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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말씀 묵상-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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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4-25장 말씀 묵상 다윗은 본인이 사울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스스로 죽이지 않는다. 하나님께 결과를 맡기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는 25장에서 나발을 치려하던 본인의 계획을 접는다. 그의 원수라고 할 수 있는 사울과 나발은 하나님께서 결국 목숨을 앗아가셨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한 걸음 물러남으로써 자신 상황의 안정과 아내를 얻을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의 계획과 생각대로 했다면 어땠을까? 장담할 수는 없지만 결과는 많이 달랐을 수 있다. 그는 어떻게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그가 광야 생활을 하면서 몸에 익힌,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게 된 영향이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사울은 다윗에게 줬던 자신의 딸을 다른 사람에게 준다. 이는 그가 다윗을 믿지 않았거나 최소한 다윗의 목숨을 자신이 앗아..
사무엘상 20-23장 말씀 묵상 사울은 여전히 다윗을 쫓는다. 그런데 다윗은 그 와중에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취하지 않고 하나님께 물으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다. 과연 이 패턴은 다윗에게 나쁘고 힘들기만 했을까? 이 기간은 다윗의 광야이기도 하다. 다윗은 하나님께 물어보면서 모든 결정을 내리는 훈련을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이게 과연 나쁘기만 하다고 할 수 있을까? 만약 다윗에게 이 상황이 없었다면 다윗이 왕이 된 후에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하나님께 그렇게 사랑받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윗은 충분히 하나님께 불평, 불만을 토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왜 본인을 사울과 엮어서, 왕이 되고 싶다고 한 적도 없고 사울의 등을 칠 생각도 없는데 이런 상황이 발생하도록 ..
사무엘상 19-20장 말씀 묵상 요나단을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살리기 위해서 그를 옆에 붙이셨단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 이상 사울의 아들은 그가 그 시대에 아버지를 등지면서까지 자신의 친구를 보호하려는 것이 이해가 되는가? 그런데 오늘 이 부분에서 더 와 닿는 것은 사실 사울의 모습이다. 그는 다윗을 죽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세우셨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처사다.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데, 본인이 어떻게 다윗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건 본인이 하나님의 뜻을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보면 사울이 정말 나쁜 놈이고 우리는 그렇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 이는 한국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가장 자주 발견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무엇인가가 되..
사무엘상 17-18장 말씀 묵상 이 부분에서 가장 대조되는 것은 다윗과 사울이다. 사람들은 다윗이 골리앗과 싸워 이긴 것을 대단하다고 여기지만 사실 그 상황에서는 그의 믿음을 봐야 한다. 누가 봐도 그가 골리앗과 싸웠을 때 이길 수 없었다. 누가봐도 그는 목숨을 걸고 나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은 아예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바보 같을 정도로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을 상대하러 나간다. 그에게는 다른 기준이 없다. 그는 오직 하나님만을 생각했고, 하나님만 바라봤으며 자신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만을 신뢰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무작정 하나님만 믿은 것은 아니다. 자신의 방법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자신에게 쌓인 경험을 근거로 주장한다. 양을 쳤던 경험이 있으니 가능성이 있다는 ..
사무엘상 15-16장 말씀 묵상 사울이 변한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실망을 하신다. 항상 물음표였던 부분이 다시 물음표를 슬며시 들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사울이 그렇게 변할 줄 모르셨을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이 부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가 항상 가장 힘들다. 내가 맞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이렇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실 수 있고 하실 수 있지만, 의도적으로 그걸 인간에게 맡겨 놓으셨고, 다만 완전히 순종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범위 정도는 알고 계실 듯하다. 이는 마치 우리가 소개팅을 할 때 상대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더 확인하려고 하면 더 확인할 수 있지만 다른 정보를 확인하지 않고 사람만 보기 위해서 확인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말씀에 가장 눈에 들어..
사사기 12장-14장 말씀 묵상 오늘은 좀 묵상이 난감하다. 사울이 하나님께 묻지 않고 결정을 했다는 이유로 사무엘에게 혼나는데, 우리는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 뜻인지 아닌지 모를 때 할 수 있는 건 한 가지 밖에 없다. 하나님께 묻고, 묻고, 묻고, 하나님의 뜻이라 믿어지는 것을 믿고 그냥 그 길로 가는 것이다. 내가 잘못 판단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실수마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진정으로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뤄지길 기도하며 그렇게 결정하며 나갈 수밖에 없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한계다. 그렇게 하루, 하루 버티는 것이 기독교인의 삶이다.
사무엘상 8장-11장 말씀 묵상 베냐민 지파. 사사기 마지막에 나온 그 베냐민 지파에서 사울이 나온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최소한 유다지파나 어쩌면 레위지파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나오지 않을까 싶지만 하나님은 왕을 가장 작은 지파에서 뽑으셨다. 사울 자신도 놀랄 정도로. 그 부분에서 한참 생각이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그를 뽑아내셨다. 사무엘에게만 미리 얘기를 하고. 아마도 그가 높아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쓰시는 자는 반드시 크고 능력 있는 자가 아니라 쓰고자 하시는 자를 쓰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현실적인 조건을 무시하시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한계를 아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풍체도 크고 단단한 사울을 ..
사무엘상 4-7장 말씀 묵상 세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언약궤가 있으면 승리할 것으로 생각했던 이스라엘 백성, 언약궤를 빼앗기게 허락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언약궤를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려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해주신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끈 사무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종교일 뿐이었다. 일상은 어떻게 살아가든지 신적인 존재를 신으로[섬기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었고 신이 그들에게 명령한 규례들은 선별적으로 지켰다. 그리고 그들은 그 안에 담겨 있는 본질을 읽어내지 못했다. 이는 분명 그들의 패착이었다. 형식만 남고 실질은 더 이상 그들 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명하신 규례들은 모두 수단이었는데 그들에게 그것은 목적이 되었다. 한국의 교회들 역시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예수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