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95) 썸네일형 리스트형 남자, 성희롱을 당하다 - 직장 편 내 첫 팀장님,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팀장님은 독특하셨다. 아주, 매우, 많이. 홍보실의 특성상 기자들과 만나야 할 일이 많았던 사회생활을 해오신 탓에 우리 힘은 언론홍보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팀장님은 기자들과 술자리를 종종 가지셨고, 그러고 나면 꼭 회사 책상 밑에서 주무셨다. 한 달에 한두 번쯤은 출근했을 때 알코올 향수를 뿌린 듯한 향에 어제와 같은 옷을 입으신 팀장님을 마주했다. 팀장님은 그럴 때면 내게 '야 씨뱅아' 아니면 '야 머리 큰 놈아'라면서 내가 책상에 갖고 있는 잎 녹차를 달라고 하셨는데, 그게 싫지 않았다. 그리고 툭하면 실장님과 고무줄을 갖고 손가락 총을 만들어서 쫓겨 다니시는데, 그때의 분위기는 드라마에서 연출을 그렇게 해도 과장이 심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일들.. 남자, 성희롱을 당하다 - 대학 편 난 성추행이나 성폭행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추행이나 성폭행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판결문들을 보면 판결을 내리는 분들이 성추행당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여실하게 느껴지는데, 그건 그들이 그런 경험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하지만 남자들은 그걸 성추행이나 성희롱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기를 들지를 않는다. 이는 남자들은 '정력'이 강한 게 자랑이고 남자다운 것이라고 여기는데 남자들에게 이뤄지는 성희롱이나 성추행은 대부분 정력을 둘러싸고 이뤄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방송에서도 남자들의 물건이 크거나 작다는 식의 얘기를 은유적으로, 돌려서 대놓고 할 정도니 남자들이 그게 .. 남자들의 사춘기 나의 사춘기는 강렬했다. 아니, 그랬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너처럼 유별난 애가 또 있는 줄 아냐는 말을 부모에게서 수년간 듣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본인 사춘기가 정말 유별나다고 여기게 되고, 본인은 유별난 애라는 생각에 죄책감이 마음속 어딘가에 깊게 좌표를 찍고 자리 잡게 된다. 내가 그랬다. 사실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난 정말 유별난 아이였고, 삼십 대 후반인 지금도 그런지도 모른다. 부모에게 대드는 기준으로 한다면, 난 사실 여전히 사춘기를 겪고 있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이 사춘기로 정의 짓는 시기에도, 지금도, 난 내 마음이 이끌고 내가 믿는 신에게 묻고 평안이 느껴지는 대로 결정하면서 내 삶을 끌어나가고 있다. 그 방향이 부모가 생각하는 내 인생의 방향과 맞지 않아서, 사회적인 기준.. 남자와 군대 나도 남자지만 여성분들 중에 '남혐'에 동참하는 분들의 마음은 십분 이해된다. 남자들 중에 마초적인 사람들도 있고,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남자들이 있으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면서 가부장적으로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는 젊은 남자들이 있는 것은 현실이다. 남자들이 그렇게 되어가는 과정에 대해서는 이 시리즈 이전 글들과 앞으로 쓸 글들에서 설명할 예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남자들이 동질적이라고 전제하고 남성 전체에 대해 혐오감을 갖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들이 남자들에 대해서 반감을 갖는 것은 그나마 설명할 수는 있다. 그런데 사실 '여혐'은 설명하기가 어렵다. 단순히 '남혐'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하기엔 그 대가도 너무 크지 않은가? 그렇다면 '여혐'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은.. 남자들의 전공 선택권 나는 회사원의 아들로 태어났고, 학부를 졸업할 때까지 회사원의 아들이었다. 아버지께서는 대기업에서 정년퇴직을 하셨고, 사내 정치에 떠밀려 임원이 되지 못하셨다. 어떤 이들은 그게 사내 정치 때문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묻겠지만, 아버지 이름은 계열사 사장까지 임원 승진에 동의했지만 이례적으로 더 높은 곳에서 최종 승인을 하지 않아서 임원이 되지 못하셨다. 그것도 세 번이나. 아주, 매우 이례적인 일이고 나도 회사생활을 해봤고 지인들 중 상당수가 대기업에 다니지만 그런 경우는 들어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곧은 분이셨고 그 과정에서 회사 안에 있는 힘 있는 분과 갈등이 있었고 그건 아버지에게 독으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께서는 그 회사에서 처음으로 정년퇴직을 했고 계약직으로라도 더 있어줄 수 없냐는 .. 남자들의 학교 성적 공교육: 훌륭한 국민을 육성한다는 공공적인 목적을 위하여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설립 ·운영하는 학교교육 또는 이에 준하는 학교교육 한국의 교육시스템의 키워드는 경쟁이다. 냉정하게 얘기해서 한국의 공교육 시스템은 위에 써 놓은 공교육의 사전적 정의와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공교육의 목표는 대부분 '더 많은 학생을 좋은 대학교 보내기'로 설정되어 있다. 너무나도 천박한 표현이기 때문에 누구도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사실 모두가 암암리에 수긍하고 있는 한국 교육의 현실이다. 그 속에서 여학생들에 대해서는 '여자가 뭐 그렇게까지 해야 하니'라는 식의 폭력적인 생각과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말을 하는 선생님이나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암암리에 그런 .. 눈물을 흘릴 자유 겁이 많았던 아이의 눈물 어린 시절, 그러니까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입학 이전의 기억들은 파편적으로만 남아있다. 그리고 그 기억들 중에는 좋은 것보다는 그렇지 않은 것들이 더 많다. 아마도 내게 충격으로 남았던 것들이 내 가슴속에 깊게 새겨진 듯하다.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하관을 하려고 할 때 바로 옆에서 '꼬마자동차 붕붕'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 사촌 형이 '00아 이제 할머니 못 보는 거야'라고 하자 갑자기 눈물을 펑펑 흘렸던 기억, 부모님께서 소리를 지르면서 크게 싸우셨던 기억, 열이 너무 많이 나서 링거를 맞았던 기억, 처음 치과에 갔던 기억 같이 힘들거나 아팠던 기억들 정도가 이미지로 생생하게 머리에 남아있다. 그중에 작지 않은 부분은 내가 눈물을 흘림으로 인해 혼났던 기억들로 채워져 있.. 장남으로 산다는 것 장남의 책임과 의무 '너는 부끄럽지도 않니?' 아버지께서 올해 회사를 최종적으로 그만두시면서 어머니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다. 이는 부모님께서 회사원인 동생의 의료보험 밑으로 들어가게 되셨기 때문이었다. 그 행간에는 '너는 장남임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의료보험도 책임지지 못하는 게 창피하지도 않니?'라는 의미가 깔려 있었다. 화가 났고, 늘 그랬듯이 난 내 마음을 솔직히 표현했다. 어머니께서도 당시 내 상황이 답답해서 하신 말씀이었을 것이다. 이해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장남'에게 요구하는 무언의 책임과 의무가 짙게 깔려있다. 아버지께서 장남이 아니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이 한동안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은 의외였지만, 이해를.. 이전 1 ··· 4 5 6 7 8 9 10 ··· 12 다음