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말씀 묵상-2020년 (317) 썸네일형 리스트형 느헤미야 4-6장 말씀 묵상 느헤미야가 하는 일에는 반대가 일어나고 중상모략이 판을 친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이라서 반대가 더 심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그럴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세상 사람들은 꼭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어서가 아니라 본인한테 이득이 되는게 아니다 싶으면 세상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에 반대하고 부딪힌다. 세상과 하나님의 일 간의 충돌은 하나님의 일이 세상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발생한다. 우린 이를 항상 기억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저것들이 반대하는거야'라고 생각하게 되면, 그 틈에 교회 또는 기독교가 아닌 것들에 대해서 적대적이 되고 배척하게 될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그런데 기독교인.. 느헤미야 1-3장 말씀 묵상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민족의 포로시대가 끝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성전의 건축. 성전은 무엇을 상징할까? 그건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의미할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이 그렇게 무너진 것으로 보였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 중 상당수, 어쩌면 대다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나님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부인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하나님은 그 나라를 다시 세우셨다. 장벽이 무너지던 그 시대를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신뢰하는 자들을 사용하셔서 장벽을 다시 세우셨다. 지금 한국의 교회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하나님이 없다고? 왜 이렇게 만드냐고? 우선 그런 생각을 하기 전에 한국교회들.. 에스라 8-10장 말씀 묵상 에스라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고 이방여인들과 결혼한 사람들은 자신의 아내를 돌려보냈다. 이게 무슨 의미를 가질까? 꼭 그래야 했을까? 사실 아주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관점에서 굳이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가장 먼저 세워졌다.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데, 하나님을 따르겠다고 다짐하는데 굳이 이미 꾸린 가정을 깨고 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보내면 그 여인들은 어떻게 살고 어떤 상황에 처한단 말인가? 나의 첫 느낌은 당혹스러움이었고, 마치 한국사회에서 세상과 교회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려는 모습에 거부감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한 걸음 물러나서 생각해 봤다. 만약 그들이 그렇게 여인들을 보내지 않았다면? 그 당시와 현재의 차이를 고려하면? 무엇이 맞을까? 무엇이 그들이 하나님을 더 바라보게.. 에스라 4-7장 말씀 묵상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짓는 것에 반대하는 무리가 있고, 그 시도가 두 번 이뤄진다. 첫 시도는 먹혔지만 두 번째 시도는 다리오 왕이 고레서 조서를 찾아내서 건축을 허락하면서 건축이 진행된다. 사람들은 이런 경우 '하나님이 하시니까 이뤄진다'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워낙 이런저런 생각이 많다보니 나는 또 딴지를 걸게 된다. 그렇게 가능한 것을 왜 한 번에 하지 않으셨을까? 라고 말이다. 어차피 하실 것이라면 그냥 이뤄지게 해주시지, 다리오 왕 이전에 아닥사스다 왕 때 그 조서를 발견하게 하시고 그의 마음을 돌리셔도 되었던 것 아닌가? 아예 막으실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왜 그걸 그렇게 일어나게 방치하셨을까? 일단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자들에 대해서 보자. 그런 자들이 있다는 것은 사실 전.. 에스라 1-3장 말씀 묵상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백성이 돌아온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삶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평안하게, 자신들의 왕을 두고 사는 이들보다 더 구별되고 타락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 흥미롭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는 그렇게 억눌리며 살다가 자유를 얻으면 마구잡이로 누리기 위한 짓들을 할 듯한데 그들은 철저히 하나님을 바라본다. 그리고 돌아와서 하는 일들은 성전을 짓는 일들이다. 물론, 그들이 모두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에스라는 그런 선택을 한 자들에 대한 기록이다. 포로로 풀려난 다음에 세상 자유롭게 많은 것을 즐긴 이들도 있고 타락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역대상하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부분이 타락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잊어버리는 .. 역대하 33-36장 말씀 묵상 요시아가 모세의 율법책을 발견하고, 그 후 유월절을 지키는 모습과 그에 대한 성경의 평가를 읽으면서 약간 당황했다. 사무엘 이후에 그렇게 유월절을 지킨 자가 없었다면 그 사이에 나온 히스기야는 모세 시대의 율법을 모르고 있었고 (요시아 시대에 그게 발견됐으니까) 유월절을 율법대로는 지키지 않았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히스기야를 아끼고 축복하셨단 말인가? 그리고 히스기야에서 요시아까지 오는데 몇 세대가 지났다고 그 사이에 유월줄을 지키지 않았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다 잠시 멈춰서 생각해 보면 그게 이해가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놓고 생각해 보자. 우리 조부모님의 시대부터 지금까지 정말 길게 잡아야 100년 정도가 지났는데 우린 사실 100년 전 한국의 모습과 문화를 전혀 모른.. 역대하 29-32장 말씀 묵상 역대하에서 지금까지 가장 길게 서술된 유다왕에 대한 내용은 히스기야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내용에서야 우리는 이스라엘과 유다가 얼마나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왔는지를 알 수 있다. 이전까지는 악한 왕들과 괜찮았지만 결국 하나님을 떠난 왕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애굽을 떠나온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자신들이 정착해 있는 땅에서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살았는지를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땅에서의 질서도 제대로 세우려는 히스기야의 삶과 노력이 드러나면서 그들의 어두운 면들이 보인다. 그들은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날이었던, 그래야 하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자유케 하심을 기념하는 유월절 조차도 지키지 않고 있었다. 이는 그들이 .. 역대하 25-28장 말씀 묵상 부모의 신앙이 곧 그 자녀의 신앙이 되지는 못한다. 이는 유다왕들의 계보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버지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하였다고 해서 그 아들이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끝까지 하나님 앞에 정직했지만 그렇지 못한 아하스의 삶에서 이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모태신앙 같은 개념은 필요도 없고 이를 구분해서도 안된다. 이는 모태신앙이라고 하는 말이 그 사람들이 마치 본인은 태중에서부터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꽤나 괜찮은 사람인 것으로, 그냥 괜찮은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 수 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모든게 다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건 왜 그럴까? 이는 사실 유다왕들이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하기는 했어도 완벽하지는.. 이전 1 ··· 21 22 23 24 25 26 27 ··· 4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