 편치 않다. 내가 악기를 워낙 오랫동안 놓고 있기도 하고, 사실 거기 계신 분들은 내 상황들을 대충은 알고 계시다 보니 내 상황이 나아지기 전에, 그분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부끄러워하시지 않을 수 있는 시점에 같이 연주를 서고 싶었는데 그 시기가 아직도 오지 못했다. 그런 아버지께서 내년에는 반드시 시골로 내려가시겠다며 요즘에는 귀농 교육을 받고 계신다. 난 아버지께서 시골에 가서 훨씬 행복하게 살 수 있으실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대기업에 다니시다 정년퇴직하고 나서 ..
난 글을 그냥 쓰는 줄 알았다. 글을 잘 쓰는 편은 아니지만, 글 쓰는 게 어려웠던 적은 없었던 편이었다. 브런치에서 글을 많이 쓸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술은 해야 할 때만 하고, 담배는 아예 피우지 않으며, 이상하게도 어렸을 때부터 게임은 하지 않아 왔기에 난 내가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게 스트레스 해소 방법인 동시에 취미 비슷한 것이라고 항상 생각해 왔다. 글쓰기가 특기는 아니어도 취미는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어쩌면 그 생각도 오만이었다는 생각이 지지난주에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프리랜서로 돌아와서 들더라. 글 쓰는 게 어려웠다. 겨우 3개월 정도 글을 꾸준히 쓰지 못했을 뿐인데 내 머리도 손도 녹슬어 있더라. 그리고 프리랜서로 하는 일들이 엄청 밀려 있으니 브런치에서 쓰고 싶은 글들은 잡히지가 않더라. 그러면서 처음..
프리랜서에게 사람이란? 연락이 조금 늦어지던, 기다렸던 연락을 줬던 일감에 대한 연락이 왔다. 그 회사를 방문해서 계약조건에 대한 논의를 했고, 원래 금전적인 보상이 1순위가 아니었기에 아무런 무리 없이 얘기가 수월하게 오갔다. 그리고 내가 할 업무에 대한 브리핑을 듣는데 폴더에 내 이름이 이미 있었다. 나: 뭐야? 나 이미 업무 할당되어 있던 거야? A: 그럼요. 뭐라고 생각했어요? 나: 난 계약이 안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A: 무슨 소리예요. 00 없으면 안 되는 상황인데. 그렇다. A는 이미 내게 일을 주기로 했지만, 조건이 어떻게 맞춰질 수 있을지를 몰라 확답을 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고마웠다. 나를 이렇게까지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프리랜서에게 이렇게까지 본인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큼 고마운 ..
다시 프리랜서가 되다 원래 고민을 짧고 굵게 하는 편이다. 고려할 수 있는 모든 변수들을 감안했을 때, 내가 어떤 결정을 했을 경우 그 후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계산해 보고, 더 이상 고려할 변수가 없다고 판단되거나 나머지 부분은 알 수 없다고 판단되면 그 시점에 결정을 한다. 내 인생의 모든 결정에 있어서 그 패턴은 변한 적이 없다. 심지어는 감정의 영역이 큰 연애의 시작과 끝에서도. 고민의 시작은 2-3주 전이었던 것 같다. 내 개인 영역에서 해야 하는 일은커녕 브런치에서도 제대로 글을 쓰지 못할 정도로 일이 많아지면서 '내가 평생 업으로 삼을 일이 아닌 걸 계속 이렇게 해야 하나?'란 회의가 들더라. 그래서 어떻게든 회사 안에서 내 색을 입히고, 내가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면서 회사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는 일을 해..
퇴사와 프리랜서로의 복귀 형식적으로는 두 번째 퇴사지만 실제로는 첫 번째 퇴사다. 작년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이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은 4대 보험도 적용받지 않았고 사업소득으로 비용을 정산받았으니까. 7월 마지막 주에 복귀했을 때는 4대 보험도 적용받았고, 근로소득을 받았다. 그러니 실제로는 이번이 첫 번째 퇴사다. 혹자는 겨우 3달도 안 되는 기간을 다니려고 들어갔냐고 할지도 모른다. 맞는 말이다. 사실 나라고 알았겠나? 나도 예상하지 못했고, 그래서 망설이기도 했다. 2달을 고민한 결정을 2달 만에 뒤엎을 것이라고는 나도 상상하지 못했기에. 그리고 그런 결정을 내리고 나면 나 자신을 신뢰하지 못할 수도 있을 듯해서, 망설였다. 하지만 그 시기에 다른 제안이 들어왔고, 그 일은 회사 일과 병행할 수가 없었으며, 그 일이 훨씬..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랜서 어쩌다 보니 프리랜서의 일상생활 시리즈 몇 개가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뉘앙스를 띄었다. 그건 아마 내가 힘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주말을 계속 반납하고, 회사에 다시 나가면서도 업무시간에 합법적으로(?) 내 프리랜서 일로 자리를 비워도 되는 독특한 회사생활을 병행하다 보니 합법적이긴 해도 눈치가 보이는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완전한' 자유를 포기하고 생활의 일부를 구속된 삶을 산 지가 한 달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회사원 같은 생활과 프리랜서의 생활을 병행하는 과정에서 나는 다시 한번 느낀다. 난 프리랜서가 더 체질이라는 사실을. 어떤 이들은 내가 회사원 같은 생활이 삶의 패턴에 들어오면서 그렇게 느꼈을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그렇지 않다. 이는 지금의 내 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