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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말씀 묵상-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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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41편-145편 말씀 묵상 141편에서 시편 기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통제하시기를 기도한다. 나의 의지, 나의 마음이 없어지기를 기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에 한 기도를 떠올리게 한다. 본인은 두렵지만,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 잔을 치워주셨으면 좋겠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해달라고 했던 그 기도 말이다.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맡기고, 우리 욕심과 의지에서 자유롭길 기도하며 살고 있을까.
시편 136편-140편 말씀 묵상 'I know'란 확신에 찬 부분이 계속 눈에 들어온다. 하나님은 나를 아신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자비로운 분임을 안다는 것에 대환 확신. I think 가 아닌 I know란 부분이 계속 눈에 들어온다. 시편 기자는 그만큼 확신에 차 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강하다. 그의 믿음은, 그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음은 그 know라는 확신에서 온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아니, 흔들릴 때마다 자신을 다잡을 수 있다. 우린 어떤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얼마나 하나님께서 나를 잘 아시고, 지혜로우시며 자비로운 분이라고 전제하고 하나님과 소통하는가? 하나님께서 그런 분이시라는 것을 알면 하나님을 원망하다가도 그 이유에 대해 고민하고, 기도하며 묻지 않을까? I kn..
시편 131편-135편 말씀 묵상 하나님을 사랑하고 높이는 것. 우리는 그것을 혼자, 내 힘으로,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로써 함께 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단순히 내가 어떻게 하는게 아니라 함께 손을 잡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다른 형제, 자매에게 손가락질과 지적질을 하면서 할 성격의 것이 아니라 함께 격려하며 이뤄나가야 하는 것이다. 우린 그것을 항상 기억하고, 그러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 그게, 기독교인다운 삶의 모습이다.
시편 114편-130편 말씀 묵상 우리는 고통과 고난의 순간에 하나님께 원인을 묻기보다 원망하기를 빨리 한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119편에서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한다. 그에게는 하나님이 진정한 1순위였던 것이다. 그에게는 자신의 안위보다 하나님을 더 알고 그의 율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했다. 우리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속에서 과연 그런 자세로 살고 있을까? 우린 하나님을 더 아는 것이 항상 우선순위에서 위에 있을까? 하나님이 항상 우선일까? 무엇을 하더라도 내가 하나님을 더 알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이 최우선인 사람은 현재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본인 개인의 감정과 생각을 이겨내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기 위해 노력할 것..
시편 99편- 113편 말씀 묵상 시편의 모든 내용은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시다는 확고한 믿음을 전제로 쓰여져 있다. 그러한 점은 시편에 쓰여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보인 모습, 그리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에서 드러난다. 시편기자들은 그런 하나님을 믿었기에 하나님께 울부짖고 원망했다. 혹자는 하나님께 울부짖는 시편들을 읽으며 그들의 믿음을 폄하할지 모르나,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솔직했고, 하나님께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믿었기에 그렇게 울부짖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우리를 구원해주실 분으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것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은 믿지 않는다. 아니, 믿는다고 하지만 사실 믿지 않는 것을 전제로 살아가야 한다. 이는 우리가 모든 것을 우리 ..
시편 83편-98편 말씀 묵상 우리는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 받아들여야 하는 명제가 한 가지 있다. 그건 난 하나님에 비해서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는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완전히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대충 '우리보단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아시죠' 수준이 아니다. 우린, 하나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우린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마음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더 낫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아니, 하나님 안에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나은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있고 그게 세상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더 인정받을 뿐, 실제로 더 가치 있거나 의미가 있는 것..
시편 70편-82편 말씀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구한다. 사실 그것만을 구하고 힘든 것은 피해가게 해달라고 한다. 우리에게 이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께 등을 돌리는 자들에게는 벌을 달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우리는 그 표현을 너무나도 쉽게 [적에 대해서, 자신을 뒤 쫓는 사람에 대해서 말하는 거겠지]라고 전제하는데, 그런 오늘 묵상한 부분에는 그러한 내용이 없는 부분들도 많다. 그리고 이는 하나님을 떠나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부분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시편 기자는 과거에 하나님을 떠난 자신들의 선조를 떠올리면서 하나님께 등을 돌리면 그들을 벌해 달라고 한다. 이는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떠나면 저..
시편 55편-69편 말씀 묵상 시편을 쭉 읽으면서 다시 한번 다윗의 기도와 그의 마음에 놀란다. 그는 하나님 앞에 놀랍도록 솔직했다. 그는 착한 척을 하지 않았고, 자신의 반대편에 서서, 자신의 적인 자들에 대해서 저주라면 저주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벌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움직이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았다. 그게, 그의 믿음이었다. 우린 때때로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척을 한다. 자신은 이렇게 거룩한 사람이라고 어필하고 싶어한다. 사람들 앞에서 뭐뭐하는 척 하듯이, 하나님 앞에서도 거룩한 척을 하는 것이다. 그래봤자 아무 소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선 모든 것을 다 아심에도 불구하고 우린 여전히 그렇게 산다. 하나님 앞에선 솔직해야 한다. 우리 안에 있는 지저분한 것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