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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한국에서 남자로 사는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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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의 음주가무와 유흥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카페가 신촌에 있다. '미네르바'라는 70년대부터 그 위치에 있었고 알코올램프 같은 기계에서 커피를 추출하는 '사이폰 커피'가 시그니처인, 빈티지한 느낌이 나는 가게다. 신촌 근처에 있는 대학을 나왔다 보니 우연히 한 번 가게 된 곳이 지금도 가끔씩 찾는 애정 하는 카페가 되었다. 그 카페에서 많은 추억들이 있었지만, 그중에 가장 강렬한 추억은 남자 넷이 카페에 들어갔다 15분도 안되어 나온 기억이 아닐까 싶다. 카페의 특성상 연인이나 소개팅 한 남녀가 많은 분위기였는데, 그 날따라 유독 우리 테이블 외 모든 테이블에 남녀가 앉아 있었고 유리가 유일하게 시커먼 남자 넷이 앉은 테이블이었다. 우리 넷 모두 뭔가 우리가 있으면 안 되는 느낌적인 느낌을 받았고, 우리는 커피를 거의 ..
남자들의 직장생활 우리나라 기업들의 문화는 가부장적이고 군대문화가 그대로 확대되어 있다. 혹자는 이걸 '남성 중심적'이라고 하지만 난 개인적으로 그 표현을 좋아하진 않는다. 이는 '남성'들도 대부분은 그런 문화를 좋아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문화가 남성적이라고 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 어떤 남자들도 그런 문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본인이 그런 상황이나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만 그런 문화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은 누구도 그런 문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누가 툭하면 술 마시러 가고, 자신이 아무리 의견을 내도 결국 윗사람 마음대로 하는 문화를 좋아하겠나? 남자들도 그런 문화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갈 뿐이다. 먹고살기 위해서. 우리 사회에선 여전히 남자들이 경제적인 책임을 지는..
취업시장과 남자 취업시장에서 여자들이 남자들이 더 불리한 것은 사실이다. 아니, 일단 그렇게 보이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2020년 4월에 나온 조사 결과에 의하면 대기업 44개 회사 중 93%가 남자들이 50% 이상이 됐고 90%를 넘는 기업도 36.2%에 달했다. 여자가 50%를 넘는 대기업은 3개밖에 없었단 것을 감안하면 취업시장에서 남자들이 선호되고 여성들은 역차별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취업시장에서 여자들이 불리하단 것을 부인하진 않겠다. 우리나라에선 (1) 그래도 군대 다녀온 사람이 말을 잘 듣고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생각과 (2) 여성들은 결혼하면 금방 그만둘 것이라는 생각이 비슷한 수준의 사람이면 남자를 선발하게 만드는 면이 분명 있다. 그리고 여전히 남자가 기업의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는 실력이 ..
남자, 성희롱을 당하다 - 직장 편 내 첫 팀장님,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팀장님은 독특하셨다. 아주, 매우, 많이. 홍보실의 특성상 기자들과 만나야 할 일이 많았던 사회생활을 해오신 탓에 우리 힘은 언론홍보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팀장님은 기자들과 술자리를 종종 가지셨고, 그러고 나면 꼭 회사 책상 밑에서 주무셨다. 한 달에 한두 번쯤은 출근했을 때 알코올 향수를 뿌린 듯한 향에 어제와 같은 옷을 입으신 팀장님을 마주했다. 팀장님은 그럴 때면 내게 '야 씨뱅아' 아니면 '야 머리 큰 놈아'라면서 내가 책상에 갖고 있는 잎 녹차를 달라고 하셨는데, 그게 싫지 않았다. 그리고 툭하면 실장님과 고무줄을 갖고 손가락 총을 만들어서 쫓겨 다니시는데, 그때의 분위기는 드라마에서 연출을 그렇게 해도 과장이 심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일들..
남자, 성희롱을 당하다 - 대학 편 난 성추행이나 성폭행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추행이나 성폭행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판결문들을 보면 판결을 내리는 분들이 성추행당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여실하게 느껴지는데, 그건 그들이 그런 경험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하지만 남자들은 그걸 성추행이나 성희롱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기를 들지를 않는다. 이는 남자들은 '정력'이 강한 게 자랑이고 남자다운 것이라고 여기는데 남자들에게 이뤄지는 성희롱이나 성추행은 대부분 정력을 둘러싸고 이뤄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방송에서도 남자들의 물건이 크거나 작다는 식의 얘기를 은유적으로, 돌려서 대놓고 할 정도니 남자들이 그게 ..
남자들의 사춘기 나의 사춘기는 강렬했다. 아니, 그랬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너처럼 유별난 애가 또 있는 줄 아냐는 말을 부모에게서 수년간 듣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본인 사춘기가 정말 유별나다고 여기게 되고, 본인은 유별난 애라는 생각에 죄책감이 마음속 어딘가에 깊게 좌표를 찍고 자리 잡게 된다. 내가 그랬다. 사실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난 정말 유별난 아이였고, 삼십 대 후반인 지금도 그런지도 모른다. 부모에게 대드는 기준으로 한다면, 난 사실 여전히 사춘기를 겪고 있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이 사춘기로 정의 짓는 시기에도, 지금도, 난 내 마음이 이끌고 내가 믿는 신에게 묻고 평안이 느껴지는 대로 결정하면서 내 삶을 끌어나가고 있다. 그 방향이 부모가 생각하는 내 인생의 방향과 맞지 않아서, 사회적인 기준..
남자와 군대 나도 남자지만 여성분들 중에 '남혐'에 동참하는 분들의 마음은 십분 이해된다. 남자들 중에 마초적인 사람들도 있고,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남자들이 있으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면서 가부장적으로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는 젊은 남자들이 있는 것은 현실이다. 남자들이 그렇게 되어가는 과정에 대해서는 이 시리즈 이전 글들과 앞으로 쓸 글들에서 설명할 예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남자들이 동질적이라고 전제하고 남성 전체에 대해 혐오감을 갖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들이 남자들에 대해서 반감을 갖는 것은 그나마 설명할 수는 있다. 그런데 사실 '여혐'은 설명하기가 어렵다. 단순히 '남혐'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하기엔 그 대가도 너무 크지 않은가? 그렇다면 '여혐'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은..
남자들의 전공 선택권 나는 회사원의 아들로 태어났고, 학부를 졸업할 때까지 회사원의 아들이었다. 아버지께서는 대기업에서 정년퇴직을 하셨고, 사내 정치에 떠밀려 임원이 되지 못하셨다. 어떤 이들은 그게 사내 정치 때문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묻겠지만, 아버지 이름은 계열사 사장까지 임원 승진에 동의했지만 이례적으로 더 높은 곳에서 최종 승인을 하지 않아서 임원이 되지 못하셨다. 그것도 세 번이나. 아주, 매우 이례적인 일이고 나도 회사생활을 해봤고 지인들 중 상당수가 대기업에 다니지만 그런 경우는 들어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곧은 분이셨고 그 과정에서 회사 안에 있는 힘 있는 분과 갈등이 있었고 그건 아버지에게 독으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께서는 그 회사에서 처음으로 정년퇴직을 했고 계약직으로라도 더 있어줄 수 없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