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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말씀 묵상-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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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1장-15장 말씀 묵상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위로보다는 지적질과 가르치려 드는 말을 더 많이 들었다. 내가 뭔가를 잘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이렇게 하라고 저렇게 하라고. 변호사시험에만 집중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내 욕심과 욕망이 영향을 준 것이기도 했지만, 사실 우리 집이 내가 시험에만 집중할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하지 못한 영향도 없지 않았다.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고 계신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는 없었다. 그나마 내가 그 분들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게 다행이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상황을 온전히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을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전제하고 대화를 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걸 전제하기보다는 네가 뭔가 잘못한게 있을거야라고 판단하며 시작하기를 좋아한다. 그게 과연 그 사람을 위한 것일까..
욥기 6-10장 말씀 묵상 한국교회에서 예배 중에 하는 공기도는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다르다. 000하시나이다 와 같은 식으로 우리나라 개혁성경이 처음 만들어질 때 쓰였던 번역투로 기도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고 그런 기도는 물론이고 우리의 일상적인 기도에서도 우린 뭔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포장하려고 할 때가 있다. 내가 고통스러우면 안되는데 고통스러워서 회개한다던지, 자신은 사실 진심으로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그렇게 할 때가 있다. 우린 이상적인 기독교인은 이런저런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을 맞춰놓고 우리가 인위적으로, 우리의 노력으로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그런 노력이 아예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노력은,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인식은, 그렇지 못했을 때 회개하는 것..
욥기 1장 -5장 말씀 묵상 욥기에서 앞의 부분이 내겐 항상 의문이다. 사탄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를 생명만 건드리지 말고 시험하는 것을 허락하시는 하나님. 정말 하나님은 그러하셨을까? 정말 하나님은 사탄이 그렇게 움직이는 것을 허용하셨을까?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의 부분이 내겐 항상 의문이다. 사탄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를 생명만 건드리지 말고 시험하는 것을 허락하시는 하나님. 정말 하나님은 그러하셨을까? 정말 하나님은 사탄이 그렇게 움직이는 것을 허용하셨을까? 나는 이 부분은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해서 삽입한 부분으로, 당시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처한 고난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일어나게 '허락'하신다는 것은 분명 그 부분과 맥락적으로 세밀한 차이는 있을지..
에스더 6장 -10장 말씀 묵상 우리나라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자신이 교회 다니는 사람임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기독교인이 취해야 하는 삶의 자세라고까지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때로는 내가 기독교임을 내 입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하는데 더 기여할 때도 있다. 이는 에스더에게서도 드러난다. 그가 만약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렸다면 그가 왕후가 될 수 있었을까? 왕에게 가기 전에 사전에 필터링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지는 않음으로 인해 왕후가 될 수 있었고, 그 이후 자신의 민족이 말살되지 않는데 사용될 수 있었다. 기독교인임을 적극적으로 숨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이기..
에스더 1장-5장 말씀 묵상 죽으면 죽으리라. 이 말씀을 더 어렸을 때 참 많이 묵상했었다. 그 말씀의 무게를 모르고. 어떠한 것을 각오하고서라도, 하나님께 기도해 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면 하겠다는 다짐. 왜인지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그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 여겼지만 현실을 그렇게 살아내지는 못했다. 순간순간 참 많은 것을 고민하고 계산했던 것 같다. 그러던 나를 하나님께서는 그런 방향으로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셨고, 나는 그렇게 그 선택을 해서 지금 이 길을 가고 있다. 이 길은 생각보다 고통스럽고 힘들다. 그 길 자체가 고통스럽고 힘든 것은 아니다. 사실 나 하나만 놓고 본다면 난 충분히 행복하고 잘 살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그런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힘들다. 내 상황을 두고 판단하..
느헤미야 11-13장 말씀 묵상 느헤미야는 율법을 엄격하게 적용한다. 자유를 중시하는 내게 그 부분은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왜 그랬을까? 느헤미야는 왜 모세 시대의 율법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심지어 이방인과 혼인했던 자들에게도 보수적으로 대했을까? 그런 부분들에 대한 답과 고민이 필요한 것은 우리 시대 사람들은 그런 내용들을 바탕으로 율법을 엄격하게 지킬 것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래야 하는 걸까? 느헤미야가 당시에 율법을 엄격하게 적용했던 것은 삶에서 사람들을 통제하고, 사람들이 삶에서 율법을 기억할 지점을 만들지 않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조상들이 그랬듯이 다시 하나님을 떠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사람들 중 율법 또는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됐을까? 읽을 줄 안다한들, 문서를 접할 수 ..
느헤미야 9-10장 말씀 묵상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 민족의, 조상의 과오를 모두 회개한다. 어떻게 보면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그들은 다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전부 회개한다. 온전해지고 깨끗해져야 한다. 그리고 지금 회개하는 백성들이 그걸 다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 회개를 하면서 자신들이 속해 있던 잘못된 문화에 대해서 회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과거로부터, 역사로부터 배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록을 남김으로써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모든 것을 막지는 못한다. 그건 장치일 뿐이다. 결국은 우리가 삶에서, 순간순간마다 잘 살아내야 ..
느헤미야 7-8장 말씀 묵상 그렇게 하나님을 떠나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갑자기 한 번에 율법을 읽으면서 울음을 터뜨린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니 그보다 조금 더 당혹스러운 부분이었다. 그렇게 하나님을 떠나 있던, 율법과 상관 없이 살던 이들이 갑자기 하나님 앞에 엎드러져서 회개하고 울음을 터뜨린단 말인가? 그런데 생각해 보면 한국에도 그런 일은 있었다. 평양대부흥운동. 그때 놀라운 회개의 물결이 일어났고, 그때 부흥의 물결이 일어났다. 1907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왜 하나님은 평상시에는 그렇게 일하지 않으실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시기를 생각해보자. 포로시대를 뒤로 하고 성전을 건축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과 일제치하를 경험하고 있던 우리 조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