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말씀묵상/말씀 묵상-2020년

(317)
시편 46-54편 묵상 다윗은 시편에서 하나님께 내 [마음]을 정결케 해달라고 울부짖는다. 그리고 시편에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쓸 사람을 찾는데 쓸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신다. 뒷부분부터 보자.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쓸 사람을 찾는데 그런 사람이 없다는 부분. 과연 그 시대에 겉으로 선함을 행하는 사람이 없었을까? 아무리 타락한 시대라도 선함을 베푸는 사람들은 있다. 도덕적, 윤리적으로 선한 사람들은 분명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계속 찾으신단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건 아마 다윗에 말했던 것처럼 [마음]을 다듬는 사람이 없다는 것일 것이다. 사람들은 선함을 행하지만 그건 자동적으로 자신의 양심에 의한 것이거나 그로 인해 본인이 뭔가를 돌려받기 위한 경우일 때가 많다. 대가 없는 선행. 남이 알아봐주지 않는..
시편 6-45편 묵상 일주일 조금 넘게 몸이 계속 안 좋아서 아침에 책상 앞에 앉지 못하고, 해야 할 일들은 쌓여서 가까스로 그 일들을 쳐내는 수준으로 일을 했다. 지난 주말엔 몸이 너무 안 좋아져서 반나절 이상은 자면서 보낸 듯하다. 그랬더니 몸이 이제서야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 그렇게 지내면서 말씀을 읽지 못했고, 교회 통독표 진도는 따라잡아야겠단 생각에 밀린 시편을 한번에 읽었다. 시편이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시편을 읽어보니 은혜가 넘치고, 다윗의 감정적 변화가 느껴진다. 예전에 내가 읽었던 시편은 단순히 다윗의 믿음 고백이나 아픔을 경험하면서 하나님께 울부짖는 글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긴 호흡으로 읽어보니 그의 마음이 더 깊게 느껴지고 그가 왜 이렇게 고백했는지가 느껴졌다. 다윗이 하나님을 높이는 시..
시편 1-5편 말씀 묵상 시편을 읽으면서 '악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악인'은 어떤 자들을 의미할까? 하나님께서 영영 버린자들? 그런 자들이 존재하나?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아니면 하나님께로 다시는 되돌이키지 못할 자들? 그런 자들은 어떤 자들이지? 생각만 많다. 정리가 되진 않는다. 우리가 흔히 악인이라고 하는 자들도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져야 하고, 그들도 우리가 품어야 할 사람들은 아닐까? 물론, 우리 힘으로는 그게 안되겠지만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할 때는 가능하지 않을까? 어디까지가 우리가 노력해야 할 선일까? 질문만 많고. 답은 나오지 않는다.
욥기 39장-42장 말씀 묵상 하나님께서 야단치듯 '네가 이건 아니? 저건 알아?'라고 물으시는 부분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그런 내용 하나, 하나를 읽어내려가다보니 문득 박사과정에 있을 때 중도에 가서 길게 나열되어 있던 책들을 보며 갑자기 망치를 맞은 것처럼 들었던 생각이 기억난다. '난 죽을 때까지 여기에서 책들만 읽어도 여기에 있는 책들을 다 읽지는 못하겠구나. 다 읽는다 해도 다 머리에 넣지는 못할 것이고, 여기 있는 책을 읽는 동안 수많은 책들이 또 쓰여지겠지...'란 생각이 들었었다. 내가 지금 원하는 것이 내가 무엇을 얼마나 알고 원하는 것일까?사실 우리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 남들이 원하는 것을원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그게 지금 좋을지는 몰라도 10년 후에도 좋을지, 그게 남을 위해서 좋을지 몰라도 그게 나..
욥기 34-38장 말씀 묵상 우리는 우리 인생이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는 경우가 많다. 왜 이렇게 해주시지 않느냐고. 그런데 우리는 그 지점에 멈춰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인생을 우리가 원하는대로 해주신다면 우리가 과연 더 행복할까? 우리를 우리 자신이 더 잘 알까? 하나님께서 더 잘 아실까? 38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게 나온다. 우리가 아는 세상은 얼마나 되는가? 이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제한적이다. 우린 많이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을 하는게 맞지 않을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는 지금 자신이 힘듦을 그대로 하나님 앞에 고백하면서도 왜 이 상황이 본인에게 더 좋은 것인지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
욥기 29장-33장 말씀 묵상 엘리후가 자신이 더 어려서 조용히 있다며, 더 어리다고 더 모르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말하기 시작한다. 글쎄. 그의 말대로 더 어리기 때문에 더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욥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내용은 맞지만 그가 보이는 모습 또한 그렇게 성숙하지는 않다. 그는 욥을 비판할 태세를 한다. 그는 욥이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욥은 자신이 하나님보다 낫다고 한 적이 없는데 그는 욥이 그리 말했다고 하며 주장을 시작한다. 공감능력. 자신이 알 수 없는 것을 인정하는 마음. 그게 엘리후에게는 결여되어 있다. 반면에 나는 욥의 울부짖음에 공감이 된다. 인생에는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착한 사람들이나 잘못한게 크게 없는 사람들에게 힘든 일이, 말도 안되는 힘든 일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욥기 22장-28장 말씀 묵상 욥은 그렇게 고통받는 와중에 자신이 아는, 자신이 배운 하나님을 놓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약함과 자신 안에 일어나는 감정들을 솔직하게 인정하면서도 하나님께 등을 돌리거나 부인하지 않는다. 심지어 친구들의 공격을 계속 받아내면서도 말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욥기에 나오는 사건들 이전에 욥은 어떤 하나님을 경험했길래 저토록 솔직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아니 흔들리지만 버틸 수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일까? 한편으로는 부럽고, 한 편으로는 존경스럽다. 사실 난 모태신앙이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유지되는 면이 있는 사람이다. 너무나도 힘들고 고통스러웠을 때 하나님을 아주 잠시나마 부인하고 부정했다. 일주일 정도 무신론자로 살았던 그 시간을 난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나도 모르게 습관..
욥기 16장-21장 말씀 묵상 욥이 정말 하나님 앞에서 잘못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욥의 친구들이 하는 말들은 바람직할까? 욥기를 읽으면서 처음으로 그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욥이 잘못한 것이 없는데 친구들이 그를 몰아부쳐서 욥의 친구들이 나쁜놈들이라는 생각을 너무 쉽게 하는데, 사실 우리는 욥이 잘못했다고 쳤을 때 그의 친구들의 반응이 성경적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가 삶 속에서 뭔가를 잘못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시사점이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니다. 그들이 욥에게 하는 말은 자기 의로 가득 차 있다. 마치 본인들은 잘났고 다 잘하는데 욥이 분명 뭔가 잘못한게 있을 것이라는 식이다. 그건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다. 자신을 높이고 있는 것 자체가 사실 성경적이지 않지 않은가? 정말로 본인이 무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